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올리는 이론 중 제일 유명한 게 ‘3B’다. Beauty(미녀), Baby(아기), Beast(동물)가 화면에 나오면 무조건 어느 정도의 시청률이 보장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한국에서만 통하는 또 하나의 공식이 있는데, 바로 ‘군대 프로그램’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증명이 된다. ‘우정의 무대(MBC)’는 1989년부터 1997년까지 9년간 이어진 장수 프로그램이었다. ‘유머 1번지(KBS)’의 한 코너였던 ‘동작 그만’은 1990년대 초반의 대표 장수 코너였다.
그렇다면 ‘미녀’와 ‘군대 프로그램’을 합하면 어떻게 될까. 2014년 늦여름에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한창 인기몰이를 하다가 약간 주춤했던 MBC ‘일밤-진짜사나이’가 여자 연예인을 대상으로 ‘진짜사나이 여군 편’을 제작한 것이다.
당시 제작진이 성공을 확신하고 만들었는지, 아니면 그냥 추석 특집 비슷한 컨셉트로 한 번 해 본 것인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미녀와 군대 프로그램이 더해지자 시청률 대박이 났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특집처럼 방영됐던 여군 편은 걸스데이의 혜리의 애교 한방으로 시청률 19.8%를 찍었다.
‘진짜사나이 여군 편’은 올해 1월 말에 2편이 방영됐다. 1편 만큼의 반향이 일어난 건 아니었지만, 이때도 역시 시들해 가던 프로그램의 인기와 관심도를 끌어올리는 데는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15년 8월 말부터 현재 여군 편 세 번째 이야기가 방영 중이다. 매번 비슷한 얘기인데도 실로 희한하게 시청률과 관심도는 올라간다. 여군 편은, 인기가 시들해지던 ‘진짜사나이’를 일으키는 만병통치약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제작진은 여군 편을 제작할 때마다 속이 빤히 보일 정도로 공식에 맞춘 섭외를 한다. 어찌 보면, ‘춘향전’처럼 모두가 내용과 캐릭터를 알고 있는 어떤 시나리오에 맞춰 배역을 캐스팅하는 듯한 느낌까지 들 정도다.
먼저 ‘귀여움’을 담당하는 아이돌이 있다. 1편에서는 혜리(걸스데이), 2편에서는 윤보미(에이핑크), 3편에서는 최유진(CLC)이 그 캐릭터다.
그리고 전체적인 중심과 군기를 잡는 ‘아줌마’가 꼭 낀다. 1편의 라미란, 2편의 김지영, 3편의 전미라가 그렇다. 여기에 또 반드시 필요한 캐릭터가 말썽을 일으키고 우왕좌왕하는 고문관이다. 1편에선 맹승지가 배꼽티 입고 입소했다가 혼자 욕을 다 먹었고, 2편에선 걸그룹 f(x)의 중국계 미국인 앰버가 한국 군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심지어 한국말도 잘 못 하는) 고문관 역할을 했다. 역시나 3편에선 더 센 캐릭터인 제시가 나왔다. 그것만으론 모자랐는지 3편에선 4차원 캐릭터의 일본인 사유리까지 넣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필수 캐릭터는 섹시 스타다. 1편의 지나, 2편의 강예원, 3편의 한채아까지 글래머 스타가 반드시 낀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가장 잘 적응하는’ 캐릭터는 과감하게 버림받았다. 1편에서 혹독한 체력 훈련을 무난하게 잘 소화해낸 박승희(현직 빙속 국가대표)는 방송 분량도 매우 적었고, 이런 캐릭터 자체가 이후 시리즈에선 사라졌다.
똑같은 캐릭터를 갖고 세 번을 우려먹으면 아무래도 질리게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갈수록 프로그램에서는 더 센 것, 더 자극적인 것을 보여주려는 무리수가 생긴다.
갈수록 자극적인 것만 살리는 부분은 좀 불편하다. 대표적인 게 ‘성희롱 논란’이다. 김현숙과 사유리, 전미라 등이 밥을 먹으면서 남자 하사의 엉덩이를 이야기한 부분이다. ‘엉덩이가 올라가 있다’ ‘엉덩이만 보이더라’에서 ‘엉덩이가 화나 있었습니다’라며 웃는 부분에 대해 해당 하사의 가족이 시청자 게시판에 공식적으로 불쾌함을 표시할 만했다.
여자 연예인들의 몸무게가 공개되는 신체검사에 방점을 꾹 찍어서 내보내는 것도 그렇다. 40킬로그램 대의 몸무게인 걸그룹과 건장한(?) 개그우먼을 대비시키는 게 군 생활을 보여주는 리얼 버라이어티와 무슨 상관인가.
또 여성 스타들이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는 화생방 훈련 분량이 매 시즌 마치 하이라이트처럼 가장 오래 나오는 것도 ‘흥, 군대 가서 고생하는 척 해봐야 그냥 쇼지’라는 느낌을 강화시킨다. 고작 5일 간의 훈련 체험을 마치 5주 훈련이라도 받은 양 과하게 포장하면 몰입도가 떨어진다. 오죽했으면 올 초 ‘본방사수(KBS)’라는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 장동민이 가족들과 여군특집 2편을 보다가 “진짜 군대였으면 난리 났다”고 잘근잘근 씹었을까.
이번 편에는 여자 연예인들에게 실전 수류탄을 던지게 한다면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는데, 포장만 요란했지 과거 1편에서 김소연, 라미란이 줄 타던 것보다도 긴장감이 떨어졌다. 결국, 아무리 ‘만병통치약’이라고 해도 자꾸 쓰다 보면 약발 받게 하기 위해 표준용량을 넘겨 과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군 특집은 추석-설날-추석의 패턴으로 세 차례 이어졌다. 과연 내년 설 즈음에도 여군특집은 계속 될까. 여군 1편 출연자가 7명, 2편은 8명, 3편은 10명이 됐다. 출연자가 점점 늘어난다. 게다가 출연진 중 얼굴과 이름을 잘 모르는 신인의 비중도 점점 늘어난다.
이번 여군특집 3편은 ‘만병통치약’의 표준권장량을 살짝 넘긴 느낌이다. 이보다 더 과한 용량의 4편이 나온다면, 그땐 분명히 부작용이 생길 것 같다. 글쎄. 설현이나 수지가 나오면야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방송 칼럼니스트.
일밤-진짜 사나이
매주 일요일 저녁 4시50분
연예인들이 군부대를 찾아 군인들의 훈련과 일상을 직접 체험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시시콜콜 팩트박스
1. 진짜사나이 여군특집 3편은 첫 방송에서 시청률 17.1%, 두 번째는 16.5%(닐슨코리아 기준)로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약 많이 쓰면 안 좋은 걸 알면서도 자꾸 쓰는 이유가 있다.
2. 현재 방영 중인 여군특집 3편에는 신소율, 한그루, 한채아, 유선(배우), 제시, 최유진(가수), 김현숙(개그우먼), 사유리(방송인), 전미라(전 테니스대표), 박규리(국악인)까지 총 10명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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