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때와 죽을 때'
잊혀진 항일혁명가 김찬과 中 명문가 출신 아내 도개손의 평전
항일 투쟁과 혁명동지로 활동하다, 함께 처형당한 불꽃같은 삶 그려
●'날개옷을 찾아서'
한국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 평전, 3·1 운동으로 6개월 옥고 치른 후
독립운동 위해 中 항공학교에 입학… 해방 후 공군 창설 주도하기도
●'민들레의 비상'
여성광복군 지복영 회고록, 광복군 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딸
독립투사 가족들의 고난 생생, 독립 다짐하던 동포들 모습 담아
남편은 조선인, 아내는 중국인이었다. 부부는 항일혁명에 투신해 조선에서, 중국에서 가시밭길을 걸었다. 그리고 1939년 3월의 어느 날, 동시 처형됐다. 마오쩌둥의 홍군이 대장정 끝에 안착한 연안에서 트로츠키파로, 일제의 간첩으로 몰려 총살됐다. 남편은 28세, 아내는 27세였다. 부부는 불꽃 같았던 짧은 생을 그렇게 마감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항일혁명가 김찬(1911~39)ㆍ도개손(1912~39) 부부의 평전이다. 평남 진남포 출신으로 열 살 때 중국으로 이주한 김찬은 스무살 때 귀향해 혁명적 노동운동과 조선공산당 재건에 앞장선 인물이다. 중국 명문가 출신인 도개손은 북경대학의 이과계열 첫 여학생으로 입학 당시 언론에 대서특필된 재원이지만, 편한 길을 버리고 항일 혁명에 나섰다.
항일투쟁과 혁명 동지로, 인생의 반려로 죽음까지 함께한 이 부부의 파란만장한 삶은 어떤 영화보다 극적이다. 하지만 김찬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완전히 잊혀진 존재였다. 그런 이름이 어디 한둘이랴.
김찬이 체포 수감된 지 1년 만에 열린 조선공산당 재건사건 재판(1933)에서 그는 조봉암, 김단야와 함께 주모자로 지목됐다. 체포 후 무려 45일간 혹독한 고문을 버텨냈다. 그를 고문한 일제 경찰이 남긴 수기에 “다수의 사상범 중 검거 후 45일까지 범행을 부인한 인물은 김찬 외에 유례가 없다”는 기록이 있다. 1931년 1월 진남포 삼성정미소의 10대 여공들이 21일간 공장을 점거하고 벌인 파업농성은 그 해 조선 전역을 휩쓴 노동자 대투쟁의 선구다. 공장 노동자를 조직하라는 코민테른 지령에 따라 김찬이 지도한 사건이다.
조선공산당 재건 사건으로 1년 6개월 형을 살고 나와 다시 중국으로 간 김찬은 1935년 도개손과 결혼했다. 도개손은 집안의 반대를 물리치고 식민지 조선 청년을 선택했다. 연안에서 최후를 맞을 때도 남편 김찬을 버리면 살 수 있었지만 끝내 거부하고 죽음을 함께했다. 처형 한 달 전,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김찬을 본 도개손은 가위로 한쪽 눈을 찌르고 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부부는 그렇게 피투성이가 된 채 총살형으로 최후를 맞았다. 부부는 연안에서 중국공산당 간부 양성학교 입학을 허가 받았을 만큼 당성과 항일투쟁 경력을 인정받은 상태였지만, 중국 공산당에서 벌어진 정풍운동의 광풍에 희생됐다. 사후 43년만인 1982년에야 중국 공산당은 부부를 복권시켰다.
평전이 복원한 부부의 삶은 1930년대 조선 진남포와 경성, 중국 상해와 북경, 하얼빈, 남경, 연안으로 무대를 옮겨가며 펼쳐진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독일 유학을 준비하던 김찬, 피아노를 잘 치던 여학생 도개손이 항일혁명가로 활동하면서 만나 사랑하고 죽기까지 아름답고 치열했던 두 청춘의 짧은 생애를 따라가노라면, 광복 70년을 맞도록 여태 그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불러주지 못한 못난 후손들은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일간지 기자인 저자는 10년 간 취재하고 유족을 인터뷰해 이 책을 썼다.
독립운동사에서 상대적으로 더 묻힌 이름은 여성 항일투사다. 한국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1901~88)의 평전 ‘날개옷을 찾아서’,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딸이자 여성 광복군 지복영(1919~2007)의 회고록 ‘민들레의 비상’에서 그 자취를 만난다.
권기옥은 조국 해방을 위해 날아오른 독립운동의 강철 날개다. 평양 숭의여학교 재학 시절 3ㆍ1운동에 참여해 6개월 옥고를 치른 그는 석방 후 임시정부의 비밀연락원 등으로 활동하다 상하이로 망명, 1925년 윈난항공학교에 입학해 중국과 한국 최초의 여성비행사가 됐다. 임시정부 독립군이 추진하던 항공대 창설이 무위로 돌아가자 중국 공군에 투신해 싸웠다. 해방 직전 임시정부의 조국 진공작전 계획을 입안했고, 해방 후 조국의 공군 창설에 이바지했다.
지복영이 쓰고 그의 아들이 정리한 회고록 ‘민들레의 비상’에는 독립투사와 그 가족들이 겪은 고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섯 살 때인 1924년 어머니와 오빠를 따라 아버지가 있는 만주로 갔다. 끝없는 유랑과 가난 속에서도 놓을 수 없었던 향학열, 국치일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끼니를 거르며 치욕을 되새기고 독립을 다짐하던 당시 동포들의 모습 등을 회고했다. 저자는 1938~39년 대일 선전공작에 참여했고, 1940년 광복군이 창설되자 자원 입대해 ‘광복’ 잡지 발간, 적정 탐지, 광복군 초모 활동, 대적 선전방송 등에 복무했다. 해방 후에는 도서관 사서, 교사로 일했다.
김찬ㆍ도개손 부부의 잊혀진 삶에 비해 권기옥 김복영, 두 여성 투사는 그마나 알려졌고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국립현충원에 영면하고 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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