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오겠다는 여자가 없다.”
중국 남부 광시(廣西)좡(壯)족자치구 둥란(東蘭)현의 산골 마을 타이중툰(臺中屯)에 사는 뤄안화(羅安華ㆍ43) 뤄안순(羅安順ㆍ40) 형제의 푸념이다. 칠순 모친과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의 유일한 꿈은 결혼이다. 그러나 이들의 소박한 꿈이 이뤄지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타이중툰은 ‘노총각 마을’이란 뜻의 ‘광군(光棍)촌’으로 불린다. 이 지역 남성의 결혼 적령기는 통상 만 22세인데 이를 기준으로 삼을 때 이 마을엔 노총각이 87명이나 된다. 이는 남성 3명 중 1명은 노총각이라는 이야기다.
‘광군’은 원래 막대기나 몽둥이를 의미한다. 광군이 미혼 남성을 뜻하게 된 것은 옆으로 뻗은 줄기와 잎이 없는 몽둥이의 모양새가 총각의 신세와 유사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국에서 나무에서 뻗어 나온 줄기와 잎은 자손의 번성을 상징한다.
중국의 노총각 마을은 이곳만이 아니다. 구이저우(貴州)성 구이양(貴陽)시의 파이팡춘(牌坊村)도 광군촌으로 유명하다. 모두 665가구가 사는 이 산촌의 노총각은 무려 282명이나 된다. 가장 나이가 많은 노총각은 65세다. 하이난(海南)성 충중(瓊中)현의 한 마을도 6,000여명의 주민 중 22~49세 미혼 남성의 수가 896명이나 된다. 209가구가 사는 충칭(重慶)시 윈양(雲陽)현 쓰민(四民)촌에도 노총각이 42명이나 있다. 산시(陝西)성 쭤수이현 양쓰먀오(楊四廟)촌도 270명의 총 주민 중 아직 신붓감을 찾지 못한 노총각이 38명이나 된다.
중국 전체로 보면 이런 노총각의 수는 얼마나 될까.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중국 남성 인구는 7억79만명으로, 여성보다 3,376만명 많다. 2020년 중국에서 결혼을 하지 못한 노총각의 수는 3,000만~3,500만명에 달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 추산이다. 이는 캐나다 인구와 맞먹는 수다. 이들의 사회적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나올 경우 중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실제로 19세기 중엽 태평천국운동과 함께 청나라 왕조에 반기를 든 염군(捻軍)에 참여한 대부분이 독신 남성과 홀아비, 부랑자들이었다. 중국 총각들의 분노가 폭발 일보직전이다.
남녀 출생 성비 한때 120대100도 넘어
중국에서 노총각이 이처럼 폭증한 가장 큰 원인은 강제적인 산아제한정책과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 때문이다. 1953년 6억명이던 중국의 인구가 1970년대 후반 10억명 선까지 육박하자 중국 정부는 1980년 한 자녀 정책을 도입 강력히 시행했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인 생명의 탄생마저 계획과 통제로 관리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은 뜻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중국인은 정부가 아이를 한 명만 낳으라고 하자 가능한 한 아들을 낳기 위해 온갖 수를 동원했다. 초음파 태아 성 감별과 여아 낙태는 불법이었지만,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전통 사상 때문에 이런 법을 지키는 이는 거의 없었다. 결국 차마 글로 옮기기 어려운 비윤리적 방법이 총동원돼 남자 아이를 골라 나으며, 1982년 108대100이었던 남녀 성비가 1995년에는 116대100, 2008년 121대100까지 치솟았다(여성 100 기준).
벌금을 내면서 둘째, 셋째를 낳은 경우들도 많았다. 이 경우 남녀 성비는 더욱 왜곡된다. 2000년 당시 첫째의 남녀 출생 성비는 107.1대100이었지만 둘째는 151.9대100, 셋째는 160.3대100이었다.
한 자녀 정책을 도입한 지 35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심각한 남초(男超) 현상에 직면했다. 1980~2014년 중국에서 출생한 6억7,500만명 중 정상적인 수준보다 더 많이 태어난 남성은 3,000여만명이나 된다. 이들은 짝을 찾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특히 70허우(70后ㆍ1970년대 출생 세대)의 미혼 남녀 비율은 무려 206대100이나 된다. 80허우(80后ㆍ1980년대 출생 세대)의 미혼 남녀 비율도 70허우보단 낮지만 136대100이다.
돈 없으면 장가 못가
중국의 노총각 폭발은 개혁개방 이후 도시와 농촌의 성장 격차가 부른 위기이기도 하다. 사실 광군촌은 대부분 중서부 빈곤 지역에 집중돼 있다. 소득 적고 낙후된 시골로 시집을 갈 처녀들은 많지 않다. 최근 몇 년 동안 외지에서 시집을 온 여성이 단 한 명도 없는 광군촌도 많다. 이 지역에서 태어난 여성들은 이미 일자리를 찾아 동남부의 연해 지역이나 대도시로 떠난 지 오래다. 올 5월 발표된 ‘중국가정발전보고 2015’는 미혼 남성들이 주로 농촌에 집중돼 있다고 밝혔다. 류옌우(劉燕舞) 화중(華中)과학기술대학 중국향촌관리연구센터 연구원은 “노총각은 80년대 중후반부터 증가하기 시작했고 대부분 농촌 특히 빈곤 산악지역에 많다”고 설명했다.
노총각 증가는 이미 수많은 사회문제들로 이어지고 있다. 매음과 매춘, 폭력, 유괴, 성범죄가 농촌 지역에서 확산되고 있다. 정상적인 신부감을 찾지 못한 이들 빈곤지역 광군촌의 총각들은 할 수 없이 청각 장애인이나 벙어리, 정신이상자와 결혼하는 일도 적지 않다. 일부는 근친혼으로 장애아를 낳는 경우도 늘고 있다는 게 중국 매체들 보도다. 사례금을 주고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의 처녀를 데려 와 결혼을 하기도 하지만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시안자오퉁(西安交通)대학의 2010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364개 농촌 마을에 대한 조사 결과 30%의 농촌 총각들이 사기 결혼의 경험이 있었다. 지난해 11월 허베이(河北)성 한단(邯鄲)시의 한 농촌에선 수십명의 베트남 신부가 집단 도주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노총각은 많고 신부감을 구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면서 결혼할 때 신랑측이 신부측에 건네는 예물인 차이리(彩禮) 액수도 올라가고 있다. 허베이성 자오(趙)현의 48세 자오(趙)모씨는 최근 25세 아들을 결혼시키려다 포기했다. 첫 맞선 자리에서 여성 측이 15만위안(약 2,800만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자오씨는 “몇 년 전만해도 10만위안을 밑돌았던 차이리가 최근에는 15만위안도 넘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차이리는 지방마다 큰 차이가 있지만 1만~20만 위안 범위에서 형성되고 있다. 남성 측에서는 집과 자동차는 물론 차이리도 준비해야 하는 만큼 결혼의 경제적 부담이 훨씬 크다. 돈이 없으면 장가를 갈 수 없다는 얘기다.
대도시엔 고소득 미혼녀 ‘성뉘’ 넘쳐
이처럼 농촌에선 노총각이 넘쳐나는 반면 도시에선 거꾸로 ‘잉여 여성’이란 뜻의 성뉘(剩女)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모순이다. 성뉘란 통상 중국의 27세 이상 고학력 고수입 미혼 여성을 일컫는 말로, 우리나라의 ‘골드미스’와 비슷하다. 일부 매체는 2009년 베이징(北京)의 성뉘가 55만여명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미 80만명을 돌파했다는 주장도 내 놓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노총각의 나라지만 수도 베이징은 세계 최대 미혼 여성들의 도시인 셈이다. 문제는 성뉘도 결혼하는 게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충칭의 한 매체가 28세 이상 성뉘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84%가 자신의 집을 갖고 있었고 30%는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자아 실현을 위해 일부러 결혼 시기를 늦추는 성뉘도 있지만 배우자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아 마음에 드는 신랑감을 구하지 못한 경우들도 많다. 이들은 적어도 자신들보다는 더 부유하고 학력이 높은 상대를 찾는다. 결혼 정보 사이트 위젠망(遇見網) 관계자는 “많은 여성들이 키가 크고 부자인데다가 잘 생긴 일명 ‘가오푸솨이“(高富帥) 남성을 찾는다”며 “그러나 결혼의 현실은 ‘한국 드라마’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한 자녀 정책을 수정, 부모 중 한 명이 독자일 경우 자녀를 2명까지 낳을 수 있도록 완화했다. 남아선호 사상도 희미해지면서 최근 남녀 출생 성비는 다소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정상 범위 안에 들기 위해서는 아직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 사이 도시의 성뉘들이 자신의 꿈과 도시의 화려한 삶을 뒤로 한 채 농촌의 노총각들에게 시집을 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인터넷에서는 중국 여성이 외국 남성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미혼 여성들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일각에선 동성애와 동성 간 결혼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대책도 내 놓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지금으로서는 3,000여만명의 중국 노총각은 아마 평생 독신으로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산아제한정책과 남아선호사상, 경제성장격차란 3박자가 낳은 대륙의 비극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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