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일률적으로 임금 안 깎고
성과 우수자는 60세까지 '받던대로'
국민은행도 제한적 성과급 지급 등
임금피크제에도 성과주의 확산
전문가들 "형평성 차원서 바람직"
내년부터 시행되는 정년연장을 앞두고 노동개혁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임금피크제에 ‘성과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늘어나는 정년 기간 동안 일률적으로 임금을 깎는 대신 업무성과에 따라 직원들의 삭감률을 차등 책정하는 방식이다. 직장생활 말년의 ‘푸대접’을 무조건 강요하는 것에서 탈피한 신선한 시도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본격적인 확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아 보인다.
신한은행 노사는 7일 내년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하고, 특히 부지점장 이상 관리자급 직원에겐 ‘차등형’ 임금피크제를 적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간 기업들과 공공기관이 도입한 임금피크제는 통상 55~57세 사이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면 60세 정년까지 매년 정해진 비율만큼 일률적으로 임금을 삭감하던 방식. 신한은행은 대신 개인의 근무 성과에 따라 임금피크제 적용 시기에 차등을 두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성과가 부진한 직원은 55세부터 임금피크제가 시작되지만 성과 우수자는 임금피크제 적용 없이 60세까지 기존 임금을 그대로 받으며 근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규모 기업 가운데 이런 형태의 전반적인 성과 연동 임금피크제 도입 방침을 밝힌 곳은 신한은행이 처음이다. 신한은행에서 내년부터 차등형 임금피크제를 적용 받는 인원은 160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은 “구체적인 임금피크제 적용 연령과 임금삭감률은 추후 산업별 임금교섭 결과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신한은행의 이런 실험은 특유의 성과주의 인사 문화에서 출발했다. 신한은행은 “우수 직원에겐 나이, 출신, 성별에 상관없이 합당한 보상을 하는 인사철학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주선 노조위원장은 “노조가 조사해보니,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이 다른 기업보다 오히려 정년 보장 비율이 높았다”며 사측 제안에 동의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미 민간 기업 사이에선 비슷한 형태의 성과주의식 임금피크제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앞서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이 예금ㆍ대출 업무를 하는 마케팅직으로 전환할 경우, 50%까지 깎이는 기본급에 더해 영업 성과에 따라 최대 200%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제한적 형태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바 있다. 중소 기계 제조업체 심팩도 56세부터 5년간 40%까지 임금을 삭감하지만 개인 성과에 따라 10%까지 차등을 두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이런 움직임에 노조는 여전히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현재 노동계는 정부가 밀어 부치는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해 “법으로 연장된 정년과 임금삭감 위주인 임금피크제를 병행해 강요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남정수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은 이날 신한은행 노사 발표에 대해 “성과로 임금피크제를 차등 적용한다는 것은 결국 성과에 따라 퇴출시키는 제도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신한은행이 소속된 금융노조의 이지섭 홍보부장은 “아직 산별 교섭이 진행 중이라 뭐라 평가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반면 정부는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임금피크제 대상에 예외를 두면 안 된다는 금지규정은 없다”며 “성과 우수자에게 임금삭감 정도를 차등한다는 건, 덮어놓고 반대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지만 연세대 교수는 “그간 임금피크제는 대상자마다의 생산성 차이를 어떻게 반영하느냐는 과제가 있었는데 성과 측정의 방법만 합의가 된다면 방향은 맞다고 본다”며 “보상의 형평성 차원에서 확산돼야 한다”고 힘을 실었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일률적으로 임금을 깎거나 진급을 정지시키는 방식과 비교하면 신한은행 등의 ‘차등형’ 임금피크제는 확실히 근로자의 저항을 완화할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확실한 인사 평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으면 근로자들의 또 다른 저항을 불러올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ankookilbo.com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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