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단일화 과정 앙금 남은 두 사람
혁신 논란은 차기 대선 전초전 성격
공멸 않으려면 손잡고 당부터 살려야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지난 대선에서 실패한 가장 큰 요인은 콘텐츠 부족이다. ‘새 정치’를 내걸고 정치판에 뛰어들었지만 알맹이가 빈약했다. 고작 내세운 게 국회의원 정수 축소였으니 허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당 창당 구상을 밝힐 때 이젠 새 정치를 하려는 모양이다 했으나 그것도 공수표였다. 금태섭 변호사가 최근 저서에서 털어놨듯이 새 정치의 방향도 못 정한 채 미적거리다 돌연 민주당에 흡수되는 길을 택했다.
안 의원은 당시 “호랑이를 잡으러 굴로 들어간다”고 호언장담했으나 허언에 그쳤다. 공동대표 시절엔 정치적으로 미숙한 모습을 거듭 노출했고 이후에도 별 존재감이 없었다. 메르스 사태나 국정원 해킹 의혹 등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도 뭔가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안 의원이 혁신안으로 촉발된 당 내분 사태에서 연일 작심 발언을 하고 있다. “혁신은 실패했다”며 문재인 대표를 겨냥해 파상 공세를 퍼붓는 모습이다. 혁신안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감동을 주진 못한 건 사실이다. “당의 본질적 문제와 병폐는 손도 대지 못했다”는 비판도 옳다. 하지만 그 책임의 적지 않은 부분은 안철수 본인에게도 있다는 지적이 많다. 새정치민주연합을 지리멸렬하게 만든 ‘원죄’에다 혁신위원장 자리를 거절한 전력을 잊은 듯하다. 혁신 작업을 손가락질하면서도 구체적인 방향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데서도 여전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안 의원의 행보를 놓고 여러 뒷말이 나오는 건 이런 까닭이다. 가깝게는 내년 총선, 멀게는 후년 대선을 의식한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문재인 체제가 공고해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는 얘기다. 심지어 독자세력 구축을 염두에 둔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치인 문재인에게는 리더십 부족이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문재인이 정치를 시작한 이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결단을 내려 흐름을 주도한 적이 없다. 자신의 거취를 재신임 투표에 맡긴 것도 결단이라기보다는 궁여지책에 가깝다. 4ㆍ29 재보선 참패 직후 내놨다면 통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약발이 떨어졌다.
‘친노 해체’ 요구가 들끓는데도 “친노가 어디 있느냐”며 외면했고, 소통 부재와 비선 논란도 비켜갔다. 집안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않고 외연을 확장한다며 바깥으로만 돌았다. 마치 대선 후보로 확정돼 선거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혁신위원회를 만들기만 하면 잠잠해질 거라고 판단한 것만 봐도 문재인의 통찰력과 설득력 부재가 드러난다. 한때 30%에 달했던 자신과 당의 지지율이 반토막 난 책임의 상당부분이 그에게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문재인, 안철수에게는 대선 단일화 과정에서 쌓였던 앙금이 남아 있다. 안철수는 대선 후보를 양보하지 않은 문재인이 야속하고, 문재인은 단일화 사퇴 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은 안철수가 섭섭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 이전에 두 사람은 수많은 지지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지난 대선 패배의 공동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그들 말대로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진 것은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탓이 크다.
혁신을 둘러싼 갈등의 배경에도 두 사람간에 차기 대선을 겨냥한 숨길 수 없는 욕망이 깔려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문재인과 안철수의 관계는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라는 점이다. 문재인이 거꾸러진다 해서 안철수의 앞길이 열리지 않는다. 현재 야당의 상황은 문재인이 무너지면 안철수도 무너지는 역학관계에 놓여있다. 안철수에게 기회가 돌아오기도 전에 당이 먼저 궤멸할 판이다. 문재인으로서도 안철수는 당의 외연 확장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다. 지금은 재신임 투표가 중요한 게 아니다. 설혹 신임을 받는다 해도 새정치연합의 고질적인 반목과 갈등의 종식은 기대난망이다. 당을 살리는 길은 문재인, 안철수가 손잡는 방법밖에 없다. 그게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는 길이기도 하다. 야당의 명분 없는 내부 갈등에 지지자들도 환멸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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