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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막장 서바이벌, ‘쇼미더머니’

입력
2015.08.1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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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담기도 민망한 욕설과, 시대착오적 여성 비하, 그리고 마초적 폭력으로 흥건한 음악이 지금 TV와 음원차트를 휘어잡고 있다. 주된 시청자들은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10대들이다. CJ E&M의 음악채널 Mnet의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얘기다.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 저열한 음악 언어들이 10대들에겐 ‘문화의 스탠더드’가 됐다. 뒷골목 싸움을 보고 싶으면 뒷골목으로 가라고 하자. 그걸 안방으로 끌어들여 온 가족에게 보여줄 거라면 피 튀기는 칼부림이나 등 뒤에서 몽둥이를 내리치는 장면까지 담아선 안 된다. 비유하자면 ‘쇼미더머니’의 제작 방식이 이런 식이다.

벌써 네번째 시즌을 맞은 ‘쇼미더머니’는 힙합과 랩의 열풍을 몰고 왔다. 아이돌 멤버조차 경쟁에 참가할 정도이니 10대들이 밤 늦게 본방을 사수하고 미방송분 영상을 찾아보며 비속어투성이 랩을 흥얼거리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시청률이 치솟을수록 출연자들의 욕설, 모욕, 행패에 가까운 비매너는 심해지고, 탈락자 번복 등 경쟁의 기본 룰마저 무너지고 있다. 한마디로 막장 서바이벌이다. 누구나 욕하면서 계속 보게 만드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막장 드라마와 다를 게 없다.

길바닥 싸움판이 안방으로 들어오면서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범죄적 편견이 랩 배틀이라는 허울 아래 허용되는 것, 심지어 쿨한 것으로 호도된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아이돌 그룹 위너 멤버인 송민호는 여성 비하 랩으로 비판을 받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처분이 결정됐는데 ‘쇼미더머니’의 일탈은 처음이 아니다. 뒤늦게나마 사과한 송민호와 달리 블랙넛은 문제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첫 등장 때 바지를 벗는 돌출 퍼포먼스로 눈길을 사로잡은 블랙넛은 줄곧 송민호를 겨냥해 공격했고, 상대가 랩을 하는 동안 죽부인을 베고 누워 시선을 분산시키는 매너 없는 행동을 하는 등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달 발표한 신곡 ‘하이어 댄 이센스’에서는 힙합 뮤지션들을 조롱하는 가사 속에 타이거JK의 아내 윤미래를 성희롱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블랙넛은 14일 ‘쇼미더머니’ 방송에서 랩을 통해 "내가 사과하고 하차하길 원해? 세상에 욕만 하던 과거가 부끄럽긴 해도 나는 송민호와 달라. 내가 뱉은 말에 떳떳해. 오줌 쌀 때 빼고 고개 안 숙여”라고 뻔뻔하게 자기를 정당화했다.

제작진은 논란을 이용한다. 심사위원 역할의 버벌진트와 산이는 블랙넛을 구제하기 위해 탈락 판정을 번복하는 촌극을 벌여 ‘번복진트’ ‘산이더머니’라는 오명을 얻었고, 이전 시즌에서 수차례 방심위의 징계가 있었음에도 제작진은 욕설과 막말을 자제시키거나 가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판정 번복에 분노하는 경쟁자들의 멘트를 살려 싸움에 불을 붙였을 뿐이다.

애초에 길거리에서 탄생한 분풀이 장르가 어엿한 대중음악의 한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독설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쇼미더머니’를 통해 드러난 힙합씬에는 판을 깨는 통쾌함은 없고 상업화한 위악만 남았다. 유명 래퍼 메타MC와 최삼은 최근 ‘쇼미더머니4’를 이런 랩으로 비꼬았다. “할 말 하지 말란 게 힙합 아니지만 니 막말 할 때 잘 봐, 어린 애들이 뭘 배우나? 여자건 남자건 약자를 안기는커녕 약하다고 막 덤비는 거? 그거 힙합 아냐 전혀!” “청년실업 높은 등록금만큼 늘지 않는 최저 임금 기업들은 마냥 웃지 비정규직만 선호하는 이유를 우린 묻지 할말은 많은데 돈맛을 본 래퍼.”

더러운 싸움판에 구경꾼을 불러모아 시청률을 올리는 게 Mnet의 목적이라면, 차라리 불륜행각을 고발하는 ‘치터스’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기를 권한다. 바람 피운 상대에 대한 공격성은 래퍼라도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이고, 남녀관계라는 본능적 영역은 막장을 뛰어넘는 인기를 보장할 것이다. 공익에 기여할 점도 있다. 최소한 10대 시청자들에게 폭력적 마초주의가 쿨한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김희원 문화부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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