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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낮의 꿀'같은 경험, 실내 빙벽등반

입력
2015.08.2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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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이 열흘 가까이 지났는데도 끈질긴 여름은 물러날 줄을 모른다. 18일 서울 우이동의 낮 기온은 32 ℃.

언뜻 보기에도 두께가 한 뼘은 되어 보이는 묵직한 철문 앞에 섰다. 중년 남성 1명과 여성 2명이 이 곳으로 들어서더니 가방에서 자꾸만 때를 잘못 찾은 듯한 아이템들을 쏟아 낸다. 보온병, 기모 바지에 솜이 두둑이 들어간 패딩까지. 이들은 저 철문을 열기에 앞서 “젊은 이들은 시내에서 놀기 바쁘겠지만 진짜 별세계에 와 있는 건 우리”라며 들뜬 목소리로 재잘거린다.

문을 힘껏 열어젖히면 그들의 말대로 별세계가 나온다. 들어서자마자 여름 바지를 입고 나온 새내기를 꾸짖기라도 하듯 찬 기운이 허벅지를 할퀸다. 대번에 입김이 ‘하~’하고 나오는데 벽에 매달린 수은주를 보니 영하 12도다. 바닥에는 눈이 뽀드득뽀드득하고 밟힌다. 시선이 멈추는 곳은 거대한 수직 빙벽. 폭 8 m에 높이가 20 m에 달하는 이 빙벽은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다고 하니 과연 별세계가 맞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정도 규모의 실내 빙벽은 전세계에도 몇 개 없을 뿐더러 아시아에서도 한 곳뿐이란다. 빙벽이 숨어있는 이곳 서울 우이동 코오롱등산학교는 외관은 평범한 건물이지만 지하 3층부터 지상 4층까지 7층 높이의 거대한 얼음 폭포를 품고 있다.

여름 빙벽 등반을 즐기는 중년의 빙벽 애호가들. 암벽 등반과 마찬가지로 등반자와 확보자가 2인1조를 이룬다./2015-08-21(한국일보)
여름 빙벽 등반을 즐기는 중년의 빙벽 애호가들. 암벽 등반과 마찬가지로 등반자와 확보자가 2인1조를 이룬다./2015-08-21(한국일보)

권경자(55)씨는 “우리는 바캉스가 따로 필요 없다. 오히려 계절을 앞서나가고 있는 것”이라며 빙벽의 매력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갱년기도 느낄 틈이 없다”는 권씨는 40대에 빙벽 등반에 입문해 올해로 11년 차 빙벽 등반가다. 그는 국내 대회에도 출전하는 아마추어 선수다. 겨울에는 설악산 토왕 폭포 등 전국 각지의 얼음 폭포를 찾아나서는 이들은 무더운 여름서부터 실내 훈련을 통해 실력 다지기에 돌입한 것이다. 30년 암벽등반 경력을 자랑하는 이용준(49)씨 역시 “암벽보다는 빙벽”이라며 엄지를 세웠다. 이씨는 “외벽으로 나가면 이곳과 좀 다르다. 암벽과 달리 홈이 없기 땜에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나가는 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내 빙벽에 걸려 있는 온도계. 빨간 기둥이 영하 12도쯤에 멈춰있다. /2015-08-21(한국일보)
실내 빙벽에 걸려 있는 온도계. 빨간 기둥이 영하 12도쯤에 멈춰있다. /2015-08-21(한국일보)

하지만 사실 빙벽 등반이 암벽 등반보다 더 강한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 살을 에는 추위에 낙빙이 떨어지는 등 외적인 위험 요소가 많기 때문에 안 된다고 마음 먹는 순간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 전양준 코오롱등산학교 강사의 설명이다. 2시간이면 오르는 코스도 초보자는 10~12시간씩 걸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긴다는 신세대들도 웬만한 기초 체력과 지구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좀처럼 엄두를 못 낸다는 것이 바로 빙벽 등반이다.

1일 빙벽 체험을 하는 기자. 울퉁불퉁한 빙벽에 아이스 바일 꽂을 곳을 찾는 것 조차 쉽지 않다. /2015-08-21(한국일보)
1일 빙벽 체험을 하는 기자. 울퉁불퉁한 빙벽에 아이스 바일 꽂을 곳을 찾는 것 조차 쉽지 않다. /2015-08-21(한국일보)

이 중년의 빙벽 애호가들 말처럼 처음 도전해본 빙벽 등반의 맛은 짜릿했다. 동시에 결코 만만치 않다. 양손에 든 아이스 바일로 곡괭이처럼 얼음을 콕콕 찍고, 크램폰을 신은 양발로 빙벽을 툭툭 차며 사지를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이 외에도 동시에 신경 써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몸이 안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도록 상체와 양다리를 이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팔(八)자 걸음으로 걷더라도 빙벽에서만큼은 양발을 십일자 모양으로 맞춰, 빙벽과 발이 수직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헬멧을 쓴 머리는 숙이되, 눈은 항상 치켜 뜨고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낙빙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첫 번째 시도에는 3~4m만 올라가도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더니, 두 번째 시도에는 제법 요령이 생겨 빙벽의 절반까지는 올랐다.

‘빙벽 새내기’의 엉거주춤한 모양새에 중년의 신사숙녀는 “얼음을 더 힘껏 찍으라”며 응원을 보낸다. 이 별세계에서만큼은 저들의 마음이 더 젊은 것 같다.

※코오롱등산학교 빙벽을 이용하는 법

실내 빙벽 이용료는 3시간에 2만원이다. 빙벽 등반 장비 일체를 빌리는 데 하루 대여료는 1만5,000원. 3시간 체험 강습은 6만5,000원이다. 빙벽에 오르는 체험은 강사와 함께 3시간이면 가능하지만 빙벽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길 원한다면 등산학교의 빙벽 수업을 수강할 것을 권한다. 이론과 실기를 병행하는 정규 수업이 일년에 한 차례 개설된다. 자세한 내용은 코오롱등산학교 홈페이지(www.mountaineering.co.kr)를 참고할 것.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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