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문학·말과활 등 가을호 특집
공모전·문학권력 해부… 대안 모색
3대 출판사도 좌담·기고 예정
문단 개혁 움직임 방향 드러날 듯
“필요한 것은 진단이 아니다. 처방이다. 수술이다.”
가을호 문예지들이 소설가 신경숙씨의 표절 논란을 정면으로 다루며 구체적인 대안 모색에 나섰다. 문예지 공모전 폐지, 새로운 생산방식 등이 제안됐다.
계간 실천문학은 ‘표절, 문학권력, 대안’이란 표제 아래 전권특집을 기획, 젊은 작가 좌담, 문학기자 좌담, 문인들의 글을 실었다. 소설가 손아람 박민정 최정화, 시인 서효인, 문학평론가 이만영씨가 참여한 젊은 작가 좌담은 당시 자의든 타의든 침묵을 지켰던 후배 작가들의 자유로운 발언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이들은 패배주의에 빠진 젊은 작가들의 현실과 카르텔로서의 대학제도 및 문학 교육, 독자와 동떨어진 한국 문학의 현실에 대해 뼈아프게 성찰했다.
손아람 작가는 출판사가 작가를 등단시키고 책을 내는 공모전 시스템에 대해 “대형 출판사가 시장을 독식”하고 “작가를 지배하기 딱 좋은 도구”라며 “강력한 합의를 통해 제거하지 않으면 문학에 희망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효인씨는 문학권력의 문제가 “독자를 무시해서 생긴 일”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 남아 있는 한국문학 독자는 만 명도 안 된다”며 출판사들이 ‘우리가 주는 상 받고 우리 라벨 붙었으니까 읽어야지’란 식으로 독자에게 다가가는 바람에 거리가 더 멀어졌다고 지적했다.
시 격월간지‘더 멀리’를 창간한 김현 시인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잡지 운영방식을 공유하며 문학 생산 구조의 구체적인 변화를 모색했다. 음악가 단편선씨, 만화가 김보통씨 등 다른 분야의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음악과 웹툰이 어떻게 기존의 생산-소비-유통 구조를 벗어났는지에 대해 소개했다.
격월간 말과활은 8~9월호에 소설가 장정일, 국문학자 천정환, 시인 노혜경씨의 기고를 게재했다. 논란 당시 ‘표절을 보호해야 한다’는 글을 통해 표절 공격의 정당성을 되물었던 장씨는 이를 발전시켜 순수 창작은 ‘낭만적 신화’에 불과하며 문학 신성화를 부추길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가장 나쁜 결과는 이번 사태로 한국 작가의 위상이 추락하는 게 아니라, 한층 그 위상이 신격화되는 것”이라며 “문학의 신성성이 해체돼야 문학권력도 지반을 잃게 된다”고 주장했다. 천 교수는 장씨와 반대로 표절은 “법적 문제”라고 전제한 뒤 문학계 및 출판계에 “무한경쟁과 신자유주의적 ‘선택과 집중’을 넘어서는, 공공디자인 혹은 협동적-사회경제의 문제의식”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문단 개혁 움직임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당시 문단권력의 핵심으로 지목됐던 3대 출판사 즉 문학동네, 창비, 문학과지성사의 가을호 계간지를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 출판사들은 8월 말~9월 초에 관련 지면을 할애할 예정이다. 문학동네에는 표절 문제를 다룬 좌담과 내·외부 평론가의 글이 실린다. 당시 문학동네를 ‘저격’했던 평론가들과의 좌담은 무산됐지만 다른 통로로 표절과 문학권력 문제에 접근한다는 입장이다. 창비는 외부 문학평론가 3인의 기고를, 문학과지성사는 기획 좌담을 마련했다.
26일엔 ‘실천문학’ ‘황해문화’ ‘리얼리스트’ ‘오늘의 문예비평’ 등 네 개 잡지가 공동주최하는 토론회 ‘한국문학, 침묵의 카르텔을 넘어서'가 종로구 동숭동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열린다. 주최측은 "신씨 표절 사태가 한 작가의 양심 문제에 그쳐서는 안 되며, 한국 문학 구조 전반을 반성적으로 재검토하고 문학 생태계의 건강성 회복을 위한 근본적인 고민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토론회 취지를 밝혔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