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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헌법정신에 위배" 교수·교사들 나섰다

입력
2015.09.02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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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역사학과 등 교수 34명 서명

황우여 부총리에 의견서 전달

2일 오후 오수창(왼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와 같은 대학 유용태 역사교육과 교수가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반대하는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게 전달한 뒤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의견서를 읽고 있다. 교육희망 제공.
2일 오후 오수창(왼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와 같은 대학 유용태 역사교육과 교수가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반대하는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게 전달한 뒤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의견서를 읽고 있다. 교육희망 제공.

“지금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에 필요한 것은 국정 교과서로 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역사 교과서 제작의 자율성을 좀 더 폭넓게 허용하는 일입니다.”

2일 오후 2시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와 유용태 역사교육과 교수가 굳은 표정으로 서울 세종로 정부 서울청사 황우여 교육부 장관 집무실을 찾았다. 같은 대학 역사학과, 역사교육과 교수 등 역사관련 5개 학과 교수 34명의 서명이 적힌‘황우여 교육부 장관님께 드리는 의견서’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 의견서에는 최근 정부와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역사(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대한 우려와 국정화를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반박논리를 담았다.

이들은 의견서를 통해 정치권 중심의 현재 국정화 논의가 “‘교육의 자주성ㆍ전문성ㆍ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정신과 합치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뒤 “역사 교과서 서술을 정부가 독점하는 정책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통해 오랜 고난 끝에 이룩한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에도 걸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의견서 전달은 현 정부 들어 추진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들의 캠퍼스 밖 첫 번째 집단적 행동이다. 이들이 함께 목소리를 낸 이유는 새누리당과 정부가 이달로 예정된 ‘2015 교육과정개정안’ 확정 고시를 앞두고 ‘국정교과서 추진’의사를 앞다투어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황우여 장관은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국정화 발언을 이어오고 있고, 이날 오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중·고교 학생들이 편향된 역사관에 따른 교육으로 혼란을 겪지 않도록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수 정치인들이 국정교과서 도입 방침을 노골화할 수록 역사학자와 역사교사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이날 오전 교사 2,255명의 서명이 담긴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2차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하나의 역사해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국정교과서는 역사교육의 본질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며 “앞으로 대대적인 ‘국정교과서 폐지운동’을 시작하고 대안적 역사교육을 실천하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사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역사를 다양하고 또 균형 잡힌 시각으로 봐야 할 학생들에게 단일한 사관(史觀)을 주입하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대표는 “국정 제도가 과거 유신 독재시절 교육 통제를 목적으로 도입됐다 이후 민주화를 거치며 폐지됐던 만큼, 이를 다시 꺼내 든다는 건 그 동안 이룩한 역사를 되돌린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지난 2013년 친일ㆍ독재 미화로 논란이 됐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 당시 교과서의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현재 국정화를 주장하는 것도 모순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오수창 교수는 ‘교과서가 많으면 내용이 통일되지 않아 혼란스럽다’는 국정교과서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오히려 현재 검정제도 하에서도 교과서의 내용이 지나칠 정도로 통일돼 있다”고 반박했다. 엄격한 집필기준 때문에 교과서의 다양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학계의 반발 등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교육부는 이달 말 ‘2015 교육과정개정안’을 확정고시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부를 공식 발표할 방침이다. 김연석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장은 “아직 정확한 입장은 결정된바 없다”면서도 “관련 용역과 논의는 마무리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사들은 “정치논리 보다는 아이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한경 대표는 “정치인과 공무원은 결정한 뒤에 자리를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교사와 아이들은 이들이 무책임하게 결정한 역사를 배워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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