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청춘(SBS)’에는 요즘 예능치고 없는 게 참 많다. 아이돌이 없고, 20대와 30대 출연자도 없고, 예능에 그 흔하디 흔한 복불복 게임 같은 것도 없다.
뭐, 당연히 그래서 빵 터지는 재미는 별로 없다. 눈길을 확 잡아 끄는 예쁘고 어린 출연자도 없다. 사실은 나도 이 프로그램을 자주 챙겨보진 않는다. 그런데 간혹 채널을 돌리다가 이 프로그램을 만나면, 순간 리모컨을 내려놓고 허허 웃으면서 보게 된다. 아직도 순진한 웃음을 간직하고 있는 50대 출연자들이 오히려 어린 친구들보다 신선해 보일 때가 있어서 그렇다.
‘불타는 청춘’은 50세 안팎의 싱글 연예인들이 1박2일로 여행을 떠나 친구가 되는 과정을 담은 예능인데,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어르신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에 가깝다.
하지만, 이른바 ‘5학년(50대)’이라는 나이에 경망스럽게 행동하기 민망하다는 사회적인 인식 때문인지, 출연자 중 대다수가 ‘돌싱’이라는 점 때문인지 남녀 출연자 서로서로가 조금은 수줍다.
간혹 연기자 김일우가 “그동안 방을 같이 써 봤던 여자가 몇 명인지 순간적으로 세어봤다”는 등돌발 발언을 하면, 제작진은 자막에 ‘50금(禁) 멘트’라고 쓰며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불타는 청춘’에 나오는 출연자들은 과거 10여 년 전의 ‘천생연분(MBC)’이나 ‘산장미팅(KBS)’ 같은 20대 스타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남자 출연자들이 적극적으로 특정 여자 출연자에게 ‘들이대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과 비교해서 수줍기 짝이 없다.
사실은 ‘수줍다’기보다 ‘조심스럽다’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20대 짝짓기 프로그램처럼 남녀 출연자들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뜨겁게 오가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느낌은 별로 없다. 대신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서로 느껴진다. 중년의 출연자들은 섣불리 ‘들이대는’ 것보다, 때론 상처받기도 했던 과거를 생각하면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도 느껴진다. 또 ‘뜨거운 사랑이 뭐 그리 대수냐. 다 지나고 보니 상처만 남더라’는 듯한 ‘산전수전 다 겪은 눈빛’도 언뜻언뜻 보인다. 그 과정을 지나 남은 건, 성별 관계 없이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과 진솔한 인생 이야기 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싶다는 마음인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의 매력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어린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그 젊디젊은 ‘아이들’이 자신의 가장 잘 난 모습, 예쁜 모습만 보여주려고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서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때론 그런 에너지가 피곤하다.
그런데 ‘불타는 청춘’엔 그런 부분이 없다. 이 프로그램 PD가 한 인터뷰를 보니 “우리 프로그램엔 MSG가 없다”고 자랑을 했던데, 그게 바로 이런 점을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현재 ‘불타는 청춘’의 출연자들이 바로 그 20대의 어린 나이 때, 지금의 어린 친구들처럼 자신의 좋고 예쁜 모습만 보이려 안간힘을 쓰던 그 피곤한 시절을 다 지켜봤던 나 같은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이 은근히 재미있는 것이다. 특히 현재 출연진 중에서도 90년대에 톱스타 자리에 있었던 김국진, 강수지, 김완선, 김도균(록 팬들에겐 톱스타) 같은 캐릭터의 현재 진솔하고 순진한 모습이 가장 재미있게 다가온다.
어쩌면,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동력이 ‘김국진-강수지 커플’이 될 수밖에 없다. 둘 다 90년대 자타공인 톱스타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묘하게 ‘썸’을 타는 듯한 분위기인데, 김국진은 수줍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강수지가 더 적극적이고 화통한 것도 재미있다.
90년대 ‘요정’이던 강수지가 김국진에 대해서 “나도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 행복한 게 없더라. 그런 면에서 볼 때, 딸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뭔가 안쓰러운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렇게 엄마의 눈으로 보면 김국진씨가 참 안쓰럽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은, 가식이 섞이지 않은 진심으로 들렸다.
사실 90년대에 청순하고 새침한 요정이던 강수지와, ‘국진이빵’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던 톱스타 김국진을 생각하면 2015년 여름에 강수지가 김국진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더랬다.
지난주 방송분 마지막 장면에서, 새 출연진인 탤런트 박형준의 등장이 예고됐다. 박형준은 대놓고 예전부터 강수지의 열혈팬이라고 고백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지금까지 해 왔던 것과는 좀 다르게,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예고다.
아마도 강수지-김국진 커플에 관심을 받으면서 프로그램의 시청률 동력이 생기니까, 더 탄력을 받으라는 의도로 박형준을 투입하는 듯하다.
박형준의 투입이 프로그램에 새 활력을 불어넣을지, 아니면 반대로 재미있게 보던 포인트(MSG 없는 프로그램)를 깨버릴지 예상하긴 어렵다.
다만, 어쩌면 어리바리하고 수줍기만 해보이는 ‘개그맨 김국진’의 진가가 이제부터 드러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생기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90년대 김국진이 가장 잘 했던 분야는 ‘테마게임(MBC)’과 같은 극화에서의 코믹 연기였다. 어쩌면 김국진이 장기를 살려서 이런 상황을 ‘삼각관계 드라마’처럼 이끌어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진짜인지 연극인지 그 경계조차 애매하게, 능청스러운 연기와 감각으로 말이다. ‘진행 능력’과 ‘말발’, ‘순발력’이 있어야만 톱 개그맨 취급을 받는 최근의 트렌드를 김국진이 보기 좋게 뒤엎으며 ‘클라스’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방송 칼럼니스트
불타는 청춘-싱글중년 친구찾기
SBS TV 매주 화요일 밤 11시15분
중견 스타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알아가며 진정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
★시시콜콜 팩트박스
1. ‘불타는 청춘’은 원래 금요일 밤에 방송되던 예능이었는데, 8월 25일부터 화요일 밤으로 편성이 바뀌었다. 편성 변화 후 시청률은 소폭 상승했다고 한다.
2. ‘불타는 청춘’에는 김국진과 강수지, 김완선, 김동규를 비롯해 김혜선, 양금석, 김일우, 윤예희 등이 출연한다. 출연진은 50세 안팎의 나이에 현재 싱글이어야 한다. 지난 25일 처음 출연한 배우 박형준(45)이 프로그램의 새로운 막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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