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으면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추석이다. 추석이 중국 풍습인지 한국 고유의 풍습인지는 참고문헌을 더듬어서 더 전문적으로 설명해줄 분들이 많을 테니 생략하기로 하자. 추석은 결국 한해 농사를 잘 지었기에 자연과 조상과 이웃에 감사하는 날이며, 일년의 기다림인 농사의 결실을 보는 절일(節日)이다. 또한 다음해의 농사를 기리는 시기로서 깊은 의미가 있었다. 요즘은 일년 사시사철 원하는 작물 대부분을 얻을 수 있고 수입산 농산물이 넘쳐나는데 농공감사절로서의 추석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온가족이 모이는 추석 차례상에는 우리 땅에서 자란 햇과일을 올리고 막 추수한 쌀로 송편을 빚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추석이란 풍요의 상징으로 잠시나마 농사를 멈추고 일년의 노동에 대한 보상과 자축을 할 수 있는 날이었겠다.
그런 즐거운 날이 어찌 우리에게만 있겠는가. 지구상에 농경문화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라면 응당 농공감사절을 지낸다. 중국에서는 중추절, 일본에서는 오봉, 독일에서는 에른테당크페스트(Erntedankfest), 프랑스는 투생(Toussanit), 하물며 러시아도 성 드미트리 토요일(Saint Dimitri Saturday) 이라는 명절을 지낸다. 이름은 각기 다르지만 보통 8~9월 여름이 막 지난 가을이나 10~11월 겨울로 넘어가기 전의 가을이 ‘파티’의 시기다.
칠면조 조리법을 보자. 20LB(4.5kg) 정도 되는 칠면조 한 마리를 그냥 굽는 게 아니다. 내장이 있던 자리에 빵이나 고기, 목뼈 등을 넣어 스터핑(stuffing?음식물의 내부를 채우는 소)을 만들어 채우고 소스와 양념을 발라가며 오븐에서 5-6시간 정도를 천천히 굽는데 이때 나온 기름과 육즙으로 소스까지 만든다. 다른 음식은 만들지도 않고 칠면조만으로도 약 7시간 정도는 요리해야 한다. 말하자면 아침부터 하루 종일 음식 장만하는 것이 일이니 족히 20시간은 주방에 매달려야 추수감사절 저녁식사를 성공적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 독일인 요리사 친구가 에른데탕크페스트의 일부인 옥토버페스트를 위해서는 일주일 이상 소시지와 햄을 준비한다고 했다. 어느 나라의 추수감사절 보더라도 오랜 시간 공들여야 하는 것은 우리의 추석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요즘은 추석 쇠는 일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래도 많은 집 주방에서는 전 부치는 고소한 냄새가 날 것이고, 송편 빚을 쌀가루를 빻기 위해 방앗간은 쉴 틈 없이 돌아갈 테고, 여전히 우리네 어머니들과 아내들은 힘이 들겠다. 금년에는 나도 좀 많이 거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나이가 드셔서도 아니고, 딸아이가 생겨서도 아니고 형 가족이 미국으로 발령이 나서도 아니다. 추석 음식은 오래 준비 해야겠지만 그 음식을 나눠 먹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먹는 자체의 즐거움 보다는 음식을 함께 만드는 과정에서 나누는 많은 이야기들이 더 즐겁다는 것을 알 나이 말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즐거운 추석을 기대한다.
요리사
레이먼 김 '포스트 Eat' ▶ 시리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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