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시민의 여름 휴양지인 룬마르외 섬에 9월 30일 북보트가 찾아왔다. 북보트란 보트에 책을 싣고 스웨덴 섬지역을 도는 이동도서관이다. 셋째를 임신한 아내와 세 살과 두 살, 두 딸과 함께 북보트를 찾은 젊은 아빠 에드문트씨는 “육지 도서관에서 가서 책을 빌려도 되고 컴퓨터로 전자책을 볼 수도 있지만, 책을 싣고 오는 배가 훨씬 재미있지 않냐”며 북보트를 반겼다. 선박 안 책꽂이에서 그림책을 꺼내 보느라 정신이 팔린 세 살배기 꼬마는 책 빌렸으니 이제 집에 가자는 아빠 말에 가기 싫다며 칭얼댔다. 북보트일을 한 지 20년 됐다는 시립도서관 사서 안니카 레우센카 씨는 여러 해 전 북보트에 온 한 소녀가 배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우리 섬에 북보트가 왔구나’하고 탄성을 지르던 것을 즐겁게 기억한다. 그는 “북보트 오는 날이 아이들에게는 크리스마스”라며 웃었다. 빌린 책은 6개월 뒤 북보트가 다시 올 때 반납한다. 도서관이 있는 이웃 섬에 반납해도 된다.
룬마르외는 주민 200명의 섬이다. 학생 20명의 학교도 있다. 배가 닿는 시간에 맞춰 수업 중이던 아이들이 찾아왔다. 바구니를 들고 와서 소설책 여러 권을 빌려간 할머니는 북클럽 회원이라고 했다. 섬의 할머니 8명이 멤버란다. 함께 읽을 책 4권도 빌렸다.
룬마르외는 스웨덴 문호 스트린드베리가 머물며 작품을 쓴 곳이기도 하다.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이 이 섬에서 작품을 탄생시켰다. 비용을 따지자면 북보트를 운영하는 게 과연 효율적이냐,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6개월마다 나를 위해 찾아오는 책 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존중 받는 느낌은 섬 주민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지 않을까. 어느 누구도 뒤쳐지거나 배제되지 않도록 모든 사람의 도서관, 모두의 책 읽기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북보트의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스톡홀름=오미환 선임기자
한국일보ㆍ책읽는사회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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