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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엄마를 벌주는 사회

입력
2015.08.1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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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는 여성의 고학력화 및 사회진출로 자연스러운 역사의 흐름이 됐지만, 일과 가정의 양립은 여전히 난제다. 게티이미지뱅크
맞벌이는 여성의 고학력화 및 사회진출로 자연스러운 역사의 흐름이 됐지만, 일과 가정의 양립은 여전히 난제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방한했던 미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2)는 현재 연방 대법원에서 유일하게 자녀가 있는 여성 대법관이다. 나머지 두 명의 여성 연방대법관 소냐 소토마이어(61)와 일레이나 케이건(55)은 모두 싱글로, 자녀가 없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명했으나 의회의 반대로 후보 지명을 철회했던 해리엇 마이어스(70)까지 포함하면, 미국 역사상 가장 최근 연방대법관 지명을 받은 세 명의 여성 모두 자녀가 없는 미혼이다.

남성의 경우는 어떨까. 가장 최근 연방대법관에 임명된 세 명의 남성은 익히 예상되는 대로 전원 결혼했으며, 자녀가 있다. 모두 합치면 무려 일곱 명이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이 일레이나 케이건을 임명하면서 아홉 명의 종신직 법관으로 구성되는 연방 대법원에 여성 법관이 세 명이나 되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지만, 그 이면에는 이렇게 슬픈 성별 격차가 존재한다. 연방 대법원이야말로 미국 노동 시장을 압축해 보여주는 상징적 패턴이라고 보도했던 당시 뉴욕타임스 기사 안에는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를 주로 연구하는 제인 발트포겔이라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의 말이 인용돼 있었는데, 그것이 가히 심금을 울렸다. “오늘날 여성 대부분은 남성 못지않게 일을 잘합니다. 자녀만 없다면요.”

한 사람의 노동자가 작업장에 노동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생활의 영위라는 기초 단위의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밥을 먹어야 하고, 옷을 빨아 입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자녀를 돌보고 키워야 한다. 재생산을 위한 필수 조치다. 노동자 대부분이 남성이었던 오랜 역사 동안 남성 노동자는 무임노동자인 여성에게 이 모든 재생산 조치들을 일임하고 생산 노동에 ‘전념’했다. 이른바 성별 분업이다. 기숙식 공장이나 군대 등의 노동 형태에서 유추할 수 있듯, 숙식제공은 역사적으로 고용의 기본 옵션이었다. 자본은 한 사람의 노동자가 아니라 하나의 가정을 고용하는 것이며, 임금은 한 개인이 아닌 한 가정에 지급되는 것이다. 이혼시 재산분할이 법으로 보장되는 이유다.

맞벌이는 여성의 고학력화 및 사회진출로 인한 자연스런 역사의 흐름으로 여겨졌지만, 기실 1970년대 이래 정체 상태인 임금상승률을 보전하기 위한 가계 단위의 자발적 호구지책이었다. 자본은 임금 상승 없는 가계소득 증대를 위해 여성의 사회진출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여성노동력을 대거 차출해 응당 올려줬어야 할 남성노동자의 임금 정체를 벌충해온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페미니즘이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에 부역했다고 비난하고 싶어진다. 남성과 동일한 기회, 동일한 자격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는데, 자본의 책략에 휘말려 근본적으로 불공정한 노동시장으로 여성의 등을 떠밀기만 했다. 남녀 공히 가정에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정책 및 제도에 대한 요구가 있어야 했건만, 페미니즘은 남녀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이 혹독한 노동의 조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치명적 우를 범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맹렬히 일하는 남성 동료들을 볼 때면, 나는 자동적으로 그들의 아내를 떠올리게 된다. ‘두 명이 나와서 일하고 있구나.’ 여성이 그토록 동등해지고자 원했던 남성 노동자는 대체로 단독자가 아니다. 2인 1조로 팀플레이 중인 경쟁자와 맞선 여성 노동자에게 직업 사다리의 아랫부분을 맴돌다 지쳐 퇴장하는 것 말고 어떤 미래가 있을까.

최근 신임 대법관 임명 제청 과정에서 적잖은 여성 법조인들이 대법관 후보 추천을 고사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고3 수험생인 딸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서, 친정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서 등 가정사가 이유였다고 한다.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30대 후반의 한 후배 여기자는 “이 사회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기 위해 내가 결혼을 안 하는 것”이라고 농반진반 말한다. 일을 사랑하는 현명한 여성들은 이렇게 아이를 낳지 않는다. 둘이나 낳아 놓고 긴긴 방학을 어쩌지 못하는, 나처럼 어리석은 여성들이나 고통의 형벌을 받을 뿐이다. 엄마를 벌주는 이 형벌체계는 참으로 공평해서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일용노동자부터 법관까지, 우리는 모두 공명정대하게, 엄마라서 벌을 받는다.

박선영 문화부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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