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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동아리 면접에서도… 도 넘은 '갑질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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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동아리 면접에서도… 도 넘은 '갑질 문화'

입력
2015.10.0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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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사용하지 말고 답변하라"

출신지역 비하 등 인신 공격하고 지원자들 당황케하는 돌발 질문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권력 남용" 온라인 커뮤니티서 비난 쏟아져

서울의 한 여대에 재학 중인 김모(23)씨는 신입생 시절 교내 스피치 동아리에 지원했다가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서류 전형에 합격해 면접장에 들어서니 말쑥한 정장을 차려 입은 선배들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면접이 시작되자 선배들은 김씨 옆자리에 있던 한 지원자에게 “후보자 중 떨어질 것 같은 사람을 지목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질문했다. 김씨는 1일 “당시 질문을 받은 동료는 당황해 하면서도 나를 꼽으며 이유를 댈 수밖에 없었다”며 “모든 지원자가 면접 후 예의 없는 질문에 불쾌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 이른바 ‘갑질 면접’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업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나 볼 법한 ‘갑과 을’의 논리가 동아리, 학회 등의 캠퍼스 자치모임 면접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같은 학생 신분임에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권력을 남용하는 등 잘못된 상하관계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역시 최근 동아리 ‘모욕 면접’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있다. 서울대 공식 홍보대사인 ‘샤인(SHINE)’의 신입부원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면접자로 나선 선배 기수 학생들이 지원자들을 향해 외모와 출신 지역을 비하하는 등 인신공격성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와 ‘서울대 대나무숲’에는 “사투리를 사용하지 말고 답변해라” “후진 동네에 산다” 등의 모욕성 발언이 나왔다는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이 동아리에 합격해 수습부원으로 활동한 학생에게 한 선배가 “너 같은 외모가 여기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말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서울대 총학생회는 제보를 수집한 뒤 샤인 측에 공식 사과문 게재를 요구한 상태다.

명시적인 인신 공격을 하지 않더라도 은연 중 갑의 지위를 과시하며 지원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사례도 즐비하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장모(21)씨는 올해 초 교내 홍보대사로 뽑히고 싶어 내키지는 않지만 성대모사 개인기를 준비했다. 장씨는 “일부 면접관 선배는 노골적으로 장기자랑을 시키기도 했다”며 “적극성을 살펴본다는 취지지만 홍보 업무와는 무관한 춤과 노래를 기본으로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서울 A대학은 홍보대사를 선발하면서 교내에 부스를 차려 지원자들을 세워 놓고 재학생들이 길거리 투표를 하게 하기도 한다.

기업의 ‘압박 면접’을 본 뜬 선발 전형도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취업난에 인기가 높은 경영학과의 경우 일부 학회의 선발 과정에서 기업 못지 않은 까다로운 전형과 지원자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돌발 질문으로 악명이 높다. 서울 B대학의 유명 경영학회는 어학 성적과 영문 에세이를 제출하게 하는 것은 물론 졸업생들이 면접관으로 참여해 전형을 치르고 있다. 군대 전역 후 해당 학회에 지원했던 이모(27)씨는 “대기업 면접처럼 실제 경영 관련 케이스를 풀어보라고 한 뒤 고압적 태도로 딴죽을 걸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해 서로 얼굴을 붉혔다”며 “전문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해하나 함께 공부할 학생을 뽑는 자리에서 필요 이상으로 심하게 몰아붙여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조직의 규모나 영향력을 떠나 공정한 절차와 약자에 대한 포용적 태도를 외면하면 존속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명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평가자의 자리는 권력을 과시하려는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아 집단 전체로부터 반감을 낳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며 “어렵더라도 지원자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객관적 질문과 절차를 갖춰 좋은 이미지를 남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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