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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슐린 주사=인생 끝' 당뇨병 환자들 편견 몸 속의 혈당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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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슐린 주사=인생 끝' 당뇨병 환자들 편견 몸 속의 혈당 키운다

입력
2015.09.06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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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맞으면 평생 맞는다" 환자들 대부분 주사 거부

인슐린 외부 공급 필요해도 분비 촉진하는 약에만 의존

"주사 과다 투여 땐 저혈당 위험" 의사들 소극적 치료도 한몫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제2형 당뇨병은 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인슐린의 에너지 대사 기능이 떨어지는 ‘인슐린 저항성’이 발병 원인이다. 그래서 당뇨병을 오랫동안 앓은 환자들은 인슐린을 외부에서 공급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인슐린 주사=인생 끝’이라는 인슐린 주사에 대한 환자들의 ‘심리적 저항성’이 치료의 결정적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우리나라 당뇨병환자의 95%는 제2형 당뇨병이다. 췌장의 베타세포에서 분비되는 인슐린 양이 감소하고 세포들의 인슐린 반응률이 떨어지는 ‘인슐린 저항성’ 이 발병 원인이다. 제2형 당뇨병환자의 대부분은 경구 혈당 강하제를 통해 치료를 시작한다. 먹는 약으로 혈당이 조절되면 다행이지만 치료가 장기화되면 먹는 약만으로는 혈당 조절이 이뤄지지 않는다. 인슐린을 만드는 베타세포 기능이 저하돼 인슐린 분비가 감소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인슐린 주사에 대한 거부감으로 치료를 기피하고 있는 제2형 당뇨병 환자들의 비율은 많게는 70~8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당뇨환우연합회가 최근 인슐린 치료경험이 있는 중증 당뇨병환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0.3%가 의료진에게 주사치료를 권고 받고도 인슐린 치료를 미루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환자가 인슐린치료를 시작하기까지 평균 기간도 5.9개월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렵게 인슐린치료를 시작하더라도 중도 포기자들도 많다. 인슐린치료를 중단한 100명 중 77명은 자신의 의지로 치료를 중단한 것으로 조사됐다. 투여 방법의 불편함과 잦은 투여 및 투여시간 준수 등 어려움이 인슐린치료를 중도 포기하는 주요 이유로 파악됐다.

“인슐린 맞으면 인생 막장” 심리적 저항 심각

내분비내과 전문의들은 인슐린치료에 대한 환자들의 이해부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차봉수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당뇨병환자의 인슐린 분비기능은 정상인에 비해 50~60% 감소돼 있다”면서 “인슐린은 신경ㆍ뇌세포와 마찬가지로 기능이 상실되면 재생되지 않아 당뇨병이 진행되면 자연적으로 인슐린 분비가 감소돼 외부에서 인슐린을 공급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차 교수는 “환자들은 당뇨병을 먹는 약을 통해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먹는 약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보조적 수단에 불과하다”면서 “베타세포 기능이 떨어져 체내에서 인슐린 분비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약을 먹어도 혈당을 조절할 수 없어 인슐린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영국에서 시행된 전향적 당뇨병연구(UKPDSㆍUK Prospective Diabetes Study)에 따르면 제2형 당뇨병환자는 당뇨병 진단 후 6년이 경과하면 인슐린 분비가 정상치 보다 25% 정도 감소했다. 전문의들은 인슐린치료를 하면 가뜩이나 모자란 체내 인슐린이 소모될 것이라는 기우(杞憂)도 치료에 장애가 된다고 말한다. 차 교수는 “환자들 중 인슐린 주사를 맞으면 체내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반대”라면서 “외부에서 인슐린을 투여하면 체내에서 분비된 인슐린을 보호하고 혈당조절도 가능하다”고 했다.

환자들이 인슐린치료에 대해 부정적 태도 및 저항감을 갖고 있는 것도 문제다. 2008년 대한당뇨병학회 학회지에 게재된 ’제2형 당뇨병환자에서 인슐린 치료시작에 대한 저항성 조사‘ 논문에 따르면 심리적 인슐린 저항성(PIRㆍpsychological insulin resistance)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가 약 24~73%에 달했다. 환자들은 ▦인슐린치료를 시작하는 것은 당뇨병이 심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슐린치료를 시작하면 평생 인슐린을 맞아야 한다 ▦인슐린치료를 시작하는 것은 기존치료가 실패한 것 등의 이유로 인슐린치료에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곽수헌 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인슐린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의 15% 정도는 혈당이 높아 먹는 약으로 치료가 되지 않음에도 인슐린치료를 절대 받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인슐린 치료에 부정적인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곽 교수는 심리적 인슐린 저항성을 신체ㆍ정신적 저항로 나눠 설명했다. 신체적 저항은 인슐린주사를 맞으면 아프고, 주사바늘에 대한 공포와 함께 인슐린주사 시간 및 주사용량 등을 관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저혈당 및 체중증가 등 인슐린 치료로 인한 부작용도 신체적 저항에 속한다.

심리적 저항은 신체적 저항보다 더 심각하다. 환자들은 인슐린치료 자체가 당뇨병 합병증 등 건강상 문제를 유발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한술 더 떠 환자들은 인슐린치료 자체가 삶을 황폐화시킨다고 생각한다. 매일 일정 시간에 인슐린을 투여해야 하는 압박감에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인슐린치료를 시작한 환자들은 자신이 인생의 실패자라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면서 “인슐린치료를 시작하면 죽기 전까지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과 함께 직장에서 인슐린치료를 하는 것이 알려져 직장을 잃게 될까 노심초사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전문의들은 “환자들이 인슐린치료가 당뇨병 치료의 마지막 방법이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차봉수 교수는 “당뇨병이 오랜 세월 지속되면 체내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아 외부에서 인슐린을 공급할 수밖에 없다”면서 “환자들이 인슐린치료를 당뇨병치료의 마지막이 아니라 자연스런 치료과정으로 이해해야 치료효과가 증대될 수 있다”고 했다. 환자들이 10년 이상 당뇨병이 지속되면 베타세포의 기능과 인슐린분비가 점차적으로 감소해 적절한 혈당조절을 위해서는 외부에서 인슐린을 공급할 수밖에 없는 당뇨병의 병태 생리학적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들 징벌적 수단 사용이 부작용 불러

환자들이 인슐린치료가 당뇨병 치료의 일환이 아닌 최후 수단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의사들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 의료계 일각의 지적이다. 의사들이 인슐린치료를 징벌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십 대 초반, 당뇨병 진단을 받아 당뇨병을 11년 째 앓고 있는 신모(44ㆍ남)씨는 “당뇨병 초기 담당의사가 운동이나 식이요법, 경구 혈당강하제로 혈당조절에 실패하면 인슐린을 시작할 것이란 말을 듣고 강한 압박감에 시달렸다”면서 “인슐린치료를 당뇨병 치료의 마지막 수단인 것처럼 강변하는 의사들의 말을 듣고 인슐린치료까지 가면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의사들이 환자에게 심리적 인슐린 저항성을 부추기는 셈인 것이다.

김철식 한림대성심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당뇨병 진단 초기부터 인슐린은 안전하고 효과적이고 혈당조절을 위해 가장 강력한 혈당강하제임을 환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인슐린 투여를 통해 인슐린저항성을 개선시키고 남아 있는 베타세포의 기능을 보존시키는 등 인슐린의 장점을 환자들에게 널리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인슐린치료가 당뇨병 치료의 마지막이 아닌 보다 나은 치료를 위한 수단임을 환자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당뇨병 진단을 위한 혈당 검사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당뇨병 진단을 위한 혈당 검사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약 주면 ‘명의’, 인슐린 권하면 ‘나쁜 의사’

서울의 한 내과의원. 15년 넘게 당뇨를 앓고 있는 환자가 진찰실에 들어왔다. 내과 전문의인 원장은 환자의 상태를 점검한 후 인슐린 치료를 권했다. 경구용 제제로는 더 이상 혈당조절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원장은 환자에게 30분이 넘게 인슐린 주사 투입방법, 용량조절 등 인슐린치료 전반에 대해 설명했다. 원장의 설명을 듣는 환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은 과도하게 인슐린을 투여하면 저혈당이 발생할 수 있다며 용량조절에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 1개월 후, 원장이 인슐린치료를 권했던 환자가 병원에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 환자는 “내가 싫다고 했는데 당신이 억지로 인슐린치료를 권해 주사를 놓다가 쓰러져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죽다 살았다”면서 원장을 몰아세웠다. 환자는 돌아갔지만 원장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환자 잘 못 보는 의사로 소문이 날 것 같아서였다. 원장은 “먹는 약을 주고 말 걸 잘못했다”면서 후회했다.

의사들은 인슐린치료에 대한 환자 깊은 불신, 상담과 교육이 불가능한 의료 환경 때문에 인슐린치료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 인슐린치료와 관련된 상담 및 교육 등 행위가 의료수가에 반영되지 않아 의료기관에서도 인슐린치료를 꺼려하고 있다.

조재형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대학병원 외래에서 환자에게 인슐린치료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환자를 설득해 환자가 인슐린치료를 시작해도 인슐린을 과하게 투여해 저혈당이 생기면 모든 책임을 의사가 져야 하기에 저혈당의 위험을 감수하고 인슐린치료를 권할 의사는 많지 않다”고 했다. 조 교수는 “대학병원에서도 인슐린치료를 권하기 힘든데 개원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면서 “혈당조절에 실패해 인슐린치료를 권하면 나쁜 의사고, 약을 왕창 주면 좋은 의사가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병완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인슐린치료와 관련된 상담과 교육 등 의료행위가 의료수가에 반영되지 않아 의사들이 노력봉사를 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의사들이 인슐린치료를 권하지 않고 환자들이 원하는 대로 타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인슐린치료와 관련 지속적인 환자교육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조재형 교수는 “저혈당으로 병원에 입원해 인슐린 치료를 받으면서 교육을 실시한 환자도 인슐린 주사 투여 방법을 인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라면서 “10년 넘게 인슐린주사를 투여한 당뇨병환자 중 용량조절에 실패해 치료효과를 거두지 못한 이들도 많다”고 했다. 조 교수는 “현재 의료 환경에서 인슐린치료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인슐린 교육수가’라도 책정돼야 한다”고 했다. 김철식 교수는 “인슐린치료를 시작한 환자뿐 아니라 인슐린치료를 하고 있는 환자에게도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지속적으로 인슐린치료와 관련 교육과 상담이 이뤄지면 인슐린치료와 관련된 신체적ㆍ정신적 저항이 감소돼 인슐린치료가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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