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들이 활동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가장 흔히 하는 말이 ‘노래가 좋다’ 혹은 ‘싫다’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은 여기에 하나가 더 붙는다. ‘콘셉트가 좋아’ 또는 ‘싫어’다. 대부분의 아이돌은 곡을 발표하기 전에 앨범과 무대에서 보여줄 비주얼 콘셉트를 공개하고, 이에 따라 대중의 반응도 갈린다.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가 처음으로 티저 사진과 영상 등을 공개하며 음악보다 비쥬얼 콘셉트를 먼저 선보였고, 이것은 이제 모든 아이돌의 필수 요소가 됐다.
아이돌 그룹에게 비주얼 콘셉트가 중요한 것은 아이돌이 단지 음악이 아닌 캐릭터와 스토리가 있는, 보다 큰 판타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지 예쁜 옷을 입고 춤을 잘 추는 것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테면 EXO가 '으르렁'에서 교복을 입었을 때의 느낌과 방탄 소년단이 'No more dream'에서 힙합 패션을 입고 거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어떤 콘셉트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가사, 사운드의 분위기, 지향하는 팬도 달라진다. MBC ‘무한도전’의 가요제에 공개된 곡이 지금 가장 대중적인 음악이 된다면, 아이돌은 기본적으로 명확한 취향을 공략해서 팬을 만들어야 한다. 콘셉트는 이 마케팅의 방향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그래서 최근 많은 기획사들은 그룹들의 콘셉트 기획을 고민한다. 교복, 메이드 복장처럼 '노림수'가 명확한 의상을 입히기도 하고, 뱀파이어처럼 가상의 캐릭터를 응용하거나 유명 작품 속 인물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해프닝도 일어난다. 씨스타는 'Shake it'으로 컴백 당시 공개한 티저에서 멤버 보라의 비주얼 콘셉트가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캐릭터 할리퀸의 스타일링과 너무 똑같아서 논란이 있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인데, 이것을 비슷하게 가져와서 콘셉트로 내세우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이었다.
또한 최근 컴백한 투아이즈는 비주얼 콘셉트는 물론 노래에까지 추억의 해외 드라마 ‘말괄량이 삐삐’의 주인공 삐삐 캐릭터를 사용했다가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 스웨덴 회사로부터 사용 중단을 요구 받기도 했다. 모든 아이돌이 콘셉트를 내세우다 보니 기획사끼리 비슷한 아이디어가 겹치고, 전체적인 기획보다는 대중에게 쉽게 먹힐 수 있는 캐릭터를 부각하는 데에만 매달리면서 생긴 일이다.
이것은 콘셉트에 대한 오해이기도 하다. 무대 위에 오르는 비주얼 콘셉트는 분명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회사에서 의도한 모든 게 집약된 산물이지,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SM이 최근 컴백한 레드벨벳을 통해 전달하는 모습은 콘셉트의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레드벨벳의 'Dumb Dumb' 뮤직비디오에서 멤버들은 명확하게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콘셉트를 보여준다. 교복처럼 뚜렷하게 멤버들의 캐릭터를 잡아주는 의상도 없다. 의상은 전체적인 영상의 한 부분일 뿐이다. 대신 각각 다른 배경부터 의도적으로 인스타그램의 화면비에 맞춘 영상까지, 레드벨벳의 티저 영상은 독특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마치 좋은 그림이나 사진이 보는 사람에게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듯, 레드벨벳의 영상들은 다양한 세계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는 f(x)나 EXO등 SM의 아이돌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기도 하다.
팀의 이미지, 팬들의 반응, 회사가 이 팀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모든 고려가 콘셉트를 통해 엔터테인먼트로 표현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가장 비즈니스적인 동시에 아트로 나아가야 하는 영역이다. 그러니 지금 활동시킬 팀의 콘셉트를 고민하고 있는 회사라면, 어떤 옷을 입힐 것인가 이전에 어떤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콘셉트는 기획사의 현실 감각과 상상력을 단 한 순간에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방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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