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연 지원금 심사 개입… 이윤택 박근형 작품 제외시켜
정부의 문화예술계 길들이기 시도가 사실로 드러났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가 장르별로 우수작을 지원하는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에서 특정 작가와 작품을 사전에 검열하고, 심사가 끝난 사안에 개입해 심사 결과를 바꿀 것을 종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금을 통해 예술가들을 길들이려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 의원은 11일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문예위가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심사 과정에서 특정 작가를 거론하며 선정 리스트를 90명으로 줄여 달라, 심사 결과를 조정해달라고 한 일이 있었음이 심사위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고 밝혔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은 장르별 우수작품 100편에 1,000만원씩 지원하는 제도다. 심사위원들이 이에 반발하자 예술위는 심사위원이 선정한 102명을 축소 선정해 70명으로 발표했으며, 이 과정에서 희곡 분야 심사에서 100점으로 1순위였던 이윤택 작가를 탈락시켰다. 이윤택 작가는 지난 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 연설을 한 바 있는데, 문예위가 자체 이사회까지 열어 심사위원들의 결정을 수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종환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단체당 1억원씩 지원하는 ‘창작산실- 우수 공연작품 제작 지원’ 사업에서도 문예위가 박근형 작가와 그의 작품 ‘개구리’를 지목해 심사 결과를 바꿀 것을 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형 작가가 2년 전 국립극단에서 공연했던 ‘개구리’는 일부 보수언론으로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하했다는 공격을 받았던 연극이다. 문예위는 심사위원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작가를 직접 찾아가 포기를 종용했고, 박 작가는 지난 8월 초에 지원을 포기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블랙리스트 실체가 확인되면서 연극인들은 즉각 반발했다. 박장렬 서울연극협회 회장은 “민간 펀딩을 통한 공연 제작이 거의 불가능한 국내 여건에서 정부의 조치는 연극을 하지 말라는 행위와 같다”고 비판했다. 김소연 연극평론가는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데에 연극인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그런 무기력감과 굴욕감이 상당수 연극인들의 작품 활동에 문제를 일으킨다. 결국 아무런 문제의식도 갖지 못한 연극인들만 창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현 정부 출범 이후 수많은 무리와 억지, 반민주적 사고에서 벌어지는 총체적 난국을 지켜보고 있다”며 연극인 1,037명이 발표한 ‘현 시국에 대한 연극인 선언문’에 이름을 얹은 김재엽 연출가는 이번 사건 직후 페이스북 ‘대학로 X포럼’에 올린 글을 통해 “(시국 선언 후) 여러 경로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고, 작품 개발을 준비하던 공공극장에서 배제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극단 작업은 쉬었으며, 나는 오래도록 신작을 쓰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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