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을 코 앞에 둔 버스가 굉음을 내며 자전거를 추월한다. 버스는 이내 속도를 줄여 정류장 앞에 멈춘다. 자전거는 버스 뒷문에 다다르기 전 간신히 멈춰 선다. 뒷문이 열리자 승객들이 우르르 내린다. 자전거는 버스와 인도 사이에 끼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의 짜증 섞인 시선은 덤이다.
버스가 자전거를 앞지르기 위해 짧은 시간 동안 급가속과 급제동을 하는 모습은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다. 앞서가는 자전거를 먼저 보내고 정류장에 진입하는 게 안전해 보이지만 이런 여유를 보여주는 버스는 많지 않다. 버스가 자전거를 먼저 보내는 배려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첫째, 뒷문으로 내리는 승객들이 자전거와 충돌할 가능성을 완벽하게 배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급가속 급제동 과정에서 겪었을 승객들의 불편도 없었을 것이다. 셋째, 자전거 운전자가 버스의 움직임을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넷째, 급가속으로 낭비되는 연료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자전거족의 입장이다. 배차 간격의 압박을 이겨내야 하는 버스 입장에서는 일분일초가 급할 것이다. 도로 위에서 둘의 입장차는 쉽게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자전거를 타고 버스와 함께 이용하는 도로를 지날 때면 늘 이런 식의 갈등을 겪게 된다. 도로교통법상 ‘차마(車馬)’에 해당되는 자전거는 차도의 우측 가장자리에 붙어서 통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렇다 보니 정류장에서 수시로 승객을 태우고 내려야 하는 버스와 필연적으로 영역이 겹친다. 자전거 입장에선 무리하게 추월해 번번이 앞길을 막는 버스 때문에 ‘가다서다’를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짜증날 수 밖에 없다. 버스 입장에선 닿을락말락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자전거들이 밉상스러울 것이다. 자전거와 버스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현상이 반복되면 갈등이 폭발하기도 한다. 버스의 앞문이 열리고 버스기사와 자전거 운전자가 고성을 주고 받기라도 하면 자전거 운전자는 수많은 버스 승객의 불편은 안중에도 없는 이기주의자로 전락하게 된다. ‘자전거 민폐족’으로 등극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자전거족 입장에서 이런 분쟁을 피하기 위해 버스와 공유해야만 하는 도로를 피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꼭 지나가야 한다면 자주 지나는 버스 정류장의 위치, 주변 교통 흐름, 신호 체계 등을 미리 파악하는 게 좋다. 정류장 진입을 앞뒀다면 뒤쪽에서 오는 버스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며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버스를 넉넉히 앞서 통과할 수 없다면 속도를 줄여 멈추는 것이 상책이다. 특히 버스가 자전거를 추월해 정차했다면 무조건 멈춰야 한다. 뒷문으로 내리는 승객들과 충돌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전방에 버스가 정차 중일 때 안쪽으로 차선을 바꿔 추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대부분 운전자들은 자전거가 자동차를 추월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운행한다. 불가피하게 추월해야 할 상황이라면 수신호를 통해 다른 운전자에게 이동 방향을 미리 알려야 한다.
대한민국의 도로는 이익보다 손해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손실혐오 성향’이 두드러지는 곳이다. 도로 위의 자전거족은 당장의 에너지 손실을 막으려 한다. 자전거를 자꾸 멈추게 하는 버스는 물리적 손실을 주는 요소다. 버스 입장에서 자전거는 시간적 손실을 주는 요소다. 각자의 작은 손실을 줄이려는 행위는 사고의 가능성을 높인다. 사고로 발생하는 손실은 물리적, 시간적, 비용적 측면에서 앞의 손실과 비교할 수 없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버스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자전거족의 배려, 자전거족을 위협하지 않는 버스기사의 배려가 있다면 도로 맨 오른쪽 공간은 훨씬 더 평화로워질 것이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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