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후배 기자가 전화를 걸어와 “아내가 형 글을 보고 요리 좀 하라고 난리”라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제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끝까지 버텨라.” 후배는 열심히 버티고 있다고 했고, 전 잘했다고 했습니다. 최근 기자협회보의 여기자가 ‘요리하는 촌기자’ 이야기로 인터뷰를 청했을 때도 “후배 남자 기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마지막 주문에 “버틸 수 있는 한 버텨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인터뷰 기사에 이 내용이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자의 입맛에도, 편집 방향과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그렇습니다. 이것이 솔직한 저의 마음입니다. 요리가 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남편과 아내의 핑퐁 경기로 치부되고 있는 동안에는 기득권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주방의 남녀평등, 이것은 꿈 같은 얘기입니다. 한번 물꼬가 터지면 제방은 무너지는 법입니다. 그러니 절대 지켜야 할 것은 요리를 하지 않을 권리입니다.
저는 나이 오십에 난생 처음으로 요리란 것을 배웠습니다. 경상도 대구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장남, 장손의 타이틀을 달고 태어나, 부엌은 남자가 가장 멀리해야 한다고 배우며 자란 제가 뒤늦게 요리에 뛰어든 것은 가사노동 분담이나 성평등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털어놓은 것처럼 아내는 제 요리의 지지자가 아니었습니다. 설거지라는 복병이 아내의 주방을 어지럽힐 것이 뻔했기 때문이죠. “요리의 완성은 설거지”라는 주문에, 실천서약을 하고서야 주방으로 뛰어들 수 있었습니다.(▶관련기사 보기)
주방의 세계는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요리 그까짓 것’이란 제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마늘과 파 다짐도 제멋대로였고, 냄비밥도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습니다. 달걀 지단은 인내력 테스트였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국과 찌개의 간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요리 끝에 찾아오는 설거지는 사나이의 자존심을 구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리를 하는 동안 이상한 현상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매회 3시간인 학원 요리강습 시간이 거짓말처럼 빨리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고, 출장요리 갔을 때도 시간을 의식할 수 없었습니다. 복잡한 머릿속이 깨끗하게 지워지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참선이다, 마인드컨트롤이다 따로 할 것 없었습니다. 거짓말 같다고요? 세상 일로 머리가 복잡한 분들은 만만한 콩나물밥이라도 만들어 보십시오.
저는 항상 음식의 양 조절에 실패했습니다. 가족 수에 맞춰서 했는데도 항상 3, 4인분이 남았습니다. 요리를 하면서 주부들이 살 찌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공들여 한 요리인데 버리자니 아깝고…. 결국 만든 사람 뱃속으로 들어가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비가 제 새끼 입 속에 벌레 물어다 주는 즐거움을 알게 됐습니다. 딸내미가 쩝쩝거리며 먹는 모습을 보면 뭔가 뿌듯하곤 했습니다. 결국 아내와 두 딸 모두 다이어트를 핑계로 제가 차린 식탁을 외면하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면서, 그리고 누군가 한입 먹어주고 엄지를 척 들어줄 때 요리 배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저는 다시 주방의 주도권을 빼앗겼습니다. 음식이 남으니 설거지를 몰아서 하게 되고, 그 사이를 참지 못한 아내가 주방 구조를 확 바꿔버렸습니다. 간장이 어디 있는지, 청양고추가 어디 박혀있는지 한참을 찾아야 합니다.
밥은 누가 하냐고요? 배고픈 사람이 합니다. 전기밥솥이 다시 등장했고, 새벽형 인간인 아내가 항상 밥은 해 놓습니다. 저는 생각날 때 냄비밥을 해먹습니다. 본가 처가에서 갖고온 밑반찬은 한 가득이기 때문에 계란프라이 하나만 해도 한끼는 거뜬히 해결됩니다. 그저께는 오징어물회를 해 먹었습니다. 냉장고 뒤져서 오징어 한 마리 채썰고 당근, 오이, 양파, 깻잎, 버섯, 미역에다 청양고추, 마늘을 초장에 버무려 뚝딱 한 그릇 만들었습니다. 휴대전화 요리 앱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오징어의 거무스름한 껍질 벗길 때는 소금도 뿌렸습니다. 학원에서 배운 겁니다. 아내와 딸은 사과를 깍둑썰어 요거트에 넣어 먹더군요. 입맛도 제각각이죠.
그동안 주위의 마초들이 끊임없이 태클을 걸어왔습니다. “치아라 인마, 모양 빠지게 그게 머꼬?” “아이고 마누라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제, 핑생 그래 살아라.” 그 마초들은 바로 오십 년 저의 자화상이니, 그 심정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 마초 중 하나가 최근 은근슬쩍 요리학원에 관해 물어왔습니다. “학원? 머할라꼬요? 치우소 고마. 그냥 살던 대로 사소”라고 했지만 결국 길을 뚫어줬습니다.
역발상을 하자면 마초들은 피해자입니다. 마초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가정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싸나이’ 정체성 교육을 착실히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부엌에 드나들면 남성의 혼을 잃어버릴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죠. 세상이 그렇게 가르쳤는데, 이제는 집에서도, TV에서도, 세상에서도 남자가 요리를 해야 한다고 떠드니 혼란하기 그지없겠죠.
그런데 요리를 해 보면 나름대로 재미가 있습니다. 아예 손에 물을 묻혀 본 적이 없을 테니 벽이 느껴집니다만 재미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 제안하자면 과거의 선입견도 벗어 던지고, 현재의 부담감도 털어버리고 오로지 자신의 취미와 행복을 위해 요리에 입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누가 보든 말든, 입방아에 올리든 말든 신경 끄고 한 걸음만 내디뎌 보십시오. 주말에 한 번씩만 요리해도 달라진 세상을 느끼실 겁니다. 맛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초가 주방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가족에게는 놀라운 충격이자 즐거움입니다.
사실 가끔 하는 요리는 즐거울 수 있지만 매일 의무감으로 하는 밥짓기는 기쁠 수만은 없습니다. 그 노동에 기꺼이 동참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저도 하지 않는 것을 누구에게 권하겠습니까. 다만 그 수고로움을 알고, 등이라도 한 번 두드려주면 좋겠습니다.
제 입맛은 어머니로부터 아내 손맛으로 바뀌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제서야 겨우 저만의 손맛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갈 길이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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