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이돌 산업의 키워드는 '취향저격'이다. 주목할 만한 상승세를 보인 걸그룹 마마무는 '음오아예' 노랫말에서 '취향저격 에이스'라는 표현을 썼고, '드디어 데뷔'라는 표현이 어울릴 그룹 아이콘의 데뷔곡 제목은 '취향저격'이다. 단지 아이돌 그룹의 노래에 이 말이 쓰여서는 아니다. 요즘 아이돌 그룹들은 모두 특정인, 또는 특정 집단의 '취향'을 '저격'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테면 그룹 세븐틴이 두번째 앨범 타이틀 곡 '만세'에서 교복을 입고 '잠깐 소녀야'를 외치거나, 몬스타 엑스가 힙합 패션에 누군가의 마음에 '신속히' 들어가겠다는 것은 각자가 표현하는 스타일을 좋아할 팬들을 명확하게 공략하겠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명확한 마케팅으로 각자의 시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H.O.T.와 젝스키스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할 때부터 '취향저격'은 중요했다. 애초에 젝스키스는 이미 인기를 얻고 있는 H.O.T.와는 다른 느낌으로 또 다른 팬 층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S.E.S.와 핑클의 서로 다른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특히 최근처럼 아이돌 그룹이 넘쳐나는 시기에는 특정 취향을 공략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 됐다. EXO가 팀을 한국과 중국으로 나누고, 그들을 묶는 판타지적인 세계관을 끌어들인 이유다. 팀 구성 자체가 한국과 중국 시장을 나눠서 공략하고, 여기에 판타지적인 세계관은 이런 취향을 가진 팬덤을 적극적으로 공략한다. 반대로 그룹 방탄소년단은 초반부터 '학교'를 키워드로 현실의 반항아 같은 느낌을 가져가고, 최근에는 좌절하는 청춘의 이미지를 끌어들인다. EXO가 '으르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직후 데뷔했음에도 일정한 시장을 유지하며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아무리 인기가 있는 팀이라도 아예 다른 팀의 시장까지 가져갈 수는 없는 법이다. 최근 아이돌 그룹들이 교복, 뱀파이어, 갱, 메이드 등 다양한 콘셉트를 시도하는 이유다.
그러나 아이돌 그룹이 취향 저격만으로는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 취향 저격을 할수록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팬덤은 분명해지는 반면, 그 바깥의 대중을 사로잡기는 어렵다. 물론 국내외의 팬덤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의 대중성까지 확보해야 CF 섭외가 들어오고, 나아가서 더 많은 이들이 팬이 되고 공연에 찾아올 가능성이 생긴다. 이를테면 EXO가 아이돌 산업의 진정한 블록버스터가 되기 시작한 것은 팬덤을 확 끌어 잡는 동시에 음원차트에서도 대중의 선택을 받으며 롱런한 '으르렁'부터였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아이돌 그룹 빅뱅은 이제 특정 취향을 노린다기 보다 문자 그대로 범대중적인 인지도를 바탕으로 지금 가장 많은 대중이 듣는 음악들을 발표한다. 빅뱅은 대부분 팬들이 사는 음반 판매량에서 언제나 최고라고만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그들과 같은 브랜드를 쌓은 아이돌 그룹은 없다.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팬들의 '취향저격'을 하면서 MBC ‘아이돌 육상 체육대회’ 같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부터 각종 드라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얼굴을 알리는 이유다. 무대에서 제대로 '취향저격'만 해도 팬이 되는 사람 외에도 팬을 만들려면 일단 알리기부터 해야 한다. 거의 모든 아이돌 그룹들은 팬덤을 넘어 대중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룹 아이콘의 '취향저격'이 사실상 광범위한 대중을 '저격'한다는 것은 흥미롭다. 아이콘은 힙합을 기반에 둔 팀이지만, '취향저격'은 듣기 편한 멜로디의 러브 송이다. 이 노래만으로는 아이콘이 어떤 취향의 팬을 공략할지 알기 어렵다. 대신 이 곡은 발표 직후 모든 음원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데뷔 전 2년여 동안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의 지원 속에 상당한 인지도를 쌓고, 여기에 누구든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결합된 결과다. '취향저격'이라는 노래도 사실은 아이콘이 '취향저격'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여자에게 '취향저격' 당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른 아이돌 그룹은 쉽게 얻지 못할 인지도를 가지고, 그들은 폭 넓은 대중에게 자신들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다음 곡부터는 그 많은 대중 사이에서 '취향저격'할 대상을 찾아 나설 것이고 말이다. 기존 아이돌 그룹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YG엔터테인먼트의 이 방식이 성공한다면, 아이돌 산업에서 또 다른 흐름이 시작될런지도 모르겠다.
방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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