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 높은 봉에 구름 서리고♪
관악산 기슭에 우뚝 솟은 배움의 터전♪
교가를 부를 때마다 원망했다. 난 왜 산 속에 처박힌 학교를 다니는 건지, 왜 등굣길마다 흐르는 땀과 사투를 벌여야만 하는지. 원거리 통학을 했던 대학 생활은 더 심했다. ‘지옥철’에서 간신히 벗어나면 곧바로 경사진 캠퍼스를 꾸역꾸역 올라야 하는 고통이 뒤따랐다. 잔인한 언덕길 때문에 스쿠터를 이용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가을이 오면 그토록 원망스러웠던 교정이 문득문득 그리워진다. 무더위가 지나고 나면, 학교 뒷동산은 알록달록하게 단풍이 들어 참 예뻤다. 부쩍 선득해진 가을 아침에 살짝 숨이 차게 걸으면, 교문까지 쫓아온 아침잠도 어느새 달아나버렸다.
어쩌면 꽉 막힌 도심 속에서 산 기슭에나마 캠퍼스가 자리잡은 것은 불운이 아니라 행운이다. 잠깐이라도 토익책, 전공서적을 덮어두고 아늑한 숲길을 걸을 수 있는 낭만이 있다면 말이다. 서울 시내 캠퍼스에 인접한 걷기 좋은 탐방로 3곳을 소개한다.
서달산(숭실대ㆍ중앙대, 179m)
숭실대와 중앙대를 끼고 있는 서울 동작구의 서달산은 나지막하고 얌전한 도심 속 동산이다. 노들역-중앙대 후문-달마사-동작대(서달산 정상)-국립현충원으로 이어지는 3.2㎞ 코스는 가벼운 산책을 즐기기에 안성맞춤. 동작구 주변에 형성된 7개의 ‘동작충효길’ 중 1코스에 해당된다. 2012년도에 탐방로 조성이 마무리돼, 산책로가 깔끔하게 정비돼 있다.
서달산 정상에는 동작 전망대, 운동 시설 등을 갖춘 달마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바둑을 두거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마을 회관 역할을 겸하고 있는 곳이다.
3층짜리 정자 겸 전망대인 동작대에 오르면 한강과 강북 풍경을 조망할 수 있지만 소나무가 높이 자라 전망이 좋은 편은 아니다. 차라리 정상 부근에 위치한 달마사 어귀에서 바라보는 것이 낫다. 처마 끝에서 울려 퍼지는 풍경 소리를 들으며 경치를 내다보면 절로 마음이 차분해 진다. 요즘처럼 날씨가 쾌청하면 북한산까지 또렷이 시야에 들어온다.
달마사 뒤편에 자리잡은 거북바위에는 이 바위가 일년에 한두 번씩 한강에 가서 목욕을 하고 돌아온다는 설화도 얽혀있다. 마을 사람들은 예부터 이 거북바위와 거북바위 밑의 샘솟는 자리를 용왕궁터라고 믿어, 거북바위와 용왕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겼다고 한다.
남산(동국대, 270m)
서울 중구 남산의 동편에 자리잡은 동국대 캠퍼스는 서울 제일의 명소인 남상공원까지 확대된다. 그만큼 남산공원과 접근성이 뛰어난데, 동국대 상록원 건물 뒤편에서부터 남산 산책로가 시작된다. 남산 산책로는 북측 순환로와 남측 순환로로 나눠진다. 순환로로 들어가는 입구가 총 15개에 이른다. 이중 8번 출입구가 동국대에서 출발한다.
입구에서부터 나무 계단을 오르면 제법 판판하게 다져진 흙길이 나온다. 길 양편으로 아담하게 자란 나무들이 작은 숲터널을 만들어 낸다. 50m 정도 걸어가면 동국대 남산학사로 내려갈 수 있는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에서 다시 약 50m를 더 가면 너른 남산 산책로가 나온다. 캠퍼스에서 불과 100m 거리니, 동국대 학생들은 학교 근처에서 남산을 즐길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1.9km 정도 완만한 산책로를 걸으면 서울N타워까지 갈 수 있다.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남산케이블카 쪽이나 한옥마을 방향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조용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안산(연세대ㆍ이화여대, 295m)
말의 안장과 닮았다고 해서 안산(鞍山)으로 불리는 이 곳은 연세대, 이화여대를 품고 있는 서대문구의 터줏대감이다. 안산의 특징은 다양한 방법으로 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둘레길과 비슷한 개념인 안산 자락길은 산허리를 따라 7㎞를 걸을 수 있는 숲속 산책로다.
나무 데크로 이루어진 길은 휠체어, 유모차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하다. 순환로 곳곳에 메타세콰이아 숲길, 숲속 무대, 숲속 도서관 등이 들어서 가족 단위로 찾는 탐방객들도 많다.
한편으로는 험준한 이면을 갖춘 곳이 안산이다. 가벼운 차림으로 걷는 유학생들도 많지만 등산복, 폴까지 갖춘 탐방객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봉수대가 위치한 정상 주변은 제법 바위가 많아 암벽 등반을 하는 이들도 있다.
자락길 순환로에서 이곳 봉수대로 올라오는 이들도 많은데,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강 이북과 이남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고, 길 건너 인접해 있는 인왕산 자락에서 서울 시내까지 뻗어나간 성곽길이 장관이다.
오후 6시쯤 정상 봉수대에 오르니 어둠이 내려앉기를 기다리는 이가 다수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니, 도심의 불빛들이 하나 둘씩 스위치를 켠다. 도심 속 대로변들은 빨간 꽁무니와 노란 쌍라이트의 행진으로 붐비고 있지만, 봉수대에 오른 우리들은 여유를 만끽한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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