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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시민들 화해·평화의 종소리 아래서 원폭 상처 보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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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시민들 화해·평화의 종소리 아래서 원폭 상처 보듬다

입력
2015.08.1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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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자료관의 참혹한 영상들

'모순된 전쟁' 감성적 반발 자극

진보단체 반핵·평화 시위 물결 속

국민에 피해인식만 심을까 우려도

9일 일본 나가사키 마쓰야마평화공원 기념동상 앞에서 한 여성이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나가사키=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9일 일본 나가사키 마쓰야마평화공원 기념동상 앞에서 한 여성이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나가사키=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9일 2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나가사키(長崎)는 무더위에 덮여 있었다. 흐르는 땀에 손수건이 금세 젖었다. 아예 목덜미에 새 손수건을 얹어 한낮의 더위에 발한(發汗)으로라도 맞서려는 신체작용에 순응했다. 벌써 며칠째 수은주가 37도까지 올라갔다니, 기온이 30도만 넘으면 바깥 활동을 피해 왔던 잔꾀에 내린 벌이려니 싶어 체념했다. 바닷바람이 날라 온 찝찔한 대기를 폭사하는 햇볕이 달구었으니 ‘찜통’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했다.

70년 전 그날도 꼭 이랬던 모양이다. 살아남아 원자탄 피폭의 참상과 공포를 증언해 온 피폭자들은 한결같이 ‘유난히 더웠던 여름날’을 떠올린다. 더위를 피하려고 일찌감치 개울에서 미역을 감거나 바람 잘 통하는 마루에서 간단한 속옷 차림으로 누워 있다가 엄청난 섬광과 폭음에 몸을 떨었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열기(熱氣)가 폭풍처럼 퍼져나가다가 나가사키 3면을 에워싼 산록에 부딪쳤다. 그 짧은 순간에 탈 수 있는 모든 것이 불길에 휩싸였고, 폭심(爆心) 가까이서는 아예 녹아 내렸다.

원폭 투하 70주년을 맞은 9일 일본 나가사키 원폭기념관에서 한 시민이 당시 처참한 상황을 기록한 사진을 보고 있다.
원폭 투하 70주년을 맞은 9일 일본 나가사키 원폭기념관에서 한 시민이 당시 처참한 상황을 기록한 사진을 보고 있다.

사흘 전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廣島)에 떨어진 우라늄탄 ‘리틀 보이(Little Boy)’와 마찬가지로 나가사키에 떨어진 플루토늄탄 ‘패트 맨(Fat Man)’에도 눈이 없었다. 노인이든 갓난아이든, 군수산업 종사자든 일반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았다. 성(聖)과 속(俗)의 구별 또한 없었다. 엄마가 아이 손을 잡은 채 숯 덩어리가 되고, 녹아내려 한 덩어리가 된 타일과 유리 사이에는 누군가의 손가락이 화석으로 박혔다. 폭심에서 500m 떨어진 우라카미(浦上) 천주교회는 돔형 종루(鐘樓)가 통째로 날아가고 벽 일부만 남았다. 예수와 성모, 천사들조차 자신의 조상(彫像)을 지키지 못했다.

폭심 가까이에 세워진 나가사키원폭자료관은 그날의 참상을 전하는 영상과 실물 자료로 가득하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미국의 원폭 개발과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직전의 정책결정 과정도 알리고 있다. 이미 일본의 항복이 초읽기에 들어간 단계에서 이뤄진 원폭투하 결정이 미국의 ‘정전(正戰)’, 즉 정의로운 전쟁과 적잖이 모순된 것임을 은근히 꼬집는다. 한 마디도 분명한 표현은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대량파괴무기 실험에 대한 관람객의 감성적 반발을 한껏 자극한다.

일본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 마련된 조선인희생자 추모비에 한 한국인 추모객이 9일 향을 피우고 있다.
일본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 마련된 조선인희생자 추모비에 한 한국인 추모객이 9일 향을 피우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파의 역사 정당화 작업에 끊임없이 동력을 공급하는 일본의 ‘피해’ 인식이 여기만큼 오롯한 공간도 드물다. 전시관 순로(順路) 맨 끝의 ‘까마귀’라는 제목의 전시물에는 히로시마·나가사키에 강제 연행됐다가 피폭해 숨진 한국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새까맣게 그을려 들판에 널린 시체에 몰려든 까마귀 떼 그림과 함께 마지막까지 수습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던 식민지 출신의 비통한 증언이 적혀있다. 그러나 그 또한 똑같이 피폭의 고통이 매개한 동류의식을 건드릴 뿐 본격적 ‘가해’ 인식을 자극하기에는 아득했다.

원폭자료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언덕바지에 강제동원(징용)과 군대위안부, 난징(南京) 학살 등 일본의 가해행위를 알리는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이 있지만,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초라한 시설에 지나지 않는다.

이 더위에도 멀리 치바(千葉)에서까지 앳된 얼굴의 대학생들이 땀투성이가 되어 찾아오는 모습이 신기해 잠시 울컥했지만, 원폭자료관에 비하면 어차피 새 발의 피다. 도쿄의 야스쿠니(靖國) 신사가 우파의 신념강화 교육장이라면, 나가사키는 히로시마와 함께 특별히 좌우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않은 일본 일반 국민의 가슴에 자칫 ‘피해’ 인식만 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스멀스멀 피어 올랐다.

다행히 이날 하루만은 그런 우려를 내려놓아도 됐다. ‘피폭 70주년’[i] 위령제와 평화기원[ii]식전이 열린 나가사키 평화기원공원과 인근 원폭자료관 입구 공원, 주변 마쓰야마초(松山町) 거리는 아침부터 일본 전역에서 몰려든 진보적 시민단체와 평화운동단체, 노동조합의 반핵·평화시위로 들끓었다. 이들의 외침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겨냥한 ‘전쟁입법’에 매달린 아베 신조 정권의 퇴진과 과거사 반성· 사죄 요구로 이어진 것은 자연스러웠다. “아베 아우토(Out)! 전쟁법 반대!”라는 구호가 끊이지 않았다.

오전 11시 2분 낮은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복원된 우라카미 성당의 종소리도 섞여서 들렸다. 눈을 감고 고개 숙여 희생자들의 명복과 함께 일대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과 다짐이 진정한 평화, 한일 양국의 진정한 화해로 이어지길 빌었다. 그것이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국민이 참된 행복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있기에.

나가사키=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i] 국내에는 ‘주년(周年)’의 긍정적 의미에 집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원래 무색무취한 말이다.

[ii] 일본어의 ‘기넨(祈念)’은 기념(記念·紀念)이 아닌 기원(祈願)이다. 국어사전에도 ‘기념(祈念)’을 ‘비는 마음’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쓰이지 않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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