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4개 49평형서 학생 8명이 생활
동문 협동조합이 자본 조달 등 도움
인근 원룸의 반값 수준… 호응 높아
입주자들 청소 등 자치생활 규약도
14일 오후 서울 봉천동의 한 아파트. 방 4개가 딸린 162㎡(49평형) 크기의 공간에 들어 선 김현준(26ㆍ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4년)씨와 정준영(26ㆍ농경제학과 4년)씨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날부터 임대료 걱정 없이 널찍한 아파트에 살게 됐다는 기대감과 선ㆍ후배 8명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한다는 걱정이 뒤섞인 탓이다.
이 곳은 서울대 총학생회와 협동조합 ‘큰바위얼굴’이 추진하는 공동주거 프로젝트의 실험 무대다. 지독한 전ㆍ월세난으로 임대료가 폭등해 살 곳을 찾기 힘든 청년 주거 난민들이 공유경제를 통해 대안을 모색하고 나선 것. 선배 세대의 도움을 얻어 민간 자금을 유치하고 학생들은 실비만 내 저렴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이번 실험의 골자다.
‘모두의 아파트 큰바위얼굴 아카데미아(모두의 아파트)’라는 이름이 붙은 프로젝트는 학생 8명이 각각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0만원을 내고 아파트 한 채를 같이 쓴다. 비슷한 환경의 대학가 원룸이 보통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6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반값 수준이다. 전체 보증금 3억원에서 부족한 부분은 동문 선배들로 구성된 ‘큰바위얼굴’이 조달했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연이율 2%의 정책자금과 동작신용협동조합의 대출금을 합쳐 전세금의 80%를 충당했다. 학생들이 낸 보증금 500만원은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것이다. 대출에 따른 이자와 아파트 관리비용 등은 학생들이 내는 월세로 충당한다.
2년 전인 2013년에도 같은 프로젝트가 시도됐지만 학생들이 30만원으로 책정된 월세를 부담스러워해 지원자가 없었다. 실패를 거울 삼아 이번에는 민간자본 비율을 높여 월세를 20만원으로 낮추자 16명 모집에 50명 이상이 지원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여학생 8명은 앞서 지난달 27일 서울 신림동의 아파트에 입주했고, 이날은 나머지 남학생 8명의 입주 날이었던 셈이다.
서울대 인근은 모두의 아파트 프로젝트를 실험하기에 안성맞춤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서울대생 중에는 지방 출신이 많은 데다 관악구는 최저주거기준(14㎡ 이상)에 미달하거나 반지하, 옥탑방 등에 사는 사람들의 비중을 뜻하는 주거빈곤율이 높기 때문이다. 청년주거 안정화를 위한 모임 ‘민달팽이 유니온’의 2013년 조사에 따르면 서울 청년(만 20~34세) 1인 가구의 주거빈곤율은 36.3%로 조사됐는데, 특히 관악구 대학동의 경우 무려 75%에 달했다. 주무열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기숙사에 입주하지 못한 학생들이 주로 사는 대학동이 청년 주거빈곤율 전국 1위라는 사실을 접하고 해결책을 찾다가 큰바위얼굴 측과 뜻을 모으게 됐다”고 설명했다.
청년 주거문제로 시작했으나 프로젝트는 공동생활을 통해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모색하는 공동체 회복의 장이기도 하다. 입주자들은 매주 ‘식구 회의’를 거쳐 가구 배치부터 빨래, 화장실 청소 등 자치 생활 규약을 만들고 따라야 한다. 규정을 어기면 퇴거 조치를 받을 수도 있다. 양기철 큰바위얼굴 이사장은 “단순히 청년들의 주거 빈곤을 해결해 주는 차원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한국사회에서 점차 사라지는 배려와 관용 등 공동체 덕목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민달팽이 유니온 주택협동조합 권지웅 이사장은 “정부도 해결하지 못한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청년들이 스스로 나서 성찰적 대안을 찾으려 하는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큰바위 얼굴은 서울대의 실험 결과를 토대로 비슷한 환경에 처한 서울 동북부 지역 대학으로 프로젝트를 확장할 예정이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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