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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칼럼] ‘헬명절’ 너머, 존재들의 향연으로

입력
2015.09.2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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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극도의 절망감을 느끼는 이들 그리고 ‘비정상’ 또는 ‘실패자’ 라는 표지가 붙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들이, 한국을 ‘헬(hell)조선’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최근 한 TV 방송사가 진행한 설문조사 발표에 의하면, 설문 응답자 2만 1,000명 중 88%가 이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90%가 2040세대인 이들 응답자와 같은 이들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추석과 같은 명절을 점점 ‘헬명절’로 경험할 수도 있다는 염려는 기우일까.

명절은 단순하게 즐겁기만 한 절기가 아니다. 다층적인 정치적 시공간들이 만들어지는 ‘정치적 사건’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권력’이 작동된다는 의미이다. 명절이 만들어내는 공간들에서 다양한 권력 기제에 의한 관계의 ‘위계주의’가 작동될 뿐만 아니라, ‘정상-비정상’의 가치체제들이 활성화되고 재생산 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과 함께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환한 보름달을 즐기며 송편을 빚고 화기애애하게 음식과 웃음을 나누는 추석의 낭만적 이미지는, 한국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지울 수 없이 각인되어 있다. TV의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은 이러한 ‘추석의 낭만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곤 한다. 추석은 사방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어머니의 음식’을 먹고, 아이들은 즐겁게 뛰어 놀고, 자식들은 부모에 대한 ‘효’를 재확인하는 자리로 표상된다.

그러나 이렇게 특정한 절기나 사건에 대한 ‘낭만화’는 심각한 문제점과 위험성을 담고 있다. ‘낭만화’는 언제나 ‘밝은 면’만을 과대 포장하여 드러낼 뿐, ‘어두운 면’은 외면하기 때문이다. 명절마다 다양한 형태의 위계주의, ‘정상-비정상’ 또는 ‘성공-실패’ 담론, 그리고 고정된 성 역할 분담이 재생산된다. 그래서 명절에 모인 이들 중에는 위로와 기쁨이 아닌, 소외와 고통을 경험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어두운 경험들을 드러내지는 못하고 깊숙이 억눌러 버리면서 몸과 마음의 병이 생기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명절의 낭만화’가 가리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들에 우리가 진지하게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첫째, 명절은 가부장제적 가치가 재생산되고 ‘자연화’되는 시간이다. ‘자연화’된다는 것은 자연 세계의 원리처럼 자명하여 ‘왜’라는 물음표를 붙일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남성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가부장제적 관습은, 명절을 즐기는데 필요한 엄청난 양의 가사노동이 여성들에게만 할당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

더 나아가서 대화의 주제와 방향, 놀이의 주체와 종류, 예식의 주체와 객체 등 명절을 전후하여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이 남성중심적으로 전개된다. ‘남성은 주체-여성은 객체’라는 전형적인 가부장제적 프레임이 재현되는 것이다. 명절을 전후해서 중층의 가사노동은 물론 다중적 소외와 배제의 경험에 지쳐서, 몸과 마음에 병이 드는 여성들의 ‘명절증후군’이라는 독특한 현상이 등장한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즐거운 남성-괴로운 여성’이라는 현실은 명절마다 반복된다.

둘째, 명절은 사회가 규정한 ‘정상-비정상’ 또는 ‘성공-실패’의 기준들이 재생산되는 절기이다. 예를 들어서 이성애 가족, 양부모 가족, 유자녀 가족, 정규직 취업자, 결혼자는 ‘정상’이다. 반면, 동성애 가족, 한부모 가족, 무자녀 가족, 비정규직, 미취업자, 비혼자는 ‘비정상’의 부류에 속하게 된다. 이렇듯 소위 정상과 비정상의 위계가 세워지면서, ‘정상’인 사람들이 ‘비정상’의 표지가 붙여진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하고, 더 나아가서 ‘실패자’라는 표지를 붙인다. 결국 ‘비정상’ 또는 ‘실패자’ 라는 표지가 붙여진 이들에게 명절이란, 고문처럼 고통스러운 ‘헬명절’일 수밖에 없다.

셋째, ‘낭만화’된 명절은 상업주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선물 보따리를 한 아름 사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자식들의 이미지들은, 미디어들을 통해서 퍼진다. 자식의 ‘효’의 정도가 그들이 들고 가는 ‘보이는 선물’로서 증명되어야 한다. 또한, 명절을 전후한 다양한 자선 프로그램들은 고아원의 아이들, 양로원의 노인들, 거리의 노숙인들 같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주변부인들에 대한 동정과 자선을 ‘일회성 소비품’으로 소비되는 상품으로 만든다.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제도적 보장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일회성 동정과 자선으로 대체되는 이러한 상업주의화 된 명절은, 표면적 웃음 뒤에 어둡게 드리워진 그림자들을 드러내지 않는다.

명절에 모여서 ‘웃어른들’이 ‘아랫사람들’에게 건네는 ‘공부 잘해라’, ‘결혼해라’, ‘좋은데 취직해라’, ‘아기를 낳아라’, ‘살을 빼라’ 등의 말들은, ‘덕담’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사회가 지니고 있는 ‘정상-비정상’ 또는 ‘성공-실패’의 담론들을 재생산하고 강화한다. 이럴 때, 명절은 소수에 의하여 무수한 다수가 소외, 차별, 그리고 박탈감에 시달리는 고통스러운 시간으로서의 ‘헬명절’이 된다.

한가위의 가장 중요한 상징 중의 하나는 보름달이다. ‘보름달’이 지닌 상징적 의미는 어떤 종류의 차별도 하지 않고, 지구 위에 있는 모든 존재에게 그 아름다운 빛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이 보름달을 닮은 명절을 나는 꿈꾼다:‘정상-비정상’ 또는 ‘성공-실패’의 갖가지 잣대들이 사라지는 명절; 모인 사람들 개개인들의 존재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스하게 품는 명절; 무거운 ‘노동의 짐’들이 가족 구성원들 모두에 의하여 함께 나누어져서, 더 이상 ‘노동’이 아닌 ‘놀이’로 전이되는 특별한 경험들을 하는 명절; ‘서로 함께함’ 자체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되는 명절. 이러한 ‘존재들의 향연’으로서의 명절을 나는 꿈 꾼다.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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