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내년 총선 주도권 겨냥
정책 지적보단 보여주기 혈안
"민생국감" 약속 오간데 없고
與 엄호 급급, 野 내홍에 허우적
19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초반이기는 하지만 벌써부터 부실 국감 조짐이 뚜렷하다. 국감 시작 첫날부터 파행이 속출하는가 하면 국감장 곳곳에서는 증인출석을 둘러싼 파열음이 이어졌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여야의 ‘정쟁 국감’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여야가 국감에 앞서 내세운 ‘민생국감’이나 ‘사생국감(안정민생, 경제회생, 노사상생, 민족공생)’의 캐치프레이즈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특히 야당이 국감 시기에 맞춰 내홍에 휩싸이면서 정부 정책을 감시 비판하는 국정감사 본연의 활동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증인채택 파행, 호통 국감 여전
이번 국감에서도 시작은 증인채택을 둘러싼 갈등과 파행이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출석 시기를 놓고 갈등을 빚던 정무위는 지난 10일 신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해 합의하기까지 국감 중지 등의 파행을 겪었고 다음과 카카오, 네이버 등 포털의 경영진 증인을 둘러싸고도 곳곳에서 여야가 갈등을 빚었다. 국감은 시작됐지만, 13일 현재 여야는 여전히 각 상임위 별로 증인 채택 문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피감기관을 향한 국회의원들의 호통도 여전했다. 국방부를 상대로 한 10일 국감장에서 여야는 한미 작전계획 보고 여부를 둘러싸고 설전을 벌이다 4시간 넘게 정회되는 파행을 겪었다. 그러자 김광진 새정치연합 의원 입에서 “국방부가 국회라는 곳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는 호통이 나왔다. 같은 날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한 국감에서는 최동익 새정치연합 의원이 정진엽 장관의 부실한 준비를 지적하며 “이게 도대체 뭐예요? 아무리 초임장관이라도 그렇지…”라고 질책했다. 여당의 한 의원 보좌관은 “업무 파악이 안 된 상태서 국감장에 나온 장관이 잘못이지만, 일부 의원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튀기 위해 고함을 내지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국감장 의원들 마음은 표밭에… 정책 뒷전, 정쟁만 되풀이
상임위마다 여야 대리전 양상
증인 채택·장관 거취 싸고 파행
의원들은 지역구 다지기 열중
주중에도 지방서 출퇴근하기도
野 내분까지 겹쳐 국감 맥 빠져
급기야 국감장에서 성희롱성 발언도 나왔다.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의 복지부 감사에서 김용익 새정치연합 의원은 협회 직원에 대한 성희롱 의혹을 받고 있는 류시문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에게 “일어서봐라. 회장 물건 좀 꺼내봐라 내가 좀 보게”라며 류 회장을 몰아세웠다.
보여주기식 국감에 ‘봉숭아 학당’이라는 지적도 여전했다. 김제식 새누리당 의원은 10일 복지위 국감장에서 성형기구의 부작용을 강조하겠다며 각종 셀프성형기구를 착용한 보좌관을 대동, 국감장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은 정무위 국감장에 몰래 카메라가 장착된 야구모자와 안경을 직접 착용하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튀어야 산다는 의원들의 절박한 심정을 모를 바는 아니지만 국감 때마다 등장하는 각종 소품은 자칫 이목 끌기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야 정쟁에 정책 국감은 실종
더욱 심각한 것은 여야가 국정감사를 여전히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10일 행정자치부 국감장에서 야당이 정종섭 장관의 ‘총선 필승’ 건배사를 문제 삼아 장관 거취 문제까지 거론하면서 여야 공방으로 번졌고 끝내 야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빠져나가 파행을 겪었다. 한국사 교과서국정화를 비판하는 야당에 맞서 새누리당은 정부 정책을 옹호하는 데 진력을 다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야의 대리전은 앞으로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환경노동위에서는 임금피크제와 일반해고 문제로 여야간 공방이 예상되고, 농해수위에서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피해 대책을 놓고 한판 대결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법사위에서는 한명숙 전 총리의 유죄판결을 놓고, 미방위 등에서는 포털의 중립성 문제 등을 놓고 여야가 대립각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또 기재위에서는 법인세 인상, 사내유보금 이슈 등을 중심으로 한 재벌개혁 문제를 놓고 여야가 대치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등 각 상임위마다 ‘정쟁거리’가 산적해 있다.
정쟁에 앞장서던 여야 의원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 앞에서는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여 빈축을 샀다. 11일 헌법재판소 국감장에서 선거구 인구편차를 2대1로 확정한 헌재 결정에 대한 불만에 쏟아진 가운데,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한기호 의원의 지역구를 거론하며 “지역구 면적이 서울의 6.8배인데 이런 점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기류도 부실국감 부추겨
20대 총선을 앞두고 ‘게임의 규칙’은 물론 선거구 획정조차 불투명한 상황도 국회의원들이 국감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여권의 한 초선 의원실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지역구에서 항공편으로 출퇴근하고 있다”며 “모시는 의원이 재선에 성공해야 우리 일자리도 보장되는 만큼 보좌진이 주말까지 반납해 국감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구 의원들은 국감장보다 지역구 다지기에 열중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야당 지도부의 내홍은 야당의 칼날을 더욱 무디게 하는 요인이다. 수도권의 새누리당 재선 의원은 “문재인 대표가 재신임 카드를 던진 상황에서 조기전당대회 주장까지 나오는 등 야당은 도저히 국정감사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13일 “(문 대표가 재신임 투표 시기를 미루면서) 국감에 매진 할 수 있게 됐다. 국감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반복되는 부실 국감 구태에 이번에도 ‘국감무용론’이 등장할 판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국감이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김무성, 문재인 대표가 정치권 이슈를 다 빨아들이는 바람에 국정감사가 주목을 끌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여당이 과도하게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엄호하는 경향이 있고, 야당이 내홍에 쌓인 만큼 올해는 더더욱 제대로 된 국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ankookilbo.com
정재호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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