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생색 수준 이산가족 상봉규모
고령자들에게 통 큰 인도적 배려를
고향방문은 전혀 불가능한 꿈일까?
‘두만강 푸른 물에 / 노 젓는 뱃사공을 / 볼 수는 없었지만 /… 고향생각 나실 때면 / …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 / 이렇게 얘기했죠 /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강산에 「라구요」, 1992)
이 노래를 좋아하지만 잘 부르지는 않는다. 10여 년 전 아버지 팔순 잔치 때 사람들 앞에서 딱 한번 제대로 불러봤던 것 같다. 혼자 뜬금없이 흥얼거리긴 해도 노래방에서건, 어디서건 남들 앞에선 끝까지 부르질 못하기 때문이다. 잘 참다가도 2절 ‘남은 인생 남았으면 / 얼마나 남았겠니 하시고 /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어머니 …’ 대목에까지 가서는 더 넘기지 못한다. 끝내 목이 메고 만다.
올해 아흔 하나 되신 아버지와 여든 넷 어머니의 고향은 같은 함경남도 이원(利原)이다. 북청과 단천 사이 풍광 수려하기로 손 꼽힌다는 바닷가 작은 군(郡)이다. 어머니는 10대에 서울의 여고로 ‘유학’왔다가 남북의 왕래가 돌연 차단되는 바람에 미처 돌아가지 못했고, 아버지는 20대 초반에 홀로 삼팔선을 넘었다. 전쟁 후에 서울에서 외로운 고향사람끼리 인연을 맺어 아들 둘을 낳아 키웠다.
유난히 할머니와 정이 깊었던 아버지가 고향을 떠나던 장면은 하도 들어 마치 내 추억처럼 선명하게 그려진다. 기차가 마을을 휘돌아 지날 때 멀리 고향집 나무 밑에 할머니가 나와 서서 흰 수건을 흔들어주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젊은 시절 자주 눈 감고 부르시던 노래가 현인의 「비 내리는 고모령」이었다. 사실 대구 쪽 지명이지만 절절한 노랫말로 인해.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적에 / 부엉새도 울었소 / 나도 울었소 / …’
아버지는 늘 동해에 가고 싶어 하셨다. 삼팔선 근처에서 쪽배를 타고 내려와 닿은 곳이 낙산사 인근이기도 하거니와 푸른 바다, 흰 모래, 솔밭, 작은 논밭, 배후의 산으로 이뤄진 동해안의 일반적 풍경에서 고향을 느끼는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기억 속 고향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인 법. 아버지가 고향의 아름다움을 얘기할 때마다 그러려니 했다. “끝없이 이어진 백사장에 울창한 송정(솔밭)이 천하제일이지.” 그런데 과장만은 아니었다. 예전 통일부에서 발간한 북한지리지에 그 곳이 김일성 휴양지까지 있던 동해안 제일 경승지로 나왔었으니까.
여간 해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 ‘함경도 남자’ 아버지도 일년에 한두 번, 명절 때면 차례상 앞에서 우신다. 벌써 오래 전에 돌아가셨을 부모님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쳐서다. 그럴 때면 우리는 슬며시 뒤로 돌아서거나 자리를 비켜 드린다. 눈물을 훔치고 나서는 한숨 섞인 후렴이 따라 붙는다. “평생 소원이 너희들 손 붙잡고 고향에 데려가 보는 거였는데, 이젠 다 틀렸구나. 무슨 세월이….”
남북 이산가족 상봉 합의가 어렵게 이뤄졌다. 또 100명씩이다. 이런 식으로 찔끔찔끔 해서 30년 가까이 겨우 2,200여 가족, 1만4,000여 명이 만났다. 등록한 13만 명 이산가족의 절반이 이미 세상을 떴다. 고향 기억이 있을 80세 이상은 고작 3만 명 정도만 남았다. 정말 시간이 없다. 평생을 곁에서 지켜본 실향민 자식이 아니면 그 깊은 아픔을 실감하기 어렵다. 상궤를 벗어나 아까운 지면에 개인 넋두리를 길게 풀어놓은 까닭이다.
통일 프로세스는 정교하고 복잡한 득실 계산이지만 이와는 별도로, 나는 아마도 불가능할 꿈을 꾼다.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이들 고령자들에게만이라도 남북이 통 크게 고향방문의 기회를 주어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의 한(恨)을 풀어주는 꿈이다. 물론 체제부담을 피하기 위해 행동반경이나 동행인, 상봉대상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조치는 필요할 테지만. 이념이고, 경제고 다 떠나 이 이상의 인도적 명분이 어디 있을까.
아버지는 이제 기력이 거의 쇠해 하루 종일 소파에 멍하니 앉아 계시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틀림없이 같은 꿈을 끝없이 반복해 꾸며 울기도, 또 혼자 설레기도 하실 것이다. 그 옛날 어린 아들로 돌아가 고향집 어머니 품에서 응석부리는 꿈을. 아들 손자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그리운 고향마을로 달려가는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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