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학과 반도체 칩 기술의 발전은 이제 인간의 뇌를 닮은 칩을 만들어보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이런 칩들을 뉴로모픽(neuromorphic) 칩이라고 부른다. 뉴로모픽 칩들은 인공지능이 아직까지 풀지 못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앞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초로 인간의 뇌를 닮은 뉴로모픽 칩
인간의 뇌에 영감을 받아 칩으로 구현하려던 첫 번째 시도는 칼텍의 카버 미드(Carver Mead) 교수가 1980년대 초에 최초로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꿈꾼 것은 수백 만 개에 이르는 매우 많은 수의 명령어를 병렬로 처리할 수 있는 칩이었다. 그런 칩을 만든다면 비디오나 사운드와 같은 대량의 비정형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를 구현하기 위해 1980년대 중반에 신경과학자들과 함께 신경세포가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같이 연구하고, 그 원리를 접목한 자신의 첫 번째 뉴로모픽 칩을 만들었다. 이렇게 제작한 칩으로 망막이나 달팽이관의 데이터 처리회로를 흉내내어 물체의 윤곽을 검출하거나, 특정한 소리를 알아내는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제작한 칩은 동작시키기도 어려웠고, 제작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호기심을 실험해보는 수준을 넘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인간의 뇌를 닮은 칩이 중요한 이유
현재의 컴퓨터는 비록 그 집적도와 속도는 빨라졌지만, 기본적으로 계산기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우리의 뇌가 동작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단순한 작업을 굉장히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내는 것에는 훌륭하지만, 유연성이나 적응력, 진화와 학습 등에 있어서 많은 부분 문제가 있는 구조이다. 기존의 컴퓨터는 메모리와 프로세서가 분리되어 있으며, 이들을 연결한 버스(bus)라는 구조가 존재한다 (이런 구조를 가진 컴퓨터를 흔히 폰 노이만 방식 컴퓨터라고 한다. 현대의 컴퓨터는 대부분 폰 노이만 방식 컴퓨터다). 메모리와 프로세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굉장히 빨라지고, 많은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버스가 이런 용량을 받아주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는데, 이를 컴퓨터 과학자들은 "폰 노이만 병목 (von Neumann bottleneck)"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서 기존의 컴퓨터 구조는 단순한 데이터를 굉장히 빠른 속도로 처리하는 것에는 적합하지만, 여러 데이터를 동시에 여러 개의 프로세서가 처리하는 것은 잘 못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는 어떻게 다를까? 인간의 뇌가 가지고 있는 학습과 기억의 가장 중요한 요체는 수 많은 신경세포들 사이의 연결이다. 이 연결구조를 시냅스(synapse)라고 부르는데, 신경세포에서 나오는 무수한 수상돌기와 축삭 등이 서로 만나서 이루어진다.
인간의 뇌의 메모리와 프로세서는 특별히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시냅스와 신경세포들의 연결 패턴에 의해 통합적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인간의 뇌와 기존 컴퓨터 구조와의 근본적인 차이다. 인간의 뇌의 메모리와 프로세서를 책임지는 신경세포들의 처리 속도는 10 Hz에 불과하다. 이는 초당 10번 정도를 처리하는 속도로, 최근 GHz 단위를 오가는 컴퓨터들의 클락 스피드를 생각한다면 1억 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런 구조를 가진 뇌는 모든 방향으로 신호를 보낼 수 있으며, 순식간에 여러 프로세서들이 동작하는 상황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의 뇌가 가지고 있는 신경세포의 수는 1000억 개가 넘고, 시냅스의 수는 100조 개가 넘기 때문에 엄청난 병렬처리 프로세서에 의해 인간의 뇌가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다소 느리기는 해도 유연성과 수 많은 상황을 동시에 처리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인간의 뇌를 기존의 컴퓨터 구조가 따라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뉴로모픽 칩의 상용화가 임박하다.
카버 미드 교수가 꿈꾸었던 인간의 뇌를 닮은 뉴로모픽 칩이 IBM이 발표한 트루노스(TrueNorth)라는 칩에 의해 상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루노스는 IBM이 미국 국방성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인터넷을 탄생시킨 곳으로도 유명)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제작한 SyNAPSE 라는 뉴로모픽 칩 프로토타입 코어 4096개를 집적해서 탄생한 칩이다. 트루노스는 54억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되어, 100만개의 신경세포와 2억5천600만개의 시냅스를 구현하였는데, 이는 대략 꿀벌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8월 17일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는 트루노스를 병렬로 연결해서 4800만 개의 신경세포를 가진 시스템을 공개했는데, 이는 설치류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아직 인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런 정도의 발전 속도라면 언젠가는 인간에게 근접한 뉴로모픽 칩이 나오는 것도 시간 문제로 여겨진다.
현재 이런 칩들을 이용해 만들어진 컴퓨터는 복잡한 정보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작업과 환경에 다양하게 적응하는 방법을 학습시킨다. 기존의 컴퓨터로서는 어렵지만, 학습에 최적화된 작업을 담당하는 것이다. 매우 전통적인 비디오 게임들을 매우 잘 수행하며, 그 밖에도 네비게이션, 영상 및 패턴 인식, 연관 기억 및 분류와 같은 전통적인 인공지능 문제를 푸는 테스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새로 등장하는 컴퓨터 칩이 기존의 폰 노이만 방식의 컴퓨터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여전히 폰 노이만 방식의 컴퓨터는 수학연산과 정확한 업무용 컴퓨팅에 있어 우월한 성능을 보여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뇌를 닮은 뉴로모픽 컴퓨터는 훨씬 유연하게 동작을 하면서 인간과 유사한 학습과 관련한 일을 주로 맡아서 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비록 인간의 뇌를 흉내낸 칩이나 컴퓨터가 등장한다고 잘 동작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난관이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의 프로그래밍 모델이 필요하며, 이를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도구의 개발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컴퓨터는 경험에서 배우고, 가정을 세우며, 기억을 강화하고, 결과를 검토한 뒤에 다시 학습을 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처럼 앞으로 인간의 뇌를 닮은 인공지능 컴퓨터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하지만, 지속적인 발전이 진행되고 있기에 마냥 꿈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연구는 전자공학이나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의 힘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 뇌과학의 발전과 재료과학 등과 같은 완전히 이질적인 학문을 공부한 사람들의 협업이 절대적이다. 이런 첨단의 연구에서도 융합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경희사이버대학교 모바일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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