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번 주에는 페루에 다녀와서 본 식문화 중에 니케이(Nikkei)와 치파(Chifa)에 관해서 적어 볼 요량이다. 왜 이런 글을 적냐면 한동안 유행처럼 떠들었던 한식의 세계화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다.
이번 페루 여행의 백미는 ‘미스투라(Mistura)’라는 8년째가 되는 음식 축제였다. 미스투라는 스페인 어로 ‘혼합’ ’조화’라는 뜻인데 이 축제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음식들을 보면 작명의 이유를 알게 된다. 188개의 레스토랑 부스와 180여 개의 식자재 가게들이 들어서 있는 이 축제는 태평양을 끼고 있는 사막지역과 평야지방, 안데스 고원 그리고 아마존이 시작되는 정글에 이르기까지 재배되고 채집되는 식재료들의 어마어마한 향연이었다. 당연히 요리사라면 눈을 땔 수 없고 들뜨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곳에서 내 마음을 심란하게 한 것은 우습게도 한 자리를 차지한 약 30여 곳의 아시아 레스토랑 부스들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지만 자세히 보니 음식을 만드는 이들도 현지인들이었고 먹는 이들도 현지인들이었다. 중식, 일식, 태국 음식에 모두 편안하고 자연스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페루는 미식(美食)의 변방으로 취급 당했고 경제나 인구규모가 한국의 반도 안되지만, 놀랍게도 이 나라는 ‘2015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the world’s 50 restaurant awards)’에서 레스토랑 세 곳이 최고 수준으로 인정 받았고, 앞으로 가장 주목해야 할 종류의 요리가 있는 곳으로 평가 받기도 했다.
이는 천해의 자연 환경 덕분일 수도 있고, 또한 6세대째 중국 이민자가 살고 있는 것이나 1980년대 대통령이 일본인 2세였을 만큼 열려 있는 외국 문화 수용도 한 몫 했으리라 생각한다. 대다수의 페루인들은 그들의 전통만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 들어오는 문화에 대해서 넓게 받아 들이는 편이다.
실제로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44위로 이름을 올린 최고급 레스토랑은 일본식 페루 음식점(▶바로 가기)이었는데 셰프 또한 일본인 3세로서 일본의 요리기술과 페루의 풍부한 식자재를 결합하여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또 길거리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치파’라는 식당은 이제는 생활화가 되어 있는 페루식 중국음식이다.
문화는 경제나 민족에 관한 인식을 항상 동반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제성장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1970년대 말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일본이 아직도 날생선을 먹는, 약간은 저급한 나라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일본은 오랜 시간을 투자해 스시를 신선하고 힙(HIP?최신 유행을 잘 안다는 뜻)한 문화의 한 면으로 바꿔놨다. 지금도 세계 어디서나 일본 음식과 문화는 동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고 신비롭게 받아 들여지고 있다. 중식은 또 어떠한가. 최근 15년 동안 중국의 경제 성장이 부각되기도 전부터 이미 음식은 이미 세계에 퍼져 있었고 로맨틱한 혹은 편안한 일상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는 그저 단순한 식문화의 전파로만 여길 순 없다. 페루의 작은 마을에 가더라도 치파가 있고 또 거기선 어김없이 일본산 간장이나 중국산 소스를 쓰고 있었다. 한국산 식자재나 식료품은 딱 한 번 봤는데 봉지에 담긴 라면이 전부였다.
한식의 위대함을 알리는 데 있어서 최고위층의 사람들을 동원해서 가장 부유한 국가를 방문해 가장 비싸고 가장 좋은 식재료로 ‘명품’이라는 글자를 붙여서 선전하는 게 좋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진정한 한식의 세계화라는 것은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그 곳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음식을 받아 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닐까?
흔히 먹는 미국식 피자는 사실 이탈리아 전통 피자와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피자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 사람들도 세계 각지에서 대중적인 미국식 피자가 결국 자신들의 피자에서 기원됐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미국식 피자를 틀렸다고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지는 않는다. 물론 ‘뿌리’가 중요하기에 김치인지 기무치인지는 정확히 해야 하고, 된장인지 미소인지는 정말로 따지고 지켜야 한다. 하지만 김치가 한국의 어느 가정에서나 같은 맛일 수 없듯이 결국 한식의 세계화는 음식 자체가 그 나라 실정에 맞게 조금씩 변할 수 있을 때 나타나는 게 아닐까. 그 과정에서 (한식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되고, 경제적으로도 파급효과가 생기는 것일 테다.
페루인들에게 가장 자신 있고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뭐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세비체(Ceviche)를 꼽는다. 멕시코나 칠레에서도 먹기는 하지만 페루가 원조라며 자랑스러워 하는 세비체는 신선한 해산물을 라임과 양파, 고추에 살짝 절여서 15분 동안 (라임에서 나오는) 산으로 익혀(!) 먹는 음식이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12시간 이상 라임에 절여서 먹었다는데 15분만에 먹는 간편식으로 변화한 데에는 니케이라는 일본풍 음식의 기술적인 영향이 컸다고 한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듯이 페루 문화에 스며 들었고, 심지어 그들은 일본인 2세를 대통령으로 뽑기까지 했다.
자, 이제 한식의 세계화는 어찌 해야 할까? 과연 선진국의 국회의사당에서 1인당 몇 백 달러씩 써가면서 동남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신선로와 뻔한 불고기와 갈비를 내놔야 할지, 아니면 다수의 삶으로부터 파고 들 수 있도록 차라리 길거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높으신 분들의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할 때다.
요리사
레이먼 김 '포스트 Eat' ▶ 시리즈 보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