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 공학이 만나는 학문을 전공한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즐겨 읽었는데, 그 중에서도 로봇이나 미래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SF 만화를 특히 좋아했다. 이렇게 다소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만화나 SF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한편으로는 실제로 이런 일이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SF로 대별되는 공상과학의 세계는 발표 당시에는 허무맹랑하게 보이고 아이들이나 보는 것 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지난 수십 년간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허황되어 보이는 세계들이 현재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혈관 속 여행 ‘마이크로 결사대’
미래의 의학기술에 대한 SF 영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영화는 바로 1966년 SF의 대가인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의 소설을 원작으로 리차드 플레이셔(Richard Fleischer)가 감독한 ‘판타스틱 보이지(Fantastic Voyage)’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이크로 결사대’라는 이름으로 소개가 됐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특수효과로 그 해 아카데미상 시각효과상과 미술상을 차지한 수작이다. 영화 초반에 과학자들의 전문지식이 없었다면 영화가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글이 나올 정도로, 한편의 과학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과도 같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출연한 배우들도 눈에 익숙한 배우들이 꽤 있다. ‘벤허’에서 메살라 역을 맡았던 스테판 보이드나 007 시리즈에서 블로펠트로 유명한, 그리고 ‘할로윈’의 루미스 박사인 도날드 플레전스, ‘공룡 백만년’에서 육감적인 몸매를 뽐냈던 라켈 웰치 등의 유명 배우들의 연기도 볼만하다.
줄거리는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물질을 짧은 시간 동안 매우 작게 축소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구소련의 과학자가 CIA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탈출을 감행한다. 괴한들에게 저격을 당한 과학자는 뇌에 생긴 혈전으로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주인공들이 잠수함에 탑승해서 몸 속으로 들어가서 결국에는 혈전을 제거하고 돌아오는 이야기다.
당시로서는 말도 안된다고 보였던 이 영화의 장면 중에는 이제 실제로 가능하게 되었거나, 가까운 미래에 널리 사용될 수 있는 기술들이 여럿 선을 보인다. 그 중에서도 몸 속을 돌아다니면서 몸에 생긴 이상병변을 촬영 또는 치료할 수 있는 마이크로 로봇 기술과 뇌에 생긴 혈전을 치료하기 위한 레이저 수술기술(영화에선 레이저총을 사용)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데, 이들은 현재 최신의 의학기술로 일부 상용화가 되었으며 미래에는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국내에서 최근에 개발되어 실제로 임상에 쓰이고 있는 캡슐내시경도 이러한 마이크로 로봇기술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캡슐내시경은 지름 11㎜, 길이 24㎜의 크기로 삼키기만 하면 소화기관 내부를 촬영해 외부 수신장치로 보내주며 해상도 10만 화소급 사진을 초당 3장씩, 최대 12만장을 촬영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영화에서처럼 혈관 속을 움직일 수 있는 마이크로 로봇을 이용한 혈관수술도 가능할 것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레이저 기술의 경우에는 이미 많은 의학의 분야에서 활용이 되고 있다. 피부미용을 위한 박피용 레이저, 시력을 좋게 하기 위해서 이용되는 라식용 레이저, 척추디스크 수술을 할 때에 이용하는 수술용 레이저 등과 같이 다양한 시술이 보편화 되었으며, 그 중요성은 점점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 뚜뚜뚜뚜... 생체 기술이 현실로
필자가 어렸을 때 최고의 미드(미국드라마)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리 메이저스(Lee Majors)가 주연했던 ‘6백만불의 사나이(The Six Million Dollar Man)’를 들 수 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 때문에 아이들이 TV 장면을 흉내를 내다가 사고가 나는 등의 사회적 여파도 꽤 컸다. 여담이지만, 주인공 스티브 오스틴의 연인으로 등장했던 제이미 소머즈(린지 와그너 분)는 이후 ‘소머즈(The Bionic Woman)’에서 주연을 맡게 됐는데, 이는 미국 드라마 사상 최초의 스핀오프(spin-off) 시리즈로 기록되기도 했다.
스티브 오스틴(리 메이저스 분) 대령이 우주선의 추락으로 생사의 위기에 빠지자, 정부가 그의 한쪽 눈과 한쪽 팔, 양쪽 다리를 6백만불을 들여서 생체기계로 대체해준다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속 60마일의 속도로 달릴 수 있으며 15미터 높이의 점프가 가능한 다리, 한쪽 눈은 20배로 확대가 가능한 줌 기능과 적외선 탐지가 가능하며, 한쪽 팔은 불도저의 파워를 넘어서는 몇 천 마력의 힘을 가진 것으로 되어 있다. 소머즈 역시 스카이 다이빙 사고로 사경을 헤매다가 5백만불을 들인 생체기계를 장착하게 되는데, 이 둘의 러브 스토리도 드라마 시리즈의 재미를 더했다. 소머즈는 오스틴과 달리 눈 대신에 귀를 생체기계로 대체해서 인간이 들을 수 없는 한계의 소리를 모두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 유일한 차이다. 초능력을 발휘할 때마다 어김없이 들리는 “뚜뚜뚜뚜 … “ 하는 음향효과와 효과적으로 이용된 슬로모션 기법 등은 이후 제작된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 드라마 시리즈에서 소개된 각종 생체기계 기술들은 현재의 의공학 기술로 완전히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지고 있는 듯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기계를 컨트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우리 몸의 신경조직과 기계나 센서를 어떻게 잘 연결하고 이를 조화롭게 만드느냐에 대한 것이다.
청각장애자들에게 희망을 준 최근의 기술인 ‘달팽이관 임플란트(cochlear implant)’도 이런 기술에 해당한다. 귀 근방에 소리를 감지하는 센서를 붙이고 귀에 있는 달팽이관에서 느낄 수 있는 전기적인 신호로 만들어 소리를 듣게 만드는 원리다. 기술적으로 볼 때 외부의 소리를 인간의 감각기관이 감지하는 것과 동일하게 신호를 처리하는 것이다. 이 기술은 많은 청각장애자들에게 소리를 듣게 해 줄 수 있지만, 여전히 청각신경에 손상을 받거나 뇌의 청각중추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더 나아간 최근의 연구는 직접 뇌의 청각중추에 외부 센서에서 감지한 소리를 인간의 뇌가 이해할 수 있는 전기신호로 바꾸어서 전달하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눈은 어떨까? 수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빛을 찾아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있는 걸까? 안경이나 눈에 부착할 수 있는 소형 카메라 같은 것에서 감지한 영상을 뇌로 전달할 수는 없을까? USC의 도헤니 눈 연구소(Doheny Eye Institute)에서는 인공으로 시력을 찾아줄 수 있는 속칭 ‘아이칩(eye chip)’의 연구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시각장애인이 길을 걸을 때 눈앞의 장애물 정도를 자각할 수 있는 수준의 해상도를 구현하는데 성공했으며, 현재 칼텍(Caltech)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이 칩의 해상도를 증진시키고 보다 정교한 시각처리를 하는 연구가 진행 중에 있다. 이 연구가 놀라운 점은 안경의 형태로 만들어진 카메라를 통해 입력된 영상을 실시간으로 인간의 뇌가 인식할 수 있는 형태의 전기신호로 변환하여 뇌의 시각중추에 직접 전달하는 믿기 힘든 과정을 실제로 구현했고, 시각장애인들의 실험을 통해 그 가능성을 입증하고, 상용화까지 성공했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 비싸다는 건 흠이다.
안드로이드가 등장하고 차갑게만 느껴지는 금속성 과학기술이 생체조직과 연결이 되는 사이버 펑크 SF의 주요 소재들은 필자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이다. 사이버 펑크의 시초로 일컬어지는 블레이드 러너에서 나오는 안드로이드를 열연한 해리슨 포드나,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와 같은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것이 그렇게 먼 미래가 아닐지도 모른다.
영화나 만화에서는 이러한 기술들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켰기 때문에 언뜻 이러한 주제가 독자들에게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현대의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이러한 기술의 혜택으로 정상인과 비슷한 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이를 꿈의 기술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경희사이버대학교 모바일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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