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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로 몰더니 "갚아라" 이상한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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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로 몰더니 "갚아라" 이상한 소송

입력
2015.08.3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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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조합장 "뇌물 줬다" 증언 탓 옥살이하고 나온 전 시의원에

"대여금 3000만원 돌려달라"

전 시의원 "왜 뇌물이라 했나… 억울"

※편집자주: 이 기사는 이번 사건 취재 내용의 일부입니다. 풀 스토리는 ‘뇌물수수 시의원, 그는 사법 피해자인가’라는 주제로 사건 추적 과정을 4편으로 나눠 한국일보닷컴(www.hankookilbo.com)에 연재됩니다. 기자가 검찰과 법원의 결정에 의심을 품고 6개월 동안 발로 뛰며 취재한 기록이 전달됩니다.

뇌물 수수 혐의로 감옥에 갔다 온 시의원. 만약 그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면 누가 책임져야 할까. /게티이미지뱅크
뇌물 수수 혐의로 감옥에 갔다 온 시의원. 만약 그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면 누가 책임져야 할까. /게티이미지뱅크

대여금을 뇌물이라고 주장해 채무자를 구속시킨 재건축 조합장이 재판이 끝나자 빌려준 돈이니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의 부실수사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당사자는 조합장을 위증 혐의로 최근 고소했다.

30일 검찰과 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 아현3구역 재건축 조합장이던 유모(67)씨는 지난해 8월 서울시의원을 지낸 백의종(73)씨에게 “3,000만원을 돌려 달라”며 대여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백씨는 앞서 유씨로부터 수표 3,000만원과 현금 4,000만원 등 총 7,000만원을 뇌물로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년 6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유씨는 소장에서 “3개월 후에 갚겠다고 3,000만원을 빌린 후 여러 차례 독촉을 했는데도 갚지 않아 부득이 소송을 제기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양측이 대여금이라고 모두 인정하자 올해 4월 변제기간을 정하고 소송을 마무리했다.

재건축 조합장 유씨가 지난해 8월 백의종 씨를 상대로 제기한 대여금 반환 청구 소장.
재건축 조합장 유씨가 지난해 8월 백의종 씨를 상대로 제기한 대여금 반환 청구 소장.
재건축 조합장 유씨가 백의종 씨를 상대로 제기한 대여금 반환 소장. 유씨는 3,000만원을 빌려간 돈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재건축 조합장 유씨가 백의종 씨를 상대로 제기한 대여금 반환 소장. 유씨는 3,000만원을 빌려간 돈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하지만 대여금 소송을 제기한 유씨는 4,5년 전 검찰과 법정에선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유씨는 검찰에서 백씨에게 건넨 3,000만원이 대여금이 아니라 뇌물이라고 주장했고 검찰은 유씨 진술을 바탕으로 2010년 11월 백씨를 구속기소 했다. 백씨는 차용증을 작성했고 수표 사본에 차용금 표시까지 해두는 등 대여금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지만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백씨가 재건축 조합장인 유씨로부터 인허가를 빨리 받게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유씨는 백씨 재판의 증인으로 법원에 출석해서도 “부탁의 대가로 그냥 준 돈이다. 백씨에게 돈을 갚으라고 독촉한 적도 없고 돌려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며 뇌물 주장을 바꾸지 않았다.

다음은 백의종 씨의 피의자 신문조서에 기재된 내용이다. 2010년 11월 체포된 백씨가 유씨와의 대질신문 과정에서 나온 문답이다. 유씨는 당시 재건축 조합장 시절 각종 개인비리로 2009년 4월 구속돼 항소심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 받은 상태였다. 유씨는 백씨에게 돈을 갚으라고 독촉한 적도 없고 돌려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진술한다.

수사관 : 백씨에게 건넨 3,000만원 갚으라고 독촉한 사실이 있나요?

유씨 : 그런 사실 없습니다. 부탁의 대가로 그냥 준 것입니다.

수사관 : 백씨에게 준 돈에 대해 돌려받을 생각이 있었나요?

유씨 :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검사 : 혹시 차용금이기 때문에 근거가 확실히 남는 수표로 준 것 아닌가요?

유씨 : 빌려준 돈이라면 백씨가 갚아야 할 것 아닙니까. 어떻게 빌려준 돈일 수 있습니까.

유씨는 백씨의 1심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왔다. 유씨는 법정에서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선서했다.

검사 : 백씨는 3,000만원을 증인에게 빌린 것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유씨 : 빌려준 것 같으면 벌써 갚았어야죠.

변호인 : 증인은 3,000만원 주고 난 후 지금까지 백씨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한 적이 있나요?

유씨 : 없습니다.

다음은 백씨의 항소심 법정에서 주고 받은 문답이다.

재판장 : 증인(유씨)과 백씨는 형식적으로 차용증을 작성했나요?

유씨 : 차용증을 작성한 것은 맞지만 빌려준 것이 아닙니다. 당시 상황 때문에 돈을 준 것입니다.

변호인 : 증인은 백씨에게 3,000만원을 뇌물로 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요?

유씨 : 예

재판부는 그러나 검찰과 유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3,000만원을 대여금으로 인정해 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유씨의 진술과 금품액수가 적힌 메모상으로만 존재하는 현금 4,000만원을 뇌물로 인정해 실형을 선고했다. 백씨는 수사나 재판 과정에 현금 4,000만원에 대해서도 받지 않았다는 주장을 굽힌 적이 없다.

황당한 일은 법원 선고 후에 발생했다. 유씨는 수표 3,000만원에 대한 법정 진술을 뒤집고 뒤늦게 대여금이라며 백씨에게 반환소송을 낸 것이다. 유씨는 전화통화에서 “법원에서 뇌물이 아니라고 해서 대여금 소송을 냈다”며 검찰과 법정에서 뇌물이라고 주장한 이유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유씨의 ‘뇌물 진술’로 수감생활을 해야 했던 백씨는 “차용금이 맞기 때문에 변제하기로 합의했지만 과거에 왜 뇌물로 기소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억울해서 이대로는 눈을 못 감는다. 전체 사건의 재심을 청구할 것”이라고 했다.

유씨는 검찰과 법정에서 왜 대여금을 뇌물이라고 주장했을까. 특수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뇌물로 줬다고 진술할 것을 유씨에게 종용했거나 유씨가 어떤 이득을 바라고 자발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 아니겠나. 유죄로 인정된 4,000만원 부분도 석연치 않다”고 분석했다. 검찰은 뇌물수수 혐의로 백씨를 기소하면서도 뇌물공여자인 유씨는 기소하지 않았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문제 될만한 일은 없었다”고 밝혔다.

법조인들은 유씨가 위증 혐의로 처벌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법원장을 지낸 변호사는 “여러 사건을 접해봤지만 정말 이례적인 소송”이라며 “법정에서 기억에 반하는 증언을 했다고 인정될 때 위증죄가 적용되는데 딱 떨어지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형사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과 민사소송의 주장은 별개라며 위증죄 적용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검찰의 조직논리를 주목해야 한다는 법조인도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위증으로 기소할지 결정하는 주체가 바로 검찰이다. 유씨의 위증을 인정하면 검찰 스스로 과거의 잘못된 수사를 인정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백씨는 대여금 반환 청구소송이 제기되기 전인 2013년 5월 유씨를 위증 혐의로 고소한 적이 있는데, 경찰의 기소 의견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유씨를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지난 28일 다시 제기한 백씨의 위증 혐의 고소는 어떤 결론이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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