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오류중 학생ㆍ학부모 관내센터와 인식 개선ㆍ돌봄활동
"기억상실ㆍ배변 장애 등 중증 15%… 드라마서 극적 묘사로 편견 유발"
“내가 자식 일곱 중에 이제 아들만 둘 남았는데, 아들 사업이 부도가 나 못 본지 한참 됐어. 그런데 요즘 나한테 전화도 해주고, 함께 바깥구경도 하는 딸이 생겼어.”
휠체어에 의지한 채 지난 16일 오후 서울 구로구 푸른수목원을 찾은 원희정(90) 할머니는 전은성(36)씨를 딸이라 불렀다. 나들이 내내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던 전씨는 나들이 후 야외 테이블에서 할머니를 옆에 앉아 귤과 방울토마토 등을 간식거리를 챙겼다.
이날은 원씨 정씨 ‘모녀’처럼 새롭게 정으로 맺어진 또 다른 모녀 세 쌍도 함께 했다. 딸들이 각자 자식들도 데리고 나오면서 네 가족 삼대가 함께한 가족소풍이 된 것이다.
이날 나들이는 쓰담채(치매 독거노인들을 쓰다듬어 주는 집) 가족봉사단과 서울 구로구 관내 치매 독거노인들이 지난달 13일 일대일 결연을 맺은 것이 인연이 됐다. 서울 구로구 오류중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로 구성된 쓰담채는 구로구치매지원센터가 치매 인식개선사업 일환으로 오류중과 협약을 맺고 봉사를 희망한 다섯 가정이 활동하고 있다.
나들이에는 단체활동에 거부감을 보인 할머니 한 분을 제외한 나머지 할머니들과 가족들이 뭉쳤다. 김화심(44) 쓰담채 반장은 “최소 한 달에 두 번 일대일 결연을 맺은 김정석(82) 할머니댁에 찾아가는 것으로 정해져 있지만, 할머니댁과 우리 집이 걸어서 3, 4분 거리 정도라 평소 집에 찾아가 안부를 묻고 주전부리도 챙겨드린다”고 말했다.
박기화(83) 할머니와 단짝이 된 김명희(46)ㆍ박효주(14) 모녀는 박씨 할머니를 보면 시어머니와 친할머니가 생각난다고 했다. ‘쓰담채’ 명칭을 제안한 김씨는 5년간 치매를 앓던 시어머니를 모시며 2009년 돌아가실 때까지 수발한 경험이 있다.
쓰담채 가족봉사단 중에도 보통사람과 같이 처음부터 치매에 마음을 열지는 못한 경우는 있다. 전은성씨는 “가족봉사단에 가입했다고 하니 주변에서 첫 반응은 아이들이 치매노인과 함께 있다가 무슨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하냐는 것이었다”고 했다. 전씨는 “나 자신도 치매에 대한 편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막상 다가가보니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고 말했다. 손동혁 사회복지사는 “장기요양 3등급으로 관절염 때문에 혼자 거동이 불편하고 치매 초기증상을 보이는 원씨 할머니는 단기 기억력이 조금 떨어질 뿐 일상 대화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치매에 대한 편견을 ‘드라마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잘라 말한다. 손은실 서울 구로구치매지원센터 팀장은 “상황판단 능력 없이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려 남에게 피해를 주고 기억상실과 배변장애 등을 동반하는 치매증상은 중증에 속하는 사례”라고 소개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노인 인구 약 638만 명 가운데 치매환자는 약 61만명(9.6%)으로, 이 가운데 중증환자 비율은 15% 가량이다. 증상이 가벼운 경도(최경도 포함) 수준은 58%를 차지한다.
손 팀장은 “(드라마들이) 극적 요소를 위해 치매에 걸리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동반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치매를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사안은 결코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치매 진료환자 현황’자료 등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치매환자가 50% 증가하는 등 급속도로 늘고 있어 치매환자의 조기발견 및 적절한 예방ㆍ관리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빠른 고령화로 더 이상 치매를 한 가정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정부는 2008년부터 9월21일을 ‘치매극복의 날’로 지정했다.
손 팀장은 “치매환자들 대부분이 큰 우울감을 느끼는데, 말벗을 해드려 우울감만 줄여도 치매증상을 크게 완화시킬 수 있다”며 “내년에는 구로구 관내 다른 학교들까지 확대해 쓰담채 가족봉사단을 15개 가정까지 늘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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