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쟁과 의료윤리 검증 추진회’는 “제국주의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운영한 731부대 등의 비인도적 행위를 검증하고 그 교훈을 살리고자” 2009년 설립된 단체다. 의사ㆍ학자 등으로 구성된 회원들은 종전 직전 “남김없이 소각”된 것으로 알려진 전시 일본의 의료기록과 증언을 발굴ㆍ수집하고 진위를 따져 ‘731부대와 의사들’(스즈키 아키라 옮김, 건강미디어협동조합)이란 책자를 냈다.
책에 따르면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石井四郞ㆍ사진)는 1920년 교토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22년 육군병원과 도쿄 육군의학교에서 근무했다. 1925년 독가스와 생물병기 사용을 금한 제네바조약이 발효되자, 그는 거꾸로 생물병기의 연구 개발을 군상층부에 촉구한다. 바로 그 목적을 위해 30년 유럽을 시찰하고 돌아온 그는 육군 군의학교 교관이 돼 ‘방역 연구실’을 개설했고, 32년 헤이룽장성 우창 근처 베이인허에 ‘관동군 방역급수부(일명 도고부대)’를 설립해 인체실험을 통한 세균전 연구를 본격화했다. 34년 수용자 일부가 탈주해 부대 비밀이 탄로나자 그는 방역급수부를 폐쇄, 하얼빈 남동쪽 15km 인근 마을 주민들을 강제 퇴거시킨 뒤 80㎢ 규모의 특별군사지역 내에 대규모 생물병기 연구ㆍ제조시설을 구축한다. ‘731부대’는 1939년 그렇게 완공됐고, 동상 페스트 탄저균 유행성출혈열 생체실험이 시작됐다. 731부대만이 아니었다. 베이징(1855부대)과 난징(1644부대), 광둥(8604부대) 싱가포르(9420부대) 등에도 같은 목적의 생체실험실이 시로의 감독하에 잇달아 설립ㆍ가동됐다. 이시이 시로는 “생물병기를 개발하는 것으로 육군 군의관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과 동시에 기존 제국대학 의학부 등을 능가하는 군사의학의 연구기관을 구축하려고 했다”고 한다.
전후 이시이 시로를 비롯한 731부대원들은 모두 연합군 총사령부(GHQ)와의 ‘연구 기록’거래로 일체의 전범 책임을 면했다. 당시 미국측 조사관 에드윈 힐(Edwin Hill)이 “일본 과학자가 수백만 달러와 긴 세월에 걸쳐 얻은 데이터이다.(…)이러한 정보는 우리 연구소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라며 반색했다는 기록이 책에 있다. 시로 휘하의 731부대 의사 53명은 비행기로 귀국한 뒤, 주요 의대 의학부장과 의대학장, 일본녹십자 회장, 일본의사회 회장 등을 지내며 전후 일본 의학계의 중심 무대에서 승승장구했다.
정작 시로의 이후 행적은 모호하다. 그에게 모든 윤리적 책임을 떠 안기고 출세를 꾀한 부하들에게 무시 당하면서 윤락업소까지 운영했다는 설도 있고, 의료계 막후 실세로 군림했다는 설도 있다. 1959년 오늘(10월 9일), 67세의 그가 식도암으로 숨졌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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