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어떤 형태로든 참여"
한중 FTA 등 이유로 머뭇대다
선점 기회 놓친 오판 자인한 셈
쌀·농축산물 추가 개방 압력 등
값비싼 기회비용 지불 불보듯
"즉각 동참 밝혀 협상력↓" 지적도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국 간에 타결된 세계 최대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정부가 뒤늦게 참여 의지를 나타냈다. 정부의 오판으로 TPP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놓친 것을 자인한 셈이어서 ‘뒷북 정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또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정치 경제적 헤게모니 싸움에서도 미국 일본 중국에 뒤쳐져 외교적으로도 손실이 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공청회 등 통상 절차를 거쳐 TPP 참여 여부와 시점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초기 TPP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2008년 미국이 TPP 참여를 선언할 시점에 우리는 미국과 FTA가 타결됐고 중국과 FTA 협상을 진행하던 상황이어서 여기 집중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당시 이명박 정부가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당시 12개 국가가 협상을 진전시켜 놓은 상황이어서 우리가 (중간에) 들어가는 데 무리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TPP는 2005년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4개국이 환태평양 전략적 경제동반자 협력체제(TPSEP) 협정을 체결한 것이 시작이다. 2008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명칭을 바꾼 뒤 미국이 아시아 시장 확대와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참여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일본이 2013년 뒤늦게 뛰어들면서 판이 커졌다.
그 사이 미국은 한국에 직간접적으로 참여를 요구했지만 당시 정부는 한미 FTA 협상 마무리와 한창 협상 중인 한중 FTA에 우선 순위를 두다가 2013년 11월 뒤늦게 TPP에 관심을 표명했다. 하지만 그때는 미국이 기존 참여국들과 협상을 이유로 우리의 참여를 거부했다. 그래서 정부의 뒤늦은 관심 표명에 실기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 부총리의 이날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인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협상력을 높이려면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최 부총리가 즉각 TPP 참여를 기정사실화하며 카드를 내보였다”며 “우리 스스로 협상 경쟁력을 떨어뜨렸다”고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기회를 놓친 한국은 후발 주자로 TPP에 참여하려면 값비싼 ‘기회비용’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12개 회원국이 상품 개방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통적으로 농축산물 경쟁력이 우수한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의 쌀과 쇠고기 추가 개방 압력이 거셀 것으로 예측된다. 최 부총리는 “TPP에 참여해도 쌀은 양허대상에서 제외해 계속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무조건 참가를 서두르기 보다는 우리의 이해득실을 따져서 전략적으로 TPP에 접근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TPP 협상을 주도한 미국이 한미 FTA 개방 수준을 많이 참고했기 때문에 우리는 한미 FTA와 비교해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고 말했다.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다자 FTA에만 있는 ‘누적원산지’ 개념도 득실을 잘 분석해야 한다. 누적원산지는 최종 생산제품에 TPP 회원국의 부품이나 소재를 사용한 경우 자국산으로 간주해 특혜관세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다.
이는 곧 TPP에 참여하지 않은 한국산 부품이나 소재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이 자국산 기계 부품을 TPP 회원국으로 수출해 조립한 뒤 미국으로 완제품 기계를 수출할 경우 TPP 가입국인 일본 부품을 사용한 제품은 자국산으로 간주돼 특혜 관세 혜택을 받지만 한국산 부품은 그렇지 못해 가격을 내리지 않는 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 연구위원은 “우리가 TPP 12개 회원국 중 멕시코와 일본을 제외한 10개국과 양자 또는 다자(ASEAN) FTA를 맺은 것을 고려하면 TPP는 일본과 맺는 FTA나 다름없다”며 “제조업 등이 강한 일본을 상대로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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