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사를 봤다. 홍대 앞 건물들 중 일본식으로 지어진 일부를 ‘빈티지’하다고 정의하고, 이것이 젊은이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는 논지였다. 글쎄. 기사 속의 건물들이 과연 ‘빈티지’의 정의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인공적으로 시간축을 조작한 뒤, 거짓으로 시간의 옷을 입히는 그런 방식이 진정 빈티지란 말인가.
음악에서의 빈티지는 뭘까? 그래서 이번 주에는 내가 생각하는 빈티지 뮤직의 정수만을 골라봤다. 마치 색깔이 자연스럽게 옷감에 스며들 듯, 빈티지의 본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완성해낸 음악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초, 빈티지는 포도주에 쓰이는 용어였다. 특정한 연도에 생산된 포도주를 빈티지라 불렀다. 이후 빈티지는 ‘고전적인’, ‘전통 있는’, ‘유서 깊은’ 등으로 의미가 확장되더니, 결국에는 ‘현대’와 연계되어 더 큰 뜻을 품게 되었다. 즉, ‘오래된 것들을 재구성해 자신을 차별화한 그 무엇’을 빈티지라 칭하기 시작한 것이다. 빈티지에는 또한 ‘최고의’라는 뜻도 있다. 다음의 음악들이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지칭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차별화를 최고 수준’에서 일궈낸 그런 음악들이다.
● 블랙 키스(The Black Keys) ‘Weight of Love’ (2014)
블랙 키스가 품고 있는 빈티지는 저 먼 과거의 블루스다. 여기에 그들은 다채로운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리듬을 갖고 놀면서 듣는 이들을 마구 흔들어놓는 재주도 지녔다. 그러니까, 블루스에 영향 받은 하드 록이 블랙 키스의 ‘엔진’이라면, 유려한 리듬과 그루브는 ‘핸들’이 되는 셈이다. 이를 통해 곡 후반부에 분출되는 고출력의 마력과 파워는 블루스/로큰롤 스펙터클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시범한다. 어떤 방식이건 전통을 되살리는 일은 결국 끊임없이 새로움을 더하는 일에 다름 아닐 것이다. 적어도 2014년 한 해 동안, 이런 게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빈티지 록임을 이 곡보다 잘 보여준 사례는 없었다. 내가 왜 이 앨범을 듣자마자 LP로 샀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빈티지 트러블 ‘Blue Hand Me Down’ (2011)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이 리드하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같은 음악”이라니. 이거 참 끝내주는 표현이다. 미국의 음악전문지 [롤링 스톤]의 평대로, 이름부터가 빈티지 트러블인 이들의 음악은 1960년대 소울과 1970년대 하드 록을 아우르면서 듣는 이들에게 강렬한 인장을 남긴다. 그 중에서도 이 곡은 반드시 라이브로 봐야 제 맛이다. 강력한 소울을 탑재한 보컬이 아주 그냥 난리법석을 피면서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와중에 나머지 멤버들은 레드 제플린처럼 단단하면서도 블루스의 기운이 녹아있는 연주로 그 뒤를 받쳐준다. 참, 반드시 첨부된 영상을 끝까지 보기를 바란다. 데이비드 레터맨이 완전 뿅가서 “끝내주네요. 연주 더 할래요?”하는 장면이 나온다. 라이브가 오죽 끝내줬으면 그랬을까 말이다.
● 라나 델 레이 ‘Video Games’ (2012)
라나 델 레이의 이 곡은 오래된 옛 추억을 복각시킨다. 고전 할리우드 시대의 흑백영화에나 삽입되었을 법한 음악이라고 해야 할까. 매끄럽게 직조된 연주 세션 위로 흐르는 뇌쇄적인 보컬은 음악판 ‘마릴린 먼로’의 재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당시 신인다운 실험성을 놓치지 않아 힙합과 일렉트로닉의 잔영도 느낄 수 있다. 어찌되었건, 낭만적이면서도 환상적이고, 환상적이면서도 신비롭다. 클래식을 노래하면서도 현대성으로 충만하다. 그녀의 재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영화배우 김혜수씨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스페셜 DJ로 참여했을 때 선곡했던 노래이기도 하다.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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