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든 그 해를 상징하는 말이 있다. 올 한해 우리 사회를 상징하는 말들 가운데 하나는 ‘헬조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헬조선이란 ‘지옥(hell) 같은 한국(조선)’을 뜻한다. 광복 70년을 맞이한 올해 헬조선이란 말은 여러 착잡한 생각들을 떠올리게 한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모범적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사례로 꼽혀 왔다. 선진국 입구에 도달했다고 자평할 만했다. 하지만 헬조선과 ‘지옥불반도’란 말이 보여주듯 사회 현실에 대해 불만ㆍ불신ㆍ불안을 느끼는 국민들이 결코 적지 않다. 저성장, 양극화, 갈등의 폭발이 헬조선의 구조적 배경을 이룬다면, ‘7포(연애ㆍ결혼ㆍ출산ㆍ대인관계ㆍ집ㆍ꿈ㆍ희망의 포기)’는 개인적 상황을 웅변한다. 영광의 과거와 고뇌의 현재가 일대 충돌하고 있는 게 역사적 아이러니의 실체다.
인터넷을 떠도는 이른바 ‘수저론’은 헬조선의 사회적 신분에 대한 풍자다. 헬조선에선 다섯 계급이 존재한다. 금수저ㆍ은수저ㆍ동수저ㆍ흙수저ㆍ똥수저가 그들이다. 금수저와 은수저가 상류층이라면 흙수저와 똥수저는 하류층이다. 두 계급은 출발 지점부터 다르다. 영어유치원ㆍ어학연수ㆍ낙하산 취직이 상류층의 성장 과정이라면, 서민 어린이집ㆍ알바 생활ㆍ자발적 백수가 하류층의 성장 과정이다. 금수저에게 은퇴한 이후 해외여행 등 행복한 노후가 보장돼 있다면, 똥수저에겐 쪽방촌에서 안타까운 고독사가 기다리고 있다.
수저론을 보고 드는 생각은 사회적 아이러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사회에서 신자유주의가 공고화됐다고 많은 이들이 주장해왔다. 미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신자유주의가 갖는 그늘의 하나로 능력주의(meritocracy)의 폐해를 주목한 바 있다. 입시 경쟁, 취업 경쟁, 퇴출의 공포에 맞선 생존 경쟁은 능력주의의 살벌한 전쟁터를 이룬다. 능력주의와 비교할 때 수저론은 일종의 귀족주의(aristocracy)다. 금수저와 은수저의 강고한 귀족주의와 나머지 수저들의 과도한 능력주의가 기이하게 공존하고 있는 게 사회적 아이러니의 실상이다.
헬조선이란 말에 가장 큰 공감을 표하는 이들은 젊은 세대다. 한때는 이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담론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방황과 시행착오는 청년세대에겐 장기적으로 유익한 체험이자 특권일 수 있다. 하지만 패자부활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한 번의 방황과 실패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국가들 사이뿐만 아니라 이제 개인들 사이에도 구조화돼 있다.
이른바 ‘탈조선’은 헬조선을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이다. 지난 9월 JTBC 보도에 따르면 2040세대 가운데 88%가 한국이 싫어서 다른 나라로 이민을 생각해본 적 있다고 응답했다. 캠퍼스에서 이야기를 나눠 보면 적지 않은 학생들이 유학을 가서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다. 선조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광복을 맞이해 70년이 된 현재, 우리 기성세대는 대체 어떤 사회를 일궈온 걸까. 현실이 이토록 곤궁한데 화려했던 과거가 무슨 의미를 갖는 걸까.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탐구하는 사회학의 시각에서 헬조선 담론은 개인적 책임을 모두 사회적 책임으로 돌리는 문제를 갖는다. 능력주의와 귀족주의의 동시 강화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공고화되는 기득권 정치체제, 양극화하는 시장과 시민사회, 불확실성과 무질서의 공동체문화는 헬조선 담론을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 없게 한다. 이른바 ‘제2의 조선 망국론’은 과장된 것이지만, 결코 적지 않은 국민들이 우리 사회가 가라앉거나 거꾸로 간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구조적 사회문제는 즉흥적, 임시적 처방이 아니라 체계적, 장기적 전략으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고, 결국 최종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정부와 국회의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 한 게임 유저가 그린 ‘헬조선 지옥불반도’ 지도를 보면 저 위에 ‘정치인의 옥좌’와 ‘공무원의 거점’이 있다. 이제는 아래로 내려와야 하지 않는가. 나만의 소망은 아닐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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