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통일전선부 전례 깨고
43시간 진검승부끝 협상타결
컨트롤타워 역할 톡톡히 입증
당분간 2+2형식 유지하며
남북 위기상황 다시 발발 땐
해결사로 전면에 나설 가능성
남북 고위급접촉이 25일 극적 타결에 이르면서 현장에서 협상을 이끈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총정치국장 사이의 대화채널이 주목 받고 있다. 1949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이 대결로 치닫던 남북관계의 막힌 곳을 속 시원하게 해결하고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입증하면서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회담 ‘격’ 올리며 군부 최고위급이 전면에
남북이 처음부터 ‘김관진-황병서’ 라인을 구상한 건 아니었다. 북한은 서부전선 화력도발 다음 날인 21일 김양건 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과 김관진 실장의 1대1 대화를 제의했다. 이에 우리측이 격을 높여 황 총정치국장을 협상 대표로 지목하면서 두 사람이 전면에 나섰다. 두 사람 옆에 대남업무를 총괄하는 김 비서와 우리측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배석하면서 안보와 남북관계를 접목한 ‘2+2’ 협상구도가 됐다. 홍 장관은 특유의 명쾌한 논리와 달변으로 북측 대표단을 압박하며 분위기를 우리측에 유리하게 이끌어 김 실장이 담판을 짓는데 힘을 실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실장과 황 총정치국장은 남과 북에서 군부를 총괄하는 최고위급 인사로 모두 강경파에 속한다. 지난해 10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나란히 앉아 관람하며 돈독함을 과시하기도 했지만 당시 만남은 당국간 접촉이라기 보다는 상대방의 의중을 떠보는 대면의 성격이 짙어 ‘진검승부’를 벌이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박4일간 43시간이 넘는 마라톤 협상을 거쳤다. 그 결과 6개항의 공동보도문이라는 성과를 냈다. 특히 김관진-황병서 라인은 우리측의 제안으로 성사됐다는 점에서 향후 남북관계의 새로운 채널을 우리 주도로 구축한 의미가 크다. 정부 소식통은 “과거 남북관계를 우리 통일부와 북한의 통일전선부가 전담해 온 전례에 비춰 새로운 형식이었지만 이번 합의로 유효성이 입증된 셈”이라고 말했다.
안보, 통일 동시에 다루는 ‘2+2’대화 지속될 듯
앞으로 남북관계가 요동칠 경우 김관진-황병서 라인이 또다시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북 정상회담이 아직 불투명해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직접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실상 최고위급 회담이라는 무게감 때문이다.
특히 군사적 긴장 격화를 비롯한 경성이슈나 남북관계의 방향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크게 부각될 경우 김 실장과 황 총정치국장이 밤샘협상을 거쳐 담판을 지은 경험은 남북 모두가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이다. 남북이 추가 당국자회담에 합의하고 여러 분야에서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나가기로 한 만큼 상시채널 역할은 아니더라도 언제든 최고조의 위기상황에 해결사로 투입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김양건 비서가 오랜 기간 대남업무를 전담해왔고 우리 통일부도 남북관계에 특화된 조직인 만큼 김관진-황병서의 1대1 대화보다는 이번처럼 2+2의 협상구도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강온 양면을 병행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형태다. 최진욱 통일연구원장은 “당초 김양건이 김관진 실장에게 1대1 회담을 제의한 건 김정은의 전권을 위임 받았다는 의미”라며 “이번에 황병서가 전면에 나섰지만 남북관계의 특성상 북한이 김양건을 제쳐두고 대남 협상을 시작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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