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 Word Play (재미있는 말)
주관 있는 사람은 ‘a man of principle', 인생철학은 ’my life principle'이라고 한다. 상당히 멋진 단어다. 도덕 규범(moral principle)과 사법 규범(judicial principle), 과학 원리(scientific principle) 등의 어구에는 공통적으로 ‘principle’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나라마다 principle이 있지만 만고불변의 진리도 아니고 기준도 아니다. 그저 집단에서 정한 내부 기준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불법인 것이 미국에서는 불법이 아닐 수도 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원칙’이라는 용어가 영어로 ‘principle’이다. 영어 개념을 참고하면 우리말의 ‘원칙’이라는 개념이 좀더 명확해진다. ‘한 외교관이 내부 방침에 어긋나 합의를 거부했다’는 기사에서 ‘내부 방침’이란 자국의 이익을 의미하는데 이 때도 ‘on principle’이 쓰인다. 한국과 일본의 대표가 협상을 한다고 할 때 쌍방이 ‘나만의 원칙은 고수한다’고 고집하면 협상이든 합의든 도출될 길이 없다. 즉 각자 원칙이라고 포장하지만 뒤집어 보면 자기만의 고집이고 자국만의 관례, 조건일 뿐이다. 행복의 조건이나 인권의 요건을 말할 때에도 principles가 쓰이고 종교 규율이나 사업 관행에도 principle이 들어간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우리가 쉽게 말하는 원칙이라는 것이 개인의 신념이든 종교 교리이든 문화적 관습이든 범주에 내재된 기본일 뿐 만고불변의 진리나 ‘훌륭한 사상’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 용어를 남용하면서 원칙을 운운하면 고집스럽고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정치인들은 곧잘 원칙을 강조하며 신뢰와 연결 짓지만 이는 원칙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의 용기다. 행동 규범도 principle이고 기구나 도구의 작동원리도 principle이며 교리나 공식 가설도 principle이다. 기독교 교리와 불교 교리가 충돌하면 두 개의 principle이 맞붙는 것인데 이 경우에는 누가 옳은 것일까. 그것도 원칙을 고수하며 우리가 승리했다고 할 것인가. 이런 점을 감안하면 협상에서 ‘우리가 원칙을 고수해서 성공한 협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견강부회다. ‘우리가 우리 기준을 고집해서 성공했다’는 식의 말은 ‘우리는 소통에 무능합니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한반도 남북 대표자들이 협상을 마쳤는데 말들이 많다. 영어에서 ‘We are sorry’와 ‘We apology’는 의미가 매우 다르다. 전자는 책임이 없지만 동정하고 연민한다는 뜻이고 후자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말이다. ‘유감’은 전자에 가깝고 ‘사과’는 후자적 표현이다. 상대가 ‘우리가 책임은 없지만 두 병사가 다쳤다니 안됐다’는 것이 북한의 표현인데 이를 사과했다면서 억지 해석으로 자화자찬 하는 정부의 표현은 측은심마저 든다. 영어에는 이런 혼동이 없는데 어찌 우리말 표현을 놓고 정부와 국민의 해석이 다를까. 참으로 안타까운 정부에 ‘유감스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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