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비서진 카톡방 대화에 "李가 먼저 도착하면 알려달라"
2013년 4월 4일 동선 등 상세 기록
검찰, 만남 부인하는 李 묶을 증거로… 李측 "돈 줬다는 말 없어" 반박
이완구(65) 전 국무총리가 성완종(64ㆍ사망) 전 경남기업 회장 비서진의 ‘카카오톡 대화’에 발목이 잡힐 위기에 놓였다. 이 전 총리는 성 전 회장에게서 3,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이 전 총리가 “금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고, 당일 성 전 회장을 선거사무실에서 만났는지는 기억이 없다”고 강하게 반박하면서 재판은 팽팽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부장 장준현) 심리로 열린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이 갑자기 카톡 대화를 증거로 제시하면서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검찰은 이날 성 전 회장이 이 전 총리를 만난 것으로 알려진 2013년 4월 4일 성 전 회장의 비서진이 카톡을 통해 주고 받은 대화내용을 증거로 제출했다. 비서진이 일정을 공유하기 위해 사용한 카톡 대화에는 4월 4일 성 전 회장의 동선, 관련자 접촉 상황 등 실시간으로 벌어진 일들이 모두 기록돼 있다. 검찰이 “카톡 단체대화 내용은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물적 증거 중 하나”라고 자평할 정도로 기록이 상세했다.
검찰이 제시한 카톡 내용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당일 오전 회사를 출발, 오후 2시쯤 충남 홍성에서 열린 충남도청 개청식 행사에 참석했다. 이후 오후 4시쯤 이 전 총리의 부여 선거사무소를 방문, 오후 5시쯤 떠났다. 카톡 대화에는 성 전 회장이 이 전 총리 보다 선거사무소에 늦게 들어가기 위해 비서진에게 이 전 총리가 먼저 도착하면 가르쳐 달라고 지시한 내용도 담겼다. 검찰은 “비서진의 대화는 성 전 회장이 사망 직전 기자와 전화 인터뷰 한 내용 등 다른 객관적 자료와도 일치한다”며 카톡 대화의 신빙성을 자신했다. 성 전 회장은 사망 직전 경향신문 기자와 통화에서 “4월 4일 선거사무소에서 이 전 회장에게 3,000만원을 줬다”고 폭로했었다.
이 전 총리 측은 카톡 대화에 돈 전달 사실이 적시되지 않은 점을 공격했다. 변호인은 “카톡 대화내용은 단지 성 전 회장이 당일 부여 선거사무소에 갔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자료에 불과하다”며 “돈을 줬다는 내용은 전혀 안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만약 성 전 회장이 금품을 공여하고 직원들(비서진)이 일부 돈을 만들었거나, 언론보도처럼 박스에 담아 주었다면 그런 대화도 카톡방에 분명히 나왔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전 총리 측은 오히려 “비서진이 사건 당일과 전후, 성 전 회장 사망 전후 수일에 걸쳐 나눈 카톡 대화가 모두 공개돼야 한다”고 검찰을 압박했다. 이어 “검찰이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자료가 없기 때문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실제로 성 전 회장 비서진의 2년 전 카톡 대화까지 공개되면서 이들이 최근까지 나누었을 대화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더구나 당시 비서진이 최근까지 성 전 회장 주변에서 그를 보좌해온 만큼 다른 폭발성 있는 내용이 남아 있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런 파장을 의식한 듯 일단 카톡 대화 일부만을 확보하고 있고, 성 전 회장 사망 전후 상황에 대한 문자는 보관돼 있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성 전 회장의 비서진은 필요에 따라 카톡 대화방을 이용했을 것으로 보여 검찰이 이를 단서로 미진한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재개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날 재판부는 성 전 회장의 측근 한장섭(50) 전 경남기업 부사장과 이용기(43) 전 비서실장 등 14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성 전 회장이 사망 전 전화 인터뷰를 한 경향신문 기자도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 전 총리는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김관진기자 spiri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