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로 배운 역사 거의 없어
편향적 서술 있어도 오래 못 가
조급증의 이유 쉬운 말로 밝혀야
오랫동안 학교에서 국사를 배웠다. 초ㆍ중ㆍ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 교양과정에서도 국사나 한국사는 필수과목이었다. 시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건성으로 외기는 했지만 이제 와서 막상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던가를 자문하면 떠오는 게 별로 없다. 이 땅에서 명멸한 숱한 왕조의 성쇠와 관련한 연대(年代), 조선시대 왕들의 시호(諡號), 외침에 저항한 중요 전쟁의 경과, 충신열사 이야기 등이 고작이다. 그 또한 단순 사실이 아니라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라면 학교에서가 아니라 집에서 책을 읽어 배웠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도 교과서보다는 담당 선생님의 가르침이 중심을 이뤘다. 또 국어나 한문 등 다른 과목 선생님들이 들려준 역사 이야기가 국사 수업에서 배웠던 것보다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역사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대학에서야 싹텄다. 유신과 긴급조치 아래 엄엄한 분위기에서 역사는 더 이상 옛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시 한국사회의 정치ㆍ경제ㆍ사회적 문제의 중심에는 늘 역사가 도사리고 있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현실과 상관관계가 큰 순서대로 현대사 근대사 중세사 고대사 책을 읽었다. 남들처럼 주관적 역사 인식이 있다면, 아마 그때 형성됐을 것이다.
다만 세상 변화와 함께 사뭇 달라졌다. 국내적으로는 ‘1987년 체제’가 성립하고, 세계적으로는 사회주의 몰락으로 ‘역사의 종언’과 ‘문명의 충돌’이 운위됐다. 책장에서 ‘식민지 반봉건사회론’따위의 책을 골라 버리고 고대사와 한일관계사, 과학사 등의 책으로 자리를 메웠다. 그러면서 특정 사관(史觀)보다 사실(史實)을 새롭게 해석하는 힘, 사실과 사실을 제대로 이어가는 논리정합성이 중요해졌다.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또래 친구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비슷하다. 모두에게 교과서는 그저 교과서일 뿐이었다. 어렴풋하게나마 형성된 독자적 역사인식은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연하게 집어 든 책을 통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자의 삶의 통해서 이뤄진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는 TV 다큐멘터리, 심지어 이름 하나만 실록에서 가져왔을 뿐 나머지는 모두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우는 경향이 날로 짙은 TV 사극 이상이 아니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 현재의 역사전쟁은 참으로 아리송하다. 목적의 정당성이나 수단ㆍ방법의 적절성 모두가 의심스럽다. 지난 10여 년 간 중ㆍ고교검인정 국사교과서의 서술이 편향된 사관에 근거한 듯한 흔적이 있다는 지적에는 동의할 만하다.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역사학계의 ‘천이(遷移)’에 따라 민주화 이전 비주류였던 진보적 학자들이 고령에 접어들어 활동이 뜸해진 보수학계를 밀치고 주류로 등장한 결과다. 보수층에는 고깝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또한 머잖아 바뀐다. 과거 ‘유신체제’가 역설적으로 현재의 주류사학계를 키웠듯, ‘87년 체제’가 ‘뉴 라이트’를 비롯한 비주류를 꾸준히 키워온 때문이다. 학문생태계의 자연스러운 군락천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잠시라도 빨리 ‘밥그릇’을 되찾겠다는 조급증만 두드러진다.
과거에도 교과서는 교과서일 뿐이었는데, 수많은 역사정보 획득 통로가 확보된 요즘에 교과서가 국민의 역사인식을 좌우하리라는 생각은 더욱 부질없다. 또한 그 동안 지적된 ‘국사교육 편향’은 교과서 내용보다 현장 교사들의 태도에 대한 것이 많았다. 그러니 교과서 국정화는 정부가 주장한 ‘역사 바로잡기’라는 퇴색한 명분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나아가 설사 정부가 끝내 국정화를 관철해봐야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합리적 이해나 해석이 미치지 않으니‘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앞둔 보수층 결집 전략’등 정치공학적 관측만 무성하다. 당장 다음 정권에서라도 얼마든지 180도 정책이 뒤집힐 수 있다는 체험지(體驗知)를 정부가 일깨워 준 셈이니, 단기 목표에 한정해 따져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것이 오해라면, 진짜 이유를 속 시원히 밝히라. 누구나 알아들을 쉬운 말로.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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