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학질)는 모기가 매개체가 되는 전염병 중 하나로서,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된 모기에 물림으로써 감염된다. 전 세계적으로 2억 명 이상이 말라리아로 고통을 받고 있고, 매년 70만 명 정도가 말라리아로 생명을 잃고 있다. 환자 10명 중 9명, 사망자 10명 중 8명은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2010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되었던 월드컵에 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던 국악단원 2명이 말라리아에 감염된 뒤 사망해서 우리에게 충격을 준 기억도 있다.
우리나라도 말라리아 안전 국가가 아니며 휴전선 인근 지역에서는 매년 말라리아 모기가 발견되고 있다. 그 동안 말라리아 예방 백신이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는데, 2013년 영국의 제약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서 비영리단체인 PATH 및 말라리아백신기구(Malaria Vaccine Initiative: MVI)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개발된 말라리아 후보백신(RTS,S)의 임상 결과를 공개하고, 2014년 유럽의약청에 허가 신청을 냈다. GSK는 이 백신을 만드는 데 3억 5,000만달러(약 3,800억원)를 투자해서 아프리카 7개국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GSK는 지난 7월 유럽의약청(EMA)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가 자사가 개발중인 말라리아 후보백신에 대해서 긍정적인 검토 의견을 채택했다고 발표했다. 테스트 결과에 의하면 ‘RTS,S’를 3회 접종한 후 18개월 간 추적 관찰한 결과, 생후 5~17개월이었던 유아의 말라리아 발생이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RTS,S’가 아직 상용화된 것은 아니며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해당 백신의 사용이 채택된 것도 아니어서 실제로 사용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그럼, 지금 당장 사용 가능한 말라리아 예방을 위한 적정기술에는 무엇이 있을까?
▦말라리아 관련 적정기술
필자는 2010년 6월 수수숯과 건망고 제조 등의 적정기술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하여 아프리카 차드의 수도인 은자메나를 방문했다(본보 7월 20일자 19면 참조). 은자메나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여보니 침대 위에 모기장이 하나 설치돼 있었다. 단순한 모기장이 아니고 베스터가드프란센에서 제조한 살충제로 처리된 ‘퍼머넷’이었다. 이러한 형태의 모기장을 ‘장기 지속 살충 모기장(Long-LastingInsecticide-treated Netㆍ이하 LLIN)’이라고 하는데, 일반 모기장에 비해 5배나 오래 사용할 수 있어 4년 정도까지 사용 가능하다. 현재 LLIN 제작에 주로 사용되는 합성 살충제는 ‘피레스로이드제(pyrethroid)’인데, 인체 및 포유류에 미치는 위해성이 매우 낮지만, 곤충에게는 미량이라도 유독성을 띈다. 말라리아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필자가 2012~2014년에 적정기술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던 탄자니아 다레살렘 인근에 있는 키왈라니 마을에서 현지조사를 실시하였을 때도, 마을 주민들이 가장 어려움을 호소한 것 중 하나가 말라리아였으며, 이들에게는 말라리아에 걸리는 것이 거의 연례 행사였다.
아프리카에서 마을 단위로 진행된 임상실험을 통해 LLIN은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을 20% 가량 감소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말라리아 예방 프로그램을 통해 높은 LLIN 보급률을 달성한 국가에서 말라리아 피해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도 이제는 임산부와 5세 미만 아동 등의 취약계층뿐 아니라 말라리아 발생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LLIN을 보급해 사용하도록 하는 '보편적 보장'(universal coverage) 수준의 달성을 권고하고 있다. LLIN은 대규모 프로그램들을 통해 약 3년 주기로 보급되고 있는데,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총 2억9,400틀의 모기장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 보급되었다.
또한 호주 광고 에이전시인 GPY&R는 파푸아뉴기니 수도인 포트모르즈비에서 맥주를 제조하고 있는 SP브루어리(SP Brewery)를 위해 모지박스(Mozzie Box)라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하였다. 모지박스는 SP브루어리가 판매하는 맥주인 SP라거스(SP Lagers)를 담은 골판지 상자다. 이 골판지 상자는 모기가 싫어하는 유칼립투스 나무 성분으로 코팅 처리가 되어있다. 따라서 저녁에 이 박스를 태우면서 불 주위에 둘러앉아서 맥주를 마시면, 모기에 물리지 않으면서도 친구들과 담소를 나눌 수 있다.
한편 1년에 약150만 명의 어린이가 예방접종을 받지 못하거나, 효과가 떨어진 백신을 접종 받음으로 인해 사망한다고 한다. 효과가 떨어진 백신을 접종 받게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예방백신은 2~8℃의 온도에서 보관되어야 최상의 접종효과를 볼 수 있으므로, 선진국에서는 백신용 냉장고에 이를 보관한다. 하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거나 들어오더라도 전기수급이 불안정한 아프리카 시골 마을 등에서는 이런 백신 냉장고를 사용하는 것이 어렵다. 이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말라리아 예방백신이 상용화 된다고 해도 아프리카 등에서 사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빌게이츠 재단과 인텔렉철벤처스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백신 냉장고를 개발하였다. 이 냉장고는 백신 주변을 감싸고 있는 8개의 플라스틱통에 물을 얼리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다양한 종류의 백신 300개를 약50일 정도 보관할 수 있다. 냉장고의 온도를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통 내부는 알루미늄 호일로 싸여져 있으며, 진공상태로 밀봉되어있다. 또한 입구를 12cm로 작게 만들어서 내부로 공기가 잘 들어갈 수 없게 하였다.
▦진단용 적정기술
질병이 이미 많이 진행되고 나서 치료하는 것보다는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또는 발생 초기에 조기발견하고 치료하면 치료비용도 절약되고 완치 확률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의료시설이 열악한 개발도상국에 거주하거나 선진국에 살더라고 가난해서 보건의료 서비스의 혜택을 보기 어려운 주민들에게는 이는 쉽지 않는 일이다. 따라서 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저렴한 질병진단기술의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 지금까지 개발된 저렴한 질병진단기술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코넬대학교 기계항공공학과의 데이빗 에릭슨과 그의 팀은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과 액세서리를 활용하여 조직검사용 샘플 분석을 가능하게 하는 태양열 ‘중합효소연쇄반응기(Polymerase chain reaction thermocyclers, PCR)’를 만들었다. PCR은 지금까지 질병감지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문제는 비싼 기계 값과 가지고 다니기 어려운 부피에 전기콘센트를 찾기도 어려운 지역에서 엄청난 양의 전기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PCR 기기는 만약 암세포가 존재한다면, 암의 DNA를 탐지하고 샘플에 그 DNA를 복사한다. 충분한 양의 DNA를 복사하여 조직검사를 위한 데이터가 충분히 모일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한다.
에릭슨과 그의 연구팀은 전기가 없는 곳에서 사용 가능한 오프그리드 버전의 PCR 순환기를 고안해냈다. 먼저 태양을 향해 렌즈를 맞춰서 샘플 안의 챔버를 적절한 온도로 가열한다. 챔버는 정해진 양의 태양열만이 들어오도록 허락하는 마스크를 통해 적절한 온도로 조절된다. 샘플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DNA가 복사되면, 사용자가 스마트폰 액세서리에 샘플을 올려놓는다. 그러면 임신테스트와 비슷한 방식으로 색깔이 바뀌며 암의 존재여부를 알린다. 스마트폰은 카메라를 통해 결과를 읽고 시스템을 위해 개발된 앱을 이용해 결과를 분석한다. 태양이 거의 모든 일을 담당하기 때문에 30분의 소요시간 동안 기계는 80mW의 에너지밖에 소모하지 않는다. 에릭슨 팀은 아이폰 배터리로 70시간 동안 이 기계를 작동시킬 수 있었다. 저렴한 가격과 높은 이동성은 이 기기의 가장 큰 장점이다. 현재 연구진들은 암의 일종인 카포시육종 테스트를 개발 중이지만, PCR을 바탕으로 한 테스트를 사용해서 다른 종류의 암이나 에이즈, 결핵, 각종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발견해낼 수도 있다.
전세계에서 약 4,0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80%는 검안을 통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였다면 막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기존의 검안장비는 무겁고, 비싸고, 사용하기에 어렵다. 따라서 그 동안 개발도상국의 시골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런 검안 장치를 사용해서 시력 검사를 받기가 어려웠다. 앤드류 바스타우로스(Andrew Bastawrous)와 동료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모든 종류의 검안이 가능한 도구인 PEEK-Retina를 개발했다. 이 키트는 전통적인 검안경과 스마트폰에 있는 망막 카메라를 결합한 기술로서, 이동 가능하고, 저렴하며, 사용하기가 쉽다. 현재는 삼성 갤럭시 S3에서만 작동하지만 향후 다른 스마트폰으로도 확대할 예정이다. 이들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인디고고를 통해서 펀딩에 성공했으며, 제품은 올해 10월에 주문자에게 배달될 예정이다. 가격은 95달러이다.
일본 큐슈대학교 후각센서연구개발센터의 연구팀은 ‘C.엘라강스’라고 불리는 1mm 크기의 선충을 이용한 암진단기를 개발 중에 있다. 이 선충은 사람보다 10만 배 이상 뛰어난 후각을 갖고 있는데 암환자의 오줌을 한 방울 떨어뜨리면 암환자의 오줌에서 나오는 특이한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주위로 모여든다고 한다. ‘C.엘라강스’를 이용해서 판별할 수 있는 암의 종류는 식도암, 폐암, 췌장암 등 9종류에 달하며 암환자 발견 비율은 95.8%로서 혈액을 사용하는 종양마커 검사보다 정확도가 3배 가까이 높았다. 1회 검사에 드는 비용은 9백원 정도이며, 1시간 반 정도면 암 유무를 진단할 수 있다. 현재 연구팀은 히타치 제작소와 함께 진단장비 개발에 착수했다.
췌장(이자)은 위의 뒤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소화 효소와 호르몬을 분비하는 장기이다. 췌장암 환자의 약 85%는 조기진단에 실패하므로 평균 사망률이 다른 암에 비해 높다고 한다. 췌장암 초기에는 복부 컴퓨터 단층촬영을 통해서도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잭 안드라카는 15살 때 장당 3센트의 비용으로 췌장암, 난소암, 폐암을 5분 안에 조기 발견할 수 있는 종이 센서를 발명했다. 그는 가깝게 지내던 아버지 친구가 갑자기 췌장암으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췌장암 진단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안드라카는 8,000여개의 단백질을 조사한 끝에 췌장암, 난소암, 폐암에 반응하는 단백질인 ‘메소텔린’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는 이 단백질에 항체와 탄소나노튜브를 결합해서 종이센서를 만들어냈다. 안드라카는 현재 이 센서를 상용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2002년 스탠포드 대학교 화학과에 입학한 엘리자베스 홈스는 싱가포르의 게놈 연구소 인턴으로 있으면서 새로운 방식의 혈액 검사와 신체 데이터 수집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홈스는 2003년 학교를 그만두고 테라노스(Theranos)를 창업하였다. 회사명인 ‘테라노스’는 치료를 의미하는 ‘Therapy’와 진단을 의미하는 ‘Diagnos’를 합성한 것이다. 테라노스가 개발한 혈액검사 키트인 에디슨은 기존 방식처럼 주사기를 통해 대량의 혈액 샘플을 채취할 필요 없이, 작은 전자침으로 한 번 찌르기만 하면 각종 질환 검사가 가능하다.
혈액은 채취와 동시에 퓨즈처럼 생긴 0.5인치 높이의 초소형 유리관(Nanotainer)에 들어가 최소 70회의 혈액검사를 시도할 수 있다. 또한 이 혈액검사 키트는 간호사의 도움 없이 이용자가 스스로 검사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테라노스가 개발한 1형 헤르페스 바이러스(HSV-1) 검사 및 실험실 분석 시스템은 2015년 6월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가격은 약 9달러 정도로서 기존의 혈액검사와 비교할 때 매우 저렴하다. 최근 에디슨의 신뢰성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 테라노스가 이를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지 흥미롭다. (본보 10월 17일자 10면 참조)
보건의료 분야의 적정기술은 인간의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기술로서 인간의 삶의 질에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도국과 선진국에 사는 저소득층을 포함해서 누구나 사용 가능한 저렴한 보건의료 관련 적정기술이 앞으로 많이 개발되길 기대해 본다.
홍성욱ㆍ국립한밭대 적정기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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