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유대인까지 나치에게 넘겨
홀로코스트 비극 거들어
獨 강점기 비시정부 최악의 범죄
파리 해방되자 부역자 수만명 처벌
최근까지도 과거사 청산 활발
한국의 친일 청산은 초라하기만
해방 70년이 되도록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이 나라에서 이 책을 읽는 기분은 착잡하다. ‘미완의 프랑스 과거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강점기(1940~44) 프랑스의 협력과 저항을 깊이 들여다본다. 당시 나치에 협력한 부역자의 처벌과 그 과정에서 벌어진 논쟁을 다루고, 오늘날 프랑스가 과거사를 바라보는 눈을 이야기한다.
2008년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숙청과 기억의 역사, 1944~2004’를 선보였던 역사학자 이용우(동덕여대 교수)의 후속작이다. 전작이 입문편이라면 이번 책은 심화편이다. 독일점령기 자체는 도입부에 간단히 설명하고 청산 대상인 대독협력자에 집중한 전작과 달리, 강점기의 유대인 박해와 초기 레지스탕스, 레지스탕스의 기억과 신화를 둘러싸고 현재까지 진행 중인 논쟁도 다루었다.
프랑스는 과거사 청산을 철저하게 한 편이다. 파리 해방 직전인 1944년 6월 프랑스 임시정부는 나치에 협력한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부역자재판소를 설치하는 것을 시작으로 최고재판소, 공민재판부 등 새로운 재판소들을 만들어 대규모 사법적 숙청에 나선다. 이 재판소들이 대독협력 혐의자로 서류 검토한 대상은 35만명, 유죄 선고는 9만 8,000여명에 달한다. 재판을 받은 12만명 중 약 3만 8,000명이 수감됐고 약 1,500명이 처형됐다. 강점기 괴뢰정권인 비시정부의 수반 필리프 패탱은 사형 선고에 이어 종신형으로 감형됐고, 총리 피에르 라발은 사형 선고를 받자 자살을 시도한 뒤 총살됐다. 그런데도 ‘미완’인 까닭은 ‘지나가지 않은 과거’이기 때문이다. 2014~15년 파리 도심에서는 독일강점기 대독협력을 가리키는 ‘협력’ 전시가 열려 기억을 되살렸다.
반면 프랑스의 4년에 비해 36년의 긴 점령기를 겪은 한국의 친일 청산은 초라하다. 제헌의회가 친일 처벌을 위해 설치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은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1년 만에 해체됐다. 활동 성과는 총 취급건수 682건 중 기소 221건, 판결 40건에 그쳤고, 체형은 고작 14명이었다. 사형집행은 1명도 없고 체형을 받은 사람들도 곧바로 풀려났다.
영국 다음으로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고 문화강국을 자부하던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한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충격이었고, 점령기 4년은 “프랑스 현대사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고 복잡하고 분열적인 시기“였다. 당시 대독협력자를 가리키는 콜라보라퇴르(Collaborateur)의 약칭 ‘콜라보’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치욕스런 용어로 통한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는 대독협력자와 그 처벌 문제를 다룬다. 해방 직후 이들은 지독한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 됐는데, 저자는 당시 신문, 잡지, 논설, 법령, 소설 등을 분석해 그 양상을 보여준다. 당시 협력자 처벌 규정 중 저자가 특별히 주목한 것은 반역죄나 적과의 내통죄로 처벌하기에는 경미한 행위에 적용된 국민부적격죄다. 나치의 점령과 지배를 용이하게 한 반민주적ㆍ반공화주의적ㆍ인종차별적 행위가 여기에 해당된다. 투표권ㆍ선거권ㆍ피선거권을 박탈하고 공직에서 추방하는 일종의 명예형으로, 더러 거주제한과 재산몰수도 포함됐다. 국민부적격죄는 1951년과 53년 대사면이 이뤄졌다.
강점기 비시정부는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면에서 독일에 적극 협력했는데, 그 중 최악의 범죄는 유대인학살을 적극 거든 것이다. 2차 대전 중 점령당하지 않은 지역에서조차 유대인을 독일에 기꺼이 내준 유일한 나라가 프랑스다. 독일이 요구하지 않은 16세 미만 유대인들까지 강제 이송시킨 결과 약 7만 3,000명이 아우슈비츠 등으로 끌려가 학살당했다. 상당수는 프랑스 경찰에 붙잡혀 프랑스 수용소를 거쳐 이송됐다. 그 중에도 1942년 7월, 파리 지역의 유대인 1만 3,000명을 검거한 벨디브 사건이 단연 최악이다. 당시 이 작전을 지휘한 경찰 총수 부스케는 해방 후 재판에서 미온적 판결을 받았다가 반세기 뒤에 반인륜범죄로 다시 고소돼 재판을 받던 중 1993년 정신이상자의 총에 맞아 죽었다. 책은 프랑스 국가의 책임과 비시정부를 분리하고자 했던 당시 정치권의 움직임과 그로 인한 사회적 논란을 자세히 다룸으로써 과거사 청산의 난제들을 점검한다.
마지막 3부는 레지스탕스 이야기다. 나치 독일과 대독협력자들에 맞서 끝까지 싸운 레지스탕스는 프랑스의 자랑이지만, 신화와 의혹도 없지 않다. 레지스탕스 내부의 배반이 의심되는 사건과 그에 대한 전후 재판들, 비시정부에 대해 모호하거나 심지어 우호적이기조차 했던 초기 레지스탕스, 레지스탕스 최대의 영웅인 장 물랭에 대한 소련첩자설, 모범적 레지스탕스 부부로 꼽히던 오브락 부부의 의문스런 행적 등 1970년대 이후 제기된 논쟁을 소개한다. 부역자 처벌에 단호한 것 못지않게 그 대척점에 선 영웅들에 대해서도 좀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려는 엄격함을 볼 수 있다.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경험을 한국에 그대로 대입하는 건 무리다. 점령과 협력의 기간, 정도, 성격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이 책이 한국 사회의 과거 청산 문제에 해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썼다.
오미환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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