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카메라 모듈의 점검장비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 A사는 새로운 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필요 부품을 업그레이드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임직원 17명의 소규모 업체이지만 정밀기술이 필요해 부설연구소를 따로 뒀다. 그런데도 직접 기술을 개발하려면 부담이 커서 필요 기술을 타 기관에서 빌려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업체는 지금까지 공공연구기관이 개발한 공공기술을 활용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관련 정보를 한번도 접해 보지 못해 방법을 몰랐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A사 연구소 관계자는 “지난해 사장의 지시로 공공연구기관에 선행기술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2차례 문의했지만 아무런 회신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272개 대학, 공공연구소 등 공공연구기관의 기술이전·사업화 현황을 조사한 ‘2014년 기술이전·사업화 조사분석 자료집’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공공기관이 보유한 24만8,247건의 기술 중 17.2%(4만2,794건)만 기술 이전됐다. 나머지 19만여건의 기술은 애써 개발해 놓고도 사업화로 이어지지 않아 휴면 상태에 놓여 있다. 정부가 2000년 관련법 제정 후 현재까지 범 부처 합동으로 ‘기술이전 및 사업화 촉진계획’을 다섯 차례나 발표해 시행하고 있지만 업체 활용 실적이 5건 중 1건에 그칠 정도로 저조하다.
중소ㆍ중견업체들은 공공 기술 활용에 대한 홍보 부족을 이유로 꼽았다. 공공연구기관은 보유기술을 소개하는 온라인 소식지나 책자 발행 등 홍보활동을 하지 않는 기관이 60.7%였다. 나머지 홍보활동을 한 기업 중에서도 27.6%는 홍보 건수가 10건 미만이다. 어떤 기술을 보유했는지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으니 기술을 이용하고 싶은 기업들이 관련 정보를 찾을 길이 없다.
공공연구기관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 필요한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기술은행(www.ntb.kr)에 주요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곳에 올라온 기술은 현재 8만여건으로 전체 보유기술의 3분의 1에 그친다. 산업기술진흥원 관계자는 “개발한 기술 모두 등록하도록 공공연구기관에 요구하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시장의 수요를 파악하지 않고 기술을 개발해 기업들의 외면을 받는 경우도 많다. 중장비 부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 B사는 “지게차 운전석의 소음을 줄이는 기술이 필요해 산업기술협회에서 진행하는 세미나를 찾아가 상담 받고 개발된 신기술을 소개하는 책자도 빠짐없이 훑어 봤지만 원하는 기술이 없었다”며 “어떤 기술이 필요한 지 파악 후 개발에 착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올해 3월 발간한 ‘공공기술사업화기업 육성 방안’ 보고서에서도 “연구기관이 시장 수요에 맞는 R&D 기획·관리·사업화 등이 연계되는 시스템이 부족하다”며 “소극적인 기술 마케팅으로 수요기업 발굴에 한계를 드러냈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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