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들기 시작해서 겨울이 오기 전 시장에 가면 대구, 아귀, 명태, 도미, 방어 등 저녁상에 올라갈 찜이나 탕으로 딱 좋은 재료들이 늘어난다. 국은 없어도 생선구이 한 가지는 올라와야 제대로 식사를 했다고 이야기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우리 집에선 생선을 사면 찜이나 탕 보다는 구이가 우선이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위해서 굽던 생선은 보통 사계절 내내 저장할 수 있는 굴비나 가자미가 많았다. 또 아버지는 계절에 상관없는 임연수나 갈치 같은 흰 살 생선을 선호했기에 특유의 비린냄새가 있는 고등어나 무미(無味)하기로 첫 손에 꼽히는 삼치 같은 등 푸른 생선은 잘 드시지 않으셨다. 특히 내장 쪽이 쓰고 비린냄새가 많이 나며 기름이 많아서 집에서 굽기가 까다로운 꽁치는 상에 잘 올라오지 않았는데도, 나는 항상 구워달라고 졸라댔던 기억이 난다. 처음 꽁치를 구워달라고 말씀 드렸던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친구 집 마당에서 연탄에 구운 양미리를 처음 먹고 집에 와서 양미리 이름을 잊어버리고 길고 얇은 생선을 먹고 싶다고 무조건 졸랐다. 그날 먹은 생선이 꽁치였다.
요즘은 꽁치가 원양산이 많아 냉동된 게 흔하지만 어릴 적 어머니의 꽁치는 살이 탱글탱글 살아 있고 구우면 기름이 뚝뚝 떨어지던 생꽁치였다. 어머니는 우선 가위로 꽁치의 지느러미를 자르고 굵은 소금을 많이 뿌려서 절인 뒤 다시 칼로 입 주변을 쳐낸 후에 구울 때 속까지 잘 익도록 얇은 칼집을 어슷어슷 넣으셨다. 그리고 꽁치 배아래 부분이 금색이 되도록 바싹 구워 주셨다. 우리가 먹을 때는 쓴맛이 느껴지지 않도록 내장 쪽을 손가락으로 긁어 내셨던 기억이 난다.
손이 많이 가고 냄새가 배는 탓에 사실 난 집에서 생선 굽기를 꺼리는 편이다. 가끔 생각이 나면 생선구이 집을 가는데, 요즘은 아예 꽁치를 메뉴에 넣지 않거나 횟집 기본찬 정도로만 볼 수 있게 됐다. 얼마 전에 들렀던, 젊은 사람들이 자주 갈만한 일식 집에서도 아니나 다를까 꽁치가 찬으로 나왔는데, 그걸 먹으면서 ‘아. 이래서 메뉴에 없구나’ 싶었다. 꽁치는 비렸고, 살에서는 쓴맛이 나고, 기름기는 거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요즘 꽁치는 냉동을 풀어 굽는 곳이 대부분인데 해동을 잘못해서 내장이 터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걸 그냥 통째로 구우면 내장의 맛이 살에 배어들어서 쓴맛이 나게 된다. 또 미리 구워 놓고 손님 상에 다시 데워서 올리다 보니(꽁치를 굽는 시간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맛이 비려지고 기름기는 쏙 빠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꽁치는 점점 맛없고 쓰고 비린 생선이라는 인식이 굳어지고, 이젠 통조림에서 김치찌개로 바로 들어가는 생선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생꽁치는커녕 마리당 200~300원 하는 냉동꽁치만을 맛없게 먹고 자란 어린 세대들은 더욱 그렇지 않을까.
존경하는 요리사 박찬일 셰프가 그랬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라고…
제대로 된 생선구이 집에서 꽁치구이를 먹고 싶다. 그저 그런 일식 집에서 사이드음식으로 나오는 꽁치, 동대문 생선구이 집에서 다른 생선들을 시키면 따라 나오는 꽁치가 아닌, 진짜 살이 탱탱하고 기름이 살짝 흐르는, 그리고 젓가락을 꼬리와 뼈 사이에 넣고 스윽~ 하고 문질러서 살만 덜어내어 꼬리부터 들고 먹던 꽁치가 말이다.
요리사
레이먼 김 '포스트 Eat' ▶ 시리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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