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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어든] 차붐과는 다를‘손흥민의 세상’

입력
2015.09.1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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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의 활약상을 자세하게 기억할 만큼 내 나이가 많지는 않다. 어렸을 때 그가 어떤 선수인지는 들어서는 알고 있었는데, 프랑크푸르트와 에버딘과의 UEFA컵 경기를 통해 그의 플레이를 처음 접할 수 있었다. South Korean에 대한 첫 번째 이미지를 차범근을 통해 얻을 수 있었으니 축구의 힘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차범근이 요즘의 선수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 시절보다 더 엄청난 스타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70~80년대 축구에서 분데스리가는 매우 강력한 무대였지만, 독일에 거주하지 않는 한 분데스리가 축구를 경험하기는 불가능했다. 인터넷도 위성티비이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하다.

그 시절의 사람들은 이러한 시대가 올 것이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손흥민의 토트넘 입단이 결정되자마자 손흥민의 특징과 강-약점을 분석하는 기사가 수없이 쏟아졌다. 수천 명이 넘는 팬들은 유투브 등 온라인 미디어에 접속해 손흥민의 분데스리가-대표팀 하이라이트를 감상했다.

어떤 세상이 더 나은지는 나도 모른다. 모두가 축구를 공유하고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요즘의 분위기가 멋지다고 생각을 한다. 물론 과거와 같은 신비로움과 동경은 좀 사라져서 아쉽기는 하다. 90년대만 해도 블랙번이 새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때 골수팬들조차 그가 어떠한 선수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월드컵에서 뛴 선수가 아닌 이상 플레이 영상을 접하기가 어려웠던 까닭이다. 우리는 신비로운 기대감으로 새 선수의 등장을 기다렸다.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시절에 인터넷만 있었어도 한국 선수의 이미지는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차범근이라는 대단한 존재가 너무 일찍 출현했던 것이다. 요즘 한국 선수에 대한 이미지는 박지성, 이영표, 기성용으로 굳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 이들 모두 훌륭한 팀 플레이어이며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깔끔한 축구를 한다고 평가 받는다 (‘깔끔한 축구’라는 표현은 한국과 아시아 선수들을 묘사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박지성은 잉글랜드에서 모든 우승을 이루었고 유럽 무대에서도 큰 역할을 했지만, 그의 실력이 평가절하되었다는 느낌은 언제나 남아 있다. 박지성은 자신의 운동량과 움직임을 통해 주변에 있는 선수들을 빛나게 하는 특징이 있었다. 축구를 이해하는 팬들은 그의 플레이에 존경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러한 유형의 선수가 늘 주목과 관심을 받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같은 팀에 호날두, 루니, 테베즈, 스콜스, 긱스가 있다면 헤드라인이 박지성에게까지 돌아갈 기회는 드물 수밖에 없다.

기성용은 지난 12~18개월 동안 잉글랜드에서 많은 관심과 존경심을 이끌어냈다. 볼을 쉽게 빼앗기지 않고 압박이 들어와도 침착하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팬들은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게다가 상황에 따라 득점까지 해주니 훌륭한 미드필더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기성용도 궁극적으로는 중간 역할을 하는 자원이기에 팬들이 의자에서 뛰어오르게 하는 장면과 헤드라인 기사를 자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손흥민은 조금 다르다. 손흥민은 아시아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폭발적인 플레이를 빅리그에 선사할 힘이 있다. 손흥민이 저 위에 언급한 선수들보다 축구적으로 뛰어나다는 말은 아니고, 그의 스타일 자체가 기존의 한국 유럽파와는 다르다는 의미다. 박지성이나 기성용이 하프라인에서 공을 잡았을 때 흥분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팬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손흥민이 중앙선에서 공을 잡으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기 어렵다. 특별하고 엄청난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데, 실제로 우리는 그러한 장면을 여러 번 목격해왔다.

선덜랜드전에서는 손흥민이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있다. 오른쪽 측면에서 경기를 시작했지만 너무 중앙으로 붙는 경향을 보여줬고, 중앙에는 공간이 없었기에 기회를 만들기 어려웠다. 데뷔전이고 하다 보니 확실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큰 듯했다. 영국 축구와 토트넘의 플레이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토트넘 동료들이 손흥민을 이해하는 과정도 있어야 한다.

손흥민처럼 폭발적인 경기력을 지닌 선수에게는 조용한 나날도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매 경기에서 평점 8점을 받기는 어려운 타입이다. 10점의 활약을 할 때도 있는 반면 4~5점에 그치는 플레이를 할 수도 있는 게 손흥민과 같은 유형이다. 그래도 팬들은 이러한 선수에 더 열광한다. 마법과 같은 플레이를 통해 자신의 힘으로 팀의 승리를 만들 수 있는 까닭이다.

손흥민이 토트넘을 확고한 빅4로 만들어 유로파리그가 아닌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는 팀으로 만들면 좋겠지만, 손흥민 혼자의 힘으로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저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와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한국 선수도 이렇게 짜릿한 골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키기를 바랄 뿐이다. 남미, 유럽, 아프리카에 전혀 뒤지지 않는 폭발력을 아시아 출신의 한국 선수가 보여주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과거 차범근이 그 정도의 플레이를 했지만 시대적 분위기가 뒷받침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완전히 다른 시대다. 손흥민이 만들어낼 강인한 인상은 아시아 선수 전체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

축구 칼럼니스트/ 번역: 조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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