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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공연 검열에 연극협회 반발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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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공연 검열에 연극협회 반발 성명

입력
2015.09.1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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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공연 지원금 심사 개입… 이윤택 박근형 작품 제외시켜

정부의 문화예술계 길들이기 시도가 사실로 드러났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가 장르별로 우수작을 지원하는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에서 특정 작가와 작품을 사전에 검열하고, 심사가 끝난 사안에 개입해 심사 결과를 바꿀 것을 종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권 입맛에 맞는 공연만 지원하겠다는 시도에 연극인들은 성명서를 내고 반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 의원은 11일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문예위가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심사 과정에서 특정 작가를 거론하며 선정 리스트를 90명으로 줄여 달라, 심사 결과를 조정해달라고 한 일이 있었음이 심사위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고 밝혔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은 장르별 우수작품 100편에 1,000만원씩 지원하는 제도다. 심사위원들이 이에 반발하자 예술위는 심사위원이 선정한 102명을 축소 선정해 70명으로 발표했으며, 이 과정에서 희곡 분야 심사에서 100점으로 1순위였던 이윤택 작가를 탈락시켰다. 이윤택 작가는 지난 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 연설을 한 바 있는데, 문예위가 자체 이사회까지 열어 심사위원들의 결정을 수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종환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단체당 1억원씩 지원하는 ‘창작산실- 우수 공연작품 제작 지원’ 사업에서도 문예위가 박근형 작가와 그의 작품 ‘개구리’를 지목해 심사 결과를 바꿀 것을 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형 작가가 2년 전 국립극단에서 공연했던 ‘개구리’는 일부 보수언론으로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하했다는 공격을 받았던 연극이다. 문예위는 심사위원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작가를 직접 찾아가 포기를 종용했고, 박 작가는 지난 8월 초에 지원을 포기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블랙리스트 실체가 확인되면서 연극인들은 즉각 반발했다. 서울연극협회는 이날 오후 성명서를 내고 “문화계의 정치 검열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해체를 요구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성명서는 “이번 사태는 국가가 예술단체에 대해 지원을 하면서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팔길이 원칙’을 처참히 무너트린 행정권력과 관료들의 작태를 보여 준 사태인 것”이라며 “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고 행복을 추구하며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데 불가결한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예술과 출판의 자유 등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박장렬 서울연극협회 회장은 “민간 펀딩을 통한 공연 제작이 거의 불가능한 국내 여건에서 정부의 조치는 연극을 하지 말라는 행위와 같다”고 지적했다. 김소연 연극평론가는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데에 연극인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그런 무기력감과 굴욕감이 상당수 연극인들의 작품 활동에 문제를 일으킨다. 결국 아무런 문제의식도 갖지 못한 연극인들만 창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현 정부 출범 이후 수많은 무리와 억지, 반민주적 사고에서 벌어지는 총체적 난국을 지켜보고 있다”며 연극인 1,037명이 발표한 ‘현 시국에 대한 연극인 선언문’에 이름을 얹은 김재엽 연출가는 이번 사건 직후 페이스북 ‘대학로 X포럼’에 올린 글을 통해 “(시국 선언 후) 여러 경로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고, 작품 개발을 준비하던 공공극장에서 배제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극단 작업은 쉬었으며, 나는 오래도록 신작을 쓰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서울연극협회 성명서 전문

<문화계의 정치 검열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해체를 요구한다>

문화계의 정치 검열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해체를 요구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정치적 이유로 박근형 연출의 작품포기를 종용했던 사실이 9월 9일 JTBC 방송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또한 9월 11일자 한겨레 신문에 문학창작심사에 개입해 이윤택 작가의 작품을 탈락시킨 사실이 확인되었다.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문화계 이른바 ‘정치검열’ 현실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보도를 접하며 듣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며 과연 국가가 뼈아픈 기억 속의 과거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사실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다. 특히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직원들이 심사위원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직접 지원당사자를 찾아가 자진해서 작품의 지원을 포기하도록 강요하였다고 한다. 진정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행정을 일삼는 국가 공무원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문화예술위원회가 ‘상부 지시사항’이라며 대처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고, 논란이 될 작품과 예술인들을 미리 파악하고 이를 사전 예방할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은 실제로 정치적인 검열 윗선이 있다는 사실이 현실로 나타났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더욱이 연극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사전검열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는 국가가 예술단체에 대해 지원을 하면서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문화뿐만 아닌 법률, 정치, 경제 분야에 있어서 대부분의 선진 국가들이 공공정책 원리로 삼고 있는, 지원을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을 처참히 무너트린 행정권력과 관료들의 작태를 보여 준 사태인 것이다. 나아가 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고 행복을 추구하며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데 불가결한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예술과 출판의 자유 등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는 반국가적 행위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자행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융성'을 외치는 정부는 이번 정치검열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과 아울러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해체시키고 문화예술계를 정상화시키는 해법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반헙법적, 반민주적, 반예술적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작태에 연극계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예술계와 연대하여 이 사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예술이 독립성과 자율성을 갖는 그 날까지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시민들과 함께 진정한 ‘문화융성’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

2015년 9월 10일 서울연극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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