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면 일본의 잔인함에 새삼 전율을 느낀다. 뮤지컬에서 명성황후는 조선 말기 척사파와 개화파의 대립 와중에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대원군의 등락 시기를 거치며 뛰어난 지략과 정치ㆍ외교적 수완을 발휘, 조선의 국권과 왕권을 지키려 한다. 120년 전 명성황후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고뇌하던 장면이,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의 ‘항일 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 참석장면과 착잡하게 어우러지는 느낌도 받는다.
▦ 뮤지컬의 절정은 시해장면이다. 일본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일본 공사에게 명성왕후 제거를 명령한다. 작전명은 ‘여우사냥’. 조선 침탈을 호시탐탐 노리던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강대국 간 세력균형을 이용했던 명성황후는 눈엣가시였다. 일본은 청일전쟁 이후에도 조선이 러시아 쪽으로 계속 기울자 시해를 결행한다.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는 1895년 10일 8일 새벽 사무라이 낭인(浪人)들을 동원, 경복궁을 넘어와 명성황후를 잔인하게 시해한 뒤 불태운다. 이른바 을미사변이다.
▦ 이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칼이 총 길이 120cm에 이르는 히젠토(肥前刀)로, 일본 후쿠오카(福岡)에 있는 구시다 신사에 보관되어있다. 나무로 만든 칼집에는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라고 새겨져 있다. ‘일순간 번개처럼 늙은 여우를 베었다’는 뜻으로 일본 무뢰배들의 무도함을 드러낸다. 신사에는 ‘황후를 이 칼로 베었다’고 적힌 문서도 보관돼 있다. 이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2010년에는 혜문스님 등을 주축으로 ‘히젠토 환수위원회’가 결성되어 이 칼을 한국으로 넘겨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국모 시해에 사용된 증거품 확보 차원에서다.
▦ 일본 극우보수지 산케이신문이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가에 대해 ‘미ㆍ중의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칼럼은 “이씨 조선에는 박 대통령과 같은 여성권력자가 있었다”며 “민비 세력은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했고,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됐다”고 썼다. 살인범이 자신들의 조상인 일본인들이라는 내용은 뺐다. 게다가 조선왕조는 이씨 조선으로, 명성황후는 민비로 낮춰 부른 것도 뻔뻔하고 비열하다. 칼질을 하고 소금까지 덧뿌리는 행태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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