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 초에 방영됐던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1(엠넷)’의 열혈 시청자였다. 그동안 방송에서 보기 어려웠던 여성 래퍼들이 한꺼번에 모여있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 특히나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들 한 성깔 하는 ‘센 언니’들이었기에 재미가 두 배였던 것 같다.
요즘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2’가 한창 방영 중이다. 그런데 왠지 보는 맛이 이전 시즌만 못하다.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에 찰지게 욕 먹을 기대를 잔뜩 하고 들어갔는데, 예쁘장하고 착한 아가씨가 서빙해 줄 때의 실망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단 시즌2와 시즌1의 가장 큰 차이는 출연자들의 외모다. 시즌2 출연자 대부분이 평균 이상의 미녀들이다. 아이돌 유빈(원더걸스)은 등장 순간 “실물로 보니 바비 인형이 걸어 들어오는 줄 알았다”라는 출연자들의 극찬을 받는다. 또 다른 아이돌 효린(시스타), 예지(피에스타)도 개성 있는 미모의 소유자들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캐스퍼, 안수민도 예쁘장하고 여리여리하다. 헤이즈, 애쉬비도 예쁘고 가녀린 스타일. ‘리틀 윤미래’ 트루디와 YG 연습생 수아는 어린 티가 폴폴 나는 귀여운 외모다. 그나마 키디비에게 “부녀회장 느낌?”이라며 ‘외모 디스’를 하지만, 키디비는 독설을 내뱉는 캐릭터가 아니라 뭔가 코믹한 허당 캐릭터다. 최연장자 길미 역시 예쁘장한 얼굴인데, 체력이 달린다는 면에만 초점을 맞춘 편집 때문인지 ‘나이 많아서 늘 피곤하고 힘들어하는 노인네’ 캐릭터로 굳어져버렸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자. 시즌1에서는 제시가 키 작은 릴샴을 향해 “난쟁아, 잘 들어”라고 랩의 운을 뗀다. 둘 다 ‘미녀’라고 하기엔 조금 미안한 얼굴. 무섭게 생긴 여자 둘이서 독설을 내뿜으며 으르렁댄다. 그 상황이 무지 재미있다. 게다가 제시가 “니가 뭔데 나를 평가해”, “우린 팀이 아냐. 디스이즈 컴피티션”이라고 세게 내뱉은 말들은 그대로 유행어가 돼버렸다. 제시뿐인가. 시즌1 타이미와 졸리브이의 살벌한 디스전에서는 입을 열 때마다 ‘삐’ 소리가 이어졌다. 그 살벌한 싸움에 진행자 산이가 위축돼서 할 말을 잃었을 정도였다.
만일 시즌2의 예쁘고 유명한 아이돌들이 서로를 살벌하게 깎아 내리며 설전을 펼쳤다면 시즌1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을 거다. 유빈이 효린을 향해 “랩도 못 하는 마빡아”라고 질러댔거나, 예지가 유빈을 향해 “아이돌 조상님 원더걸스가 어린 애들 노는데 왜 끼어드냐”라고 자극했다면 재미가 빵빵 터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즌2에선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조심스럽다. 가장 에너지 넘치던 트루디가 3편에서 안수민에게 “고깃집 알바나 하라”고 내뱉은 게 불편할 정도로 프로그램에선 ‘디스’가 겉돈다.
오죽했으면 2회 만에 제작진이 시즌1의 제시를 소환해서 피처링 래퍼 겸 심사위원으로 앉혀놨을까 싶다. 길미가 연이어 실수만 할 때, 시즌2의 예쁜 출연자들은 너무나 착하게도 “언니를 안아주고 싶다”며 위로해준다.
그러나 트랙2의 심사위원으로 나온 제시는 출연자들의 무대를 보고 거침 없이 “저기 하얀 옷 입은 사람(이름이 뭔지 알 필요도 없다는 투로)은 집에 가야겠어”라고 뱉어버린다. 키디비가 제시에게 “한국말로 랩을 해야 하지 않냐”고 도발하자 가차 없이 “네 랩이나 잘 하세요”라고 응수한다.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2’의 첫 트랙인 ‘don’t stop’ 가사를 보면, ‘쇼미더머니 시즌 사이 공백을 겨냥한 프로그램이 그것보다 돈 돼서 어느덧 시즌2를 바라보네’라는 구절이 나온다. ‘언프리티 랩스타’의 탄생 배경에 대해 노골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이다.
시즌1이 공백 때우기 용으로 욕심 안 내고 만들었다면, 어쩌면 그래서 대박이 난 건지도 모른다. ‘성공’이나 ‘미모’와는 거리가 있는 여성 래퍼들이 자신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꾸밈 없고 거침 없이 내뱉는 게 재미있었으니까 말이다. 이 프로그램의 공식 사이트에도 ‘언프리티 랩스타’에 대한 소개를 ‘예쁜 척하지 않는 실력파 여자 래퍼들의 거친 힙합’이라고 해 놓았다.
그러나 시즌2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시즌1의 성공을 보고 몰려든 아이돌 그룹 멤버들과 대형기획사 소속 연습생은 절대로 ‘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은 ‘메인스트림’의 법칙 그대로 예의바르고 착하게 행동하는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얼굴도 예쁘다).
하지만 요즘 어린 친구들이 랩에 열광하는 이유는 좀 다른 데 있지 않나. 심하다 싶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날 것 그대로, 발칙할 정도로 솔직하게 다 끄집어내어 보여주는 가사와 애티튜드가 그 이유일 것이다. 바로 거기에 딱 부응했기 때문에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1’이 시청률과 화제성, 음원차트에서까지 좋은 성적을 거뒀다. 시즌2를 보는 네티즌들이 ‘2편은 언프리티 랩스타가 아니라 프리티 언랩스타’라고 비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2
엠넷 매주 금요일 밤 11시
국내 최초 여자 래퍼 서바이벌 언프리티 랩스타의 두 번째 시즌. 컴필레이션 앨범 제작을 놓고 11인의 실력파 여자 래퍼들이 치열한 대결을 펼치는 서바이벌 형식의 프로그램.
★시시콜콜 팩트박스
1. ‘언프리티 랩스타’와 ‘쇼미더머니’는 엠넷의 금요일 밤 간판 프로그램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전통적으로 가을 금요일 밤에 고정 편성됐던 ‘슈퍼스타K’는 현재 방영 중인 시즌7부터 목요일 밤으로 편성을 옮겼다.
2. 한국 가요에서 최초로 여성 가수가 랩을 한 건 인순이(1989년 ‘장미 그리고 메모’)다. 이후 1992년 ‘낭랑 18세’를 리메이크해서 부른 한서경이 랩을 했다. 본격적인 여성 래퍼로 인정받은 건 1997년 업타운의 윤미래였다.(출처-대중음악평론가 한동윤 칼럼)
3.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1’에는 제시, 치타, 지민, 타이미, 키썸, 졸리브이, 릴샴, 육지담까지 총 8명이 출연했다. 방송 도중 제이스가 추가로 합류했다. 시즌2에는 총 11명의 여성 래퍼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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