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전승절 기념식 참석 후
이벤트에 취해 자화자찬 겨를 없어
비핵화·통일문제 겨우 첫 발 뗀 상황
해법 다다르기엔 숱한 험로
조속한 통일론 北 자극 우려도
사드·동북공정 등 뇌관 수두룩
모호한 태도 접고 분명한 원칙을
“파티는 끝났다.” 정부 관계자는 8일 앞으로의 한중관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절 기념식 참석과 한중 정상회담이라는 이벤트에 취해 자화자찬하며 들떠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붙는 현안이 줄줄이 놓여있어 중국이라는 초강대국을 상대로 어떻게 한국 외교의 내실을 기할지 이제부터가 시작인 셈이다.
비핵화와 통일, 액션플랜부터 만들라
박 대통령의 이번 중국 방문으로 ‘연미화중(聯美和中)’ 전략이 정점을 찍은 모양새다. 연미화중은 미국과 연대하고 중국과 친하는 외교기조로, 이명박정부 당시 미국과의 동맹과 안보 우선주의에 치우쳤던 것에서 벗어나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이익의 균형을 찾는 방식이다. 한반도 이슈에 대한 발언권이 세졌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방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쟁점인 비핵화와 통일 문제는 아직 뚜렷한 진전이 없다. 한중이 정상 회담 발표문에 두 사안을 모두 담기는 했지만 선언적 표현에 불과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평화통일의 대열에 동참하도록 어떻게 변화를 유도해낼지에 대해 한중 양국은 별다른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전직 외교안보 당국자는 “중국을 우리 편으로 끌어왔으니 북한이 고립무원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한중관계가 지금처럼 진전됐을 때 구체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비핵화 문제는 여전히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북핵 문제의 유일한 해법인 6자회담은 2008년 12월 이후 7년째 열리지 않고 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공약으로 ‘한미중 전략대화’를 강조하고 올해 들어서는 ‘코리안포뮬러’라는 대화방식을 제시하며 주변국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지만 아직은 아무런 성과가 없다. 그 사이 북한은 사실상 핵 보유국 지위에 올라섰다.
박 대통령이 방중과정에서 강조한 ‘조속한’ 통일론도 준비보다는 의욕이 앞선다는 지적이 많다. ‘통일 대박’이라는 구호를 넘어 어떤 식으로 통일을 할지 우리 내부의 공감대와 전략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일의 당위성만 강조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할 뿐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계속 반발할 경우 중국을 한반도 통일의 우군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조속한 통일론은 한반도 평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표현”이라며 “한중 정상이 통일을 운운하는데 급급하면 북한은 이를 흡수통일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사드, 해양경계, 동북공정… 첩첩산중
한중관계가 가까워지면 미국이 한국을 보는 시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연히 미국 달래기에 나서야 하고 그 과정에서 한중관계는 다시 요동치기 마련이다. 미중 양국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패권을 놓고 대결하는 구도에서 우리가 중국과의 관계를 마냥 발전시킬 수 없는 이유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한국의 선택에 따라 미중 양국의 이해관계가 직접 맞붙는 사안이다. 한국은 그 동안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워 어물쩍 넘어가며 시험대에 서는 것을 피해왔지만 한중관계가 질적으로 도약하려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과제다.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드를 미국이 한국에 판매하는 게 아니라 주한미군 방어를 위해 배치한다면 동맹국인 우리가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며 “중국이 그런 것까지 문제 삼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도를 포함해 서해와 남해에서 해양경계를 획정하는 문제도 또 다른 뇌관이다. 지난해 7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지만 예비회의 단계에서 막혀 본회의는 아예 열지도 못하고 있다. 여기에 방공식별구역 문제까지 겹쳐 한중 양국의 하늘과 바다는 경계가 중첩된 상태다. 김흥규 아주대 정외과 교수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해양경계획정 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은 것”이라며 “지금처럼 분위기가 좋을 때 박 대통령이 올해 안에 해법을 마련하자고 시진핑 주석과 원칙적인 합의라도 이뤘어야 했다”고 평가했다.
동북공정 문제도 언제든 우리의 국민정서를 자극해 한중관계의 간극을 넓힐 수 있는 사안이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동북공정은 인식의 차이에 따른 갈등이기 때문에 정치적 소재가 아닌 학술적으로 접근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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