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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 호칭 일본인에 모욕감… '천황' 불러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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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 호칭 일본인에 모욕감… '천황' 불러주길"

입력
2015.08.1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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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일본의 ‘천황(天皇)’을 보통 ‘일왕(日王)’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이를 한자로 볼 때마다 무심코 라면을 떠올리고 만다. 일본에는 닛신(日淸)식품이 제조한 ‘닛신라오(ラ王)’라는 컵라면이 있어 ‘일왕’은 그걸 연상시킨다. ‘라오’는 ‘라면의 왕’이다. 농담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함부로 갖다 붙인 ‘일왕’이란 호칭에 거의 모든 일본인이 모욕당한 듯한 느낌을 갖는 것은 틀림없다.

1998년 김대중 정권 출범 직후 나는 일본 언론 각사 정치부장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대통령과 회견한 후 당시 박정수 외교장관과의 만찬 자리에서 나는 한 가지를 요청했다. “천황을 일왕이라고 부르지 말아 주십시오.”

그게 주효했는지, 김대중 정권은 마침내 ‘천황이라고 부른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르듯, 방일한 김 대통령과 면담한 천황은 자신의 선조에 백제 왕족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밝혀 김 대통령을 놀라게 했다.

그 무렵 ‘천황이라고 부른다’고 선언한 한국 신문도 있었다. 그러나 그 뒤 한일관계가 악화하자, 이윽고 그 신문도 ‘일왕’으로 돌아와 버렸다. 2012년 8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다케시마) 방문 뒤 천황에 사죄를 요구하는 격한 발언도 해서 일본인의 분노를 샀는데, 이 때도 이 대통령은 ‘일왕’이라고 말했다.

일본 헌법 제1조는 이렇다.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인데,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국민의 총의에 근거한다.’여기에 왕은 없다. 헌법이 일본의 상징으로 규정한 것은 천황이다. 그런데 왜 한국은 일본 헌법을 무시하는가. 거기에는 아래와 같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천황이라는 호칭은 천하를 지배하는 황제와 같아서, 실태와 어울리지 않는다. 더욱이 과거 역사적으로 왕위를 ‘받아온’ 한국으로서 왕보다 격이 높아 보이는 천황이라는 호칭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원래 왕(king)과 황제(emperor)는 어떻게 다를까. 왕이 일국의 지배자인 것과 달리 로마황제처럼 여러 민족을 지배하는 제국의 지배자가 황제로 불려왔다. 그렇다면 일본의 천황이 예로부터 왕에 가까운 존재였음은 확실하다. 다만 천황이라는 것은 중국의 역대 황제도 인정해온 일본 특유의 호칭이고, ‘간무(桓武)천황’ ‘메이지(明治)천황’과 같은 고유명사의 일부가 되어왔다. 지금도 세계에는 왕은 많지만, 제국주의 시대가 끝난 후 황제는 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서양각국은 Emperor라고 부른다. E가 대문자인 것은 고유명사로서 쓰기 때문이다. 중국도 구애되지 않고 천황이라고 부른다. 예로부터 하나의 혈통을 유지해 온, 세계에서 드문 존재라는 점도 특별 취급의 한 요인일 것이다.

한국은 식민지 시대에 천황의 사진에 예를 표하고, 절대복종을 맹세하도록 강요 받은 굴욕의 기억도 있어 저항감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분명히 과거 ‘대일본국헌법’에서 천황은 ‘신성하고 침범할 수 없는 통치자’로 여겨졌고, 군국주의에도 이용됐다. 우리 일본인도 그 시대의 천황제에 대한 거부감은 대단히 강하다.

그러나 그런 천황의 성격이 완전히 변한 지 70년이 지났고, 지금은 국민이 경애하고 친근감을 느끼는 존재가 돼 있다. 가장 권위 있는 존재로서 국가의 공식행사에 나오거나 외국 손님을 모시고 있지만, 정치적인 권력은 일절 갖지 않는다. 대재해가 발생한 지역을 방문해 피난민들을 위로하는 것도 커다란 역할이다. 누구도 천하의 지배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대통령도 방일하면 천황과 만나고 만찬에도 초대된다. 그 때마다 과거에 대한 통한의 마음을 표명해온 것도 천황이다. 그런 상대를 올바른 호칭으로 부르지 않는 것은 역시 무례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이래서야 한국 방문도 이뤄질 수 없다.

최근 어느 한일 심포지엄에서 토론자인 한국인 기자가 “지금부터 천황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용기 있는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한국 지도자나 언론인이라면 곧바로 이런 움직임을 넓혀갈 것이다. 가능하다면 정부와 모든 언론이 뜻을 모아 일제히 ‘천황이라고 부릅니다’하고 선언하자. 그것만으로도 일본의 한국 이미지는 훨씬 좋아질 게 틀림없다.

와카미야 요시부미ㆍ아사히신문 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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