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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남자니까 리드하라’는 법은 없다

입력
2015.10.14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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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학 새내기입니다. 여자친구는 한 살 위 연상이에요. 여자친구와 사귄 지 벌써 100일이 다 되어가네요. 제겐 요즘 새로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여자친구와의 첫경험 때문인데요. 아무래도 제가 남자이니만큼 여자친구와의 스킨십을 리드하고 싶은데, 여자친구는 전에 사귀었던 연인과 끝까지 가본 경험이 있고 저는 이번이 첫 연애라 리드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전 남자친구와 저를 비교할 것 같아서 적잖이 걱정도 됩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그녀와의 관계를 잘 리드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제가 더 멋지게 잘 해내기 위해서 어떤 점을 기억해야 할까요?

남녀 간의 관계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남녀 간의 관계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A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방식에는 아주 여러 단계가 존재하죠. 아마 오늘 하루 당신은 무수히 많은 사람과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만났겠지만, 우리는 보통 그런 상태를 '만남'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죠. 서로의 존재를 의미 있게 받아들일 정도로 교류할 수 있을만한 상황일 때,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고 표현해도 좋을 겁니다. 생각을 나누고, 감정을 나누고, 서로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확인하는 일이 만남의 핵심일 테니까요.

첫경험에 대해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아 보이는데요, 당신의 짧지만 강렬한 호소같은 이 글을 보고나서 드는 생각 하나는 당신이 그녀와의 첫 경험을 굉장히 테크니컬한 시각에서 상상하고 있다는 겁니다. 첫 번째니까 당연히 될 수밖에 없는 긴장, 현재 여자친구인 그녀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 그녀의 전 남자친구에게만큼은 밀리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합쳐져서 결국 '잘해야 한다'란 생각으로 귀결되고 있으니까요. '잘 리드하고 싶다', '잘 배려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결국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잘하고 싶다'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네, 그래요, 당신은 지금 그녀와의 첫 관계를 일종의 퍼포먼스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당신이 잘해내야 했던 숱한 시험과 테스트에서처럼요.

물론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잘못이라거나, 이상한 건 아니죠. 우리는 다양한 인생의 순간과 작고 큰 이벤트들 속에서 테스트 당한다는 느낌을 종종 받게 되고, 실제로 그것은 테스트가 될 경우도 많고요. 강박과 긴장 속에서도 내게 주어진 뭔가를 잘해냈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대견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그 느낌은 자신의 삶에 여러 가지 긍정적인 기능을 하겠죠.

하지만 중요한 건 말이죠, 이건 바로 그녀와의 '만남'이라는 사실입니다. 단지 잘하면 좋은 점수를 따거나 성취도가 올라가는 게임 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간의 만남'이란 거죠. 이 강렬한 고민의 그 어디에도 이것이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몸을 나누고, 기억을 나누는 특별한 대화라는 자각이 제대로 읽히지 않았어요. 잘하고 싶다는 욕망에 모든 것이 가려져 버린 것일까요?

저는 당신이 무엇보다도 이 지점을 기억했으면 해요. 누군가와 몸으로 만난다는 건 보통의 경우 그렇게 수월하게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또 오랫동안 서로의 기억에 남는 일이 된다는 것을요. 내가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취향과 의사를 100% 존중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행복한 '만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요.

모든 관계의 핵심은 '두 사람의 마음이 모두 무르익었고 둘 다 100%의 동의를 했을 때 할 것,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 물리적, 심리적으로 책임을 질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모든 관계의 핵심은 '두 사람의 마음이 모두 무르익었고 둘 다 100%의 동의를 했을 때 할 것,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 물리적, 심리적으로 책임을 질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니 '내가 남자니까 리드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지금은 첫 번째일 거예요. 남자니까 리드해야 한다는 법칙같은 거, 그런 건 세상에 없어요. 산에 올라본 적이 없는 사람이 왜 산에 한 번이라도 올라본 적 있는 사람보다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이 사람과 정말 온몸으로 교감하고 싶다, 이 사람과 누구보다 친밀하게 몸으로 대화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저 자연스런 몸짓을 보여주세요. 그럼 그녀도 어떤 식으로든 반응하겠죠. 너무 급하게 서두르거나 당신이 하고 싶은대로만 하는 것이야말로 매너없는 행동의 대표적인 것들일 거고요. 아주 천천히 평소보다 조금 진하게 스킨십을 진행해가되, 강렬한 눈빛을 보내며 당신이 원하는 그것이 뭔지 제대로 말을 하는 것을 추천해요. 수 차례 연애해본 사람들에게는 조금 수월해졌을 이 순간들이 지금 모든 게 처음일 당신에게는 결코 수월하지 않은 일일 것이기 때문에, 서로가 그저 분위기나 몸짓으로 모든 걸 간파하기 보다는 '하고 싶어' 그 한마디로 명쾌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그녀가 완벽히 YES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이 관계는 시작해서는 안되겠죠. 마찬가지로 당신이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있다면, 그것도 무효가 될 겁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궁금하고 또 의식은 되겠지만, 그녀의 전 남자친구의 존재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당신만 괴로워질 겁니다. 서로에게 첫 번째 상대가 되었다면 그 나름대로의 로맨틱함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상대방이 나를 만나기 전에 경험한 관계에 대해 강박적인 생각을 갖는다면 지금의 관계에 하나도 좋을 것이 없죠. 상대방을 온전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지금 나를 선택한 그 사람을 그대로 존중해야만 가능합니다. 현재의 내 연인을 눈앞에 두고, 그 사람의 과거 인연에 집착하는 일처럼 사랑의 본질에 위배되는 일도 없죠.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경쟁의식을 갖는 걸 멈출 수 없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는 게 아닐 거예요. 그러니 어쩌면 관계를 갖지 않는 편이 낫겠죠. 처음이든, 그렇지 않든 제가 생각하는 모든 관계의 핵심은 '두 사람의 마음이 모두 무르익었고 둘 다 100%의 동의를 했을 때 할 것,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 물리적, 심리적으로 책임을 질 것'입니다. 그게 어른의 일이고, 어른의 만남이죠. 새로운 '만남'을 통해, 좋은 추억이든 아쉬운 기억이든 남을 것이고 또 당신은 어떻게든 성장할 겁니다. 너무 걱정 말아요.

연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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